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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나무 Nov 05. 2021

나를 사랑하는 법

언젠가부터 어딜 봐도 난무하는 광고카피같은 문구, Love Yourself, 스스로를 사랑해라. 어떤 사람들은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누가 날 사랑해주겠냐며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사람들은 나를 사랑할 시간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옳다며 고개를 젓는다. 양쪽이 모두 옳고, 양쪽이 모두 틀렸다.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려면 일단 나를 사랑해야 한다. 그러니 스스로를 사랑하는 건 좋은 일이다. 이웃사랑도 인류애도 거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나’를 사랑할 것이냐다. 




세상 그 누구의 ‘나’도 마치 질서정연하게 통일된 일당독재 전체주의 국가같은 경우는 없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생각이 바뀌는 ‘나’라는 존재 안에는 ‘여러가지 나’가 항상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방 청소를 하고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나와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 시간에 잠이나 더 자려는 나, 둘이 싸우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나를 사랑해줄지 택해야 한다. 둘 다 사랑해주다가는 정신분열증에 걸릴지도 모른다. 




멋지고 돈 많은 사람들에게 가서 알랑방귀를 뀌고 싶은 나와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만나서 교제를 나누고 싶은 내가 싸운다. 몸은 하나이고 여가시간도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 둘다 제대로 할 수는 없다. 어떤 나를 사랑할지 택해야 한다. 




기회가 닿으면 멋진 이성과 섹스를 해서 짜릿한 쾌감을 즐기고 싶은 나와 섹스란 것은 평생을 함께할 사람과만 해야 하는 거라는 내가 마음속에서 싸운다. 서로를 찐따니 걸레니 불러가며 머리채를 잡고 싸운다. 어떤 나를 사랑해줄지 택해야 한다. 




양심을 지키면 손해를 보고 살짝 한번 눈감으면 이득을 보는 상황에서도 마음속 ‘두 명의 나’가 서로 싸운다. 이득을 바라는 쪽은 가족을 생각하라는 둥 돈이 없으면 인생이 끝난다는 둥 뻔한 소리를 해대고, 다른 한쪽은 그래도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건 죄라는 심플한 진리를 되뇌인다. 어떤 나를 사랑해줄지 택해야 한다.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나와 영혼의 성장을 추구하는 나,


이득을 추구하는 나와 양심을 추구하는 나,


자존심을 세우려는 나와 자존심을 버리려는 나,


자랑하고픈 나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려는 나,




어느쪽을 택해도 ‘Love yourself’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자유의지에 따라서 각자 선택하면 된다. 물론, 선택에는 그에 합당한 결과가 따른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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