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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나무 Oct 14. 2021

버림받은 나는 어찌해야 하나요

배신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한 독자분으로부터 절박한 상담 요청을 받았다.



"모든 걸 주고도 상처받고 버림받은 사랑은 어찌해야 할까요? 원망조차 비참해서 숨어버리는 일밖에 할 수 없다면?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마저 거세당한 영혼들은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요?"




단테의 <인페르노>에서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은 ‘배신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도둑질, 강간, 살인 등 수많은 죄 중에서 ‘배신’을 가장 악한 죄로 평가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단테에게 동의한다. 사람들은 도둑이나 강도에게 해를 입는 일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탄탄한 회복력을 가지고 있지만 믿었던 사람의 배신은 길고 긴 후유증을 남기며, 일부는 평생 그 후유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엔 지식과 경험의 짧음으로 인해 모든 종류의 배신자들에게 최고의 먹잇감이 된다. 처음부터 배신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는 사람도 있고, 별 생각없이 욕망에만 솔직하게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쉽게 믿었다가 배신 당한 상처입은 가슴은 생각한다. 다시는 사랑을 못 할 것 같아. 다시는 사람을 믿지 않겠어. 그렇게 젊음의 나이브한 시절이 끝나고 염세주의로 접어든다. 그리고 염세주의는 많은 경우 유물론으로 발전한다. 기왕지사 아무도 못 믿을 바엔 최대한 이득을 취하겠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이득만 생각하겠다.




이때부터는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정욕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 그렇게 배신자는 상처받은 사람을 섹스, 돈, 허영심 같은 괴물에게 던져줌으로써 비로소 임무를 완수한다. 이제는 섹스와 돈과 스스로의 허영심에게 배신당할 차례다. 그 괴물들이 조금도 나를 채워줄 수 없다는 걸 발견했을 때쯤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상황에 이르면 세상 모든 것을 저주하게 된다. 사람들을 위해주는 척 이용만 하고, 가학적이거나 변태적인 성욕에 빠져들기도 하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얻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타인이란 존재를, 세상을, 신을 저주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은 하루하루 점점 더 지옥이 되어간다. 이제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배신이라는 악마에게 '킬 포인트'가 추가된다. 배신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배신으로 인한 염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향정신성 의약품이 아니라 지식과 지혜, 용기와 믿음이다. 상대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덥썩 믿어버리는 것이 나이브함이라면, 최대한의 안목을 발휘해 신중하게 고른 상대를 ‘배신당할 경우의 수가 없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한번 믿어보기로 결정하는 것은 용기다.




사람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배신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어쨌든 본인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굴러간다. 오직 용기있게 믿기로 결정한 사람들에 의해 이 세상에는 아직도 신뢰와 사랑이 존재한다. 그들이라고 배신의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배신 당했을 때 죽도록 아프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는 믿음이라는 게, 사랑이라는 게 존재해야만 한다고 믿기에 용기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혼자 힘으로 힘들다면 절대로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유일자인 신을 믿는 것으로 힘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무작정 ‘용기’만 내서는 안 된다. 지식과 지혜를 발휘하지 않으면 용기의 성공률이 너무 낮아지기 때문이다. 우선 사랑에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일단 서로간에 외적인 매력을 느끼거나, 적어도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아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와도 믿음을 지킬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궁극적으로 '영원히' 함께할 사람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 느낀 설렘과 달콤함이 시간과 함께 퇴색해도, 상대방에게 깊이 실망하는 일이 있어도 배신만은 하지 않을 사람인가 하는 것이 사랑의 핵심이다. 




배신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상대가 나를 더이상 사랑해주지 않아서, 상대가 나를 외롭게 해서, 상대에게 더이상 성욕을 느낄 수 없어서, 새로운 이성에 잠깐 이성을 잃어서, 교묘한 유혹에 넘어가서... 혹자는 외려 목소리를 높인다. 더이상 사랑이 안 느껴지는데 같이 사는 것이 맞냐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게 낫지 않냐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사랑을 할 자격이 없다. 




사랑은 이런 것이다. 당신도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같이 살면서 좋을 때도 있겠지만 실망할 때도 있을 테고, 상대가 미워지는 날도 찾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당신을 떠나지 않기로 약속한다. 그때까지 우리는 비밀없이 모든 걸 공유하고, 상대방의 단점까지 감싸주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완생을 위한 길을 함께 걸어갈 것이다. 우리의 관계를 깰 수 있는 건 오직 혼외정사뿐이다.




혼외정사라는 사유를 제외하면 어떤 이유로도 평생 서로를 등지지 않겠다는 가장 강한 약속 아래 모든 비밀을 털어놓는 관계가 부부다. 사람은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상대에겐 모든 것을 오픈할 수 없는 존재다. 오늘은 부부였지만 내일은 남남이라면 내가 오늘 털어놓은 나의 모든 것이 내일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외정사 이외의 이유로 헤어짐이 가능한 관계는 서로에게 솔직할 수 없다. 어차피 솔직하지 못할 그런 관계에서는 굳이 사랑을 고백하거나 결혼할 필요가 없다. 그저 동물처럼 오가다 눈이 맞으면 교미를 하고 본능에 따른 일시적인 진심에 충실하면 될 일이다. 




배신하지 않을 사람을 찾으려면 일단 매력이 느껴지는 이성을 발견할 경우 책임감과 정직함을 판단해봐야 한다. 가까이만 가도 가슴이 떨리도록 설레고, 간판도 완벽하고, 능력과 매너가 아무리 완벽해도 정직함과 책임감이 부족하다면 칼같이 끊어내야만 한다. 배신은 아무리 좋은 것도 한번에 모두 허물어버리 때문이다. 책임감과 정직함을 평가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짓말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보는 것이다. 




정신적인 아름다움이 결여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처음 본 이성’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육신의 정욕은 상대가 전지현이라고 해도 반복에 의해 자극이 급격히 줄어든다. 그래서 정욕은 '새로움'에 매우 민감하다. 온 세상이 새로움에 미쳐 있는 이유다. 하지만 정신적인 아름다움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깊어진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가장 질투하는 것은 외모나 물질이 아니라 아무도 훔쳐갈 수 없으며 세월도 이겨내는 ‘정신적인 우월함’이라고 말했다. 특히 젊음이 쏜살같이 지나간 뒤 육체의 정력이 쇠해지면 관능적인 유희는 힘들어지고 남는 것이라곤 수십 년의 정신적인 즐거움뿐이므로 관능에 가중치를 두는 것은 불행한 말년을 자초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사람을 잘 보려면 나의 속이 먼저 깊어져야 한다. 나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만큼만 타인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깊이 있는 안목이 없으면 정욕에 휘둘리거나 욕심과 허영심에 휘둘리게 되고, 그러면 결국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 먼저 나의 정신이 아름답게 성장해야 좋은 이성을 알아볼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상대를 고른 뒤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배신을 당해도 세상을 저주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저력도 필요하다. 젊음의 나이브함과 배신의 경험을 지나 염세주의라는 터널속에 있는 분들이 지식과 지혜, 용기와 믿음으로 터널 끝의 빛을 붙들고 멋지게 다시 한 번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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