주사 맞고 고생중이거나 죽어가는 사람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아픈데 응급실에 실려가 수백만원을 써도 이상 없단 소리만 듣고 있는 분들의 절망을 생각한다. 주사 한대로 갑자기 죽어버린 사람들도, 그들의 남겨진 가족들도 생각한다. 그러다 '난 괜찮은데 왜들 호들갑이냐'는 싸이코패스를 보면 저 사람에게도 꼭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길 기도하다가, 그래도 그런 생각 하면 안되지 하면서 고개를 젓곤 한다.
강제 락다운으로 인한 불황으로 일자리가 끊겨 끼니걱정을 해야하는 수많은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분들. 나이가 어리면 어려서, 많으면 많아서 더 서럽고 힘들 그들을 생각한다. 3천원을 주고 깡소주 두 병 사다 마시며 '죽고싶다' 소리 낮게 되뇌일 그들의 목소리를 생각한다. 그러다 미어터지는 백화점과 명품관을 보면 벌레라도 씹은 기분이 되어버린다. 입에서 벌레를 뱉어내고 나면 우리 모두가 절벽을 향해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혼밥사진 올리는 페친들. 일이 바빠서, 혼자 타지 생활을 해서, 같이 먹을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혼자 밥을 먹다가 왠지 사진이라도 올리고 싶어진 분들을 종종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외롭다고 생각할 것도, 미래를 불안해 할 것도 없다고. 그런 거 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혼자 밥 먹는다고, 내세울 거 하나 없다고, 그렇다고 당신의 가치가 내려가는 건 아니라고. 어디서 무얼 하든 인생의 의미는 오직 당신의 양심이 얼마나 깨끗한지에 달렸다고.
아직도 인생에서 '뭐시 중헌지'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가족, 친지, 친구들을 생각한다. 월급 200 받고 살아가는 노총각부터 포르쉐 타고다니는 의사 변호사까지, 그들이 뱉어내는 불만은 전부 똑같다는 걸 생각한다. 벌 수 있었던 돈을 잃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잘 해준 사람이 돈때문에 배신을 해서 화가 나고, 미래를 생각하면 돈을 더 벌어야 해서 조급하고 불안하고, 나보다 못난 친구가 돈을 엄청 잘 벌어서 화가 난다.
친구A는 친구B 정도만 살면 세상 걱정없이 살겠다고 하고, 친구B는 친구C 만큼만 살면 소원이 없겠다 한다. 친구C가 나에게 전화해 늘 돈 문제로 투덜거린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2년 전쯤 속물들의 세계에 완전히 흥미를 잃고 손을 씻은 나란 걸 알아서 더욱 편하게 투덜거린다. 그중 한둘은 스트레스 받는 일만 있으면 째깍 내게 전화를 한다. 나랑 통화를 하면 마음이 진정이 된다나. 내가 1년 전쯤 선물한 성경책을 펴보지도 않는 그지만 난 그런 그가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내 말을 진지하게 새겨듣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에게 빨리 적당한 강도의 시련이 찾아와 그들의 허망한 생의 자랑을 부러뜨려주길 기도한다. 마음의 깊은 곳을 끊어내는 깊은 고통만이 사람의 영혼을 성장시킨다. 그리고 그 고통은 남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론적 악함과, 슬픔, 허망함을 깨닫는 데서 기인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