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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나무 Jul 23. 2021

멋진 신세계

여행 금단증상을 겪고 있는 그대에게

정적.



그러나 의식을 기울이면 들려오는 거센 바람소리.



바삭하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쉬며 태아처럼 웅크린 채 느끼는 서늘함과 포근함의 쾌적한 이중주.



사위를 둘러싼 푸른 물의 차가움, 그 위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거위털 이불처럼 덮고 있는 구름.



동그랗고 작은 창으로 끊임없이 전해오는 기대감.



딩, 작지만 아무도 놓칠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켜지는 불빛, 이윽고 스피커로 들려오는 정겨운 목소리.



멀리서 다가오는 낯선 땅.



해안가와, 조그맣게 띠처럼 둘러싼 언덕들, 흙벽돌처럼 직사각형으로 쌓여있는 논과 밭, 띄엄띄엄 보이다 이윽고 군중처럼 모여들기 시작하는 지붕들, 그것들을 잇는 길다란 회색빛 혈관들, 그리고 그 안의 낯모를 사람들.



그것들이 성큼성큼 다가와 눈높이를 맞추기 시작하면 벅차오르는 기대감.



공기는 어떨까, 온도는, 햇빛은, 음식은, 건물은, 사람들은 어떨까, 그리고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모든 것의 전환에 대한 기대감.



그 기대감에 앞다퉈 짐을 내리고, 입국 수속을 하고, 짐을 찾고, 마침내 발을 내딛은 새로운 땅.



조금씩 새로운 모든 것들에 의식을 빼앗기며 느끼는 만족감, 망각이 가져다주는 쾌락.



그러나 누가 말했던가, 익숙해짐이란 인간의 본성이 가진 가장 간사한 능력이라고.



새로운 느낌은 시간과 함께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오래지 않아 드러나는 같은 쾌락, 같은 고통, 같은 유혹, 같은 거짓말.



마치 피하고 싶어 떠나봐도 어디에나 있는 태양처럼,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존재론적 물음.



피할 길 없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여행이란 문제들이 드러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



그리고는 또다른 새로움과 그것이 선사해줄 망각을 찾아 다시 떠나는 것.



몇 번이고 반복하는 고의적인 외면, 고의적인 망각.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이 증명한 것, 과학이 발견할 신세계가 증명할 것.



구원은 여행에, 새로운 땅에, 새로운 여자에, 새로운 남자에, 새로운 물건에, 신대륙에, 신세계에 있지 않다는 것.



역설적으로 내가 달라지면, 다시 태어나면, 양심이 밝아지면, 존재론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면, 지구 전체가 새로운 곳이 되고 인생 전체가 여행이 된다는 것.



진정한 멋진 신세계란 항상 우리 곁에, 팔을 뻗기만 하면 닿을 곳에 있어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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