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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

by 이유

어두워진 종로 집으로 가는 길, 정류장을 향하고 있는데 저만치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종로의 인도는 넓기도 하고 사람도 많으니 그는 내게 여느 행인과 다름없다.

걸을수록 그 남자와의 거리가 좁혀졌는데 그가 어느 지점에서부터 묘하게 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넓은 길에서, 옷깃이 스칠 위기에 처하자 반사적으로 멀찌감치 피했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다가왔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평범해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마스크를 썼으니 인상이 정확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딱히 위협적이지도 않았고, 어디서 만난 적이 있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할 인상이었다.


그가 내게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악수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너 어디 있었어, 하는 친밀한 사이에서 잡는 제스처였다. 생각해보면 내게 손을 살며시 뻗으며 다가온 것 같다. 어쩐지 슬픔이 묻어있는 가벼운 동작이었다.

아무리 가벼운 제스처라도 정면으로 낯선 남자가 다가와 손을 잡는다면 목에서 낯선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나는 내 손을 잡고 뭐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뭐예요!"라고 외쳤다. 그 남자가 작고 낮은 목소리로 뭐라고 말을 했다. 뭐라고 뭐라고. 말들이 으깨지는 듯했다. 알아듣지 못했다. 술에 취했거나 다른 것에 취한 것 같았다. "네?"라고 아직 손이 잡힌 채 다시 물었다. 뭐라고 뭐라고.

뭐라는 거야 도대체.


그는 손에 힘을 주진 않았지만 놓지도 않았다. 나는 당황해서 소리만 높였지 손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가 다시 뭐라고 내게 묻더니 손을 놓아주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빨리 걷다가 뛰었다. 정류장에 도착해서야 두려움에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종종 희한한 일이 생긴다.

그럴 때면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이상하고 황당한 일.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말도 안 되게 정말 내게 일어난 일. 그 손이 빈 손이 아니라 흉기라도 쥐어있었으면 어땠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아찔하다. 혹여 강하게 내 손을 잡고 끌고 가기라도 했다면 나는 어떻게 저항했을까.


그런데 또 희한하다. 나는 왜 자꾸 그 잠깐이 문득문득 슬픈지.

요즘 같은 언택트 시대에 다가와서 손을 잡다니. 그리고 그 힘없는 손이라니. 툭하고 치면 퍽 떨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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