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와 졸부 3화

3화 골라내기

by 예나

예주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더니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서윤은 전시장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서윤 앞에 멈춰섰다. 지운이었다.

”혹시 예주 씨 기다리세요?“

서윤이 고개를 들자 눈이 번쩍 뜨일 수 밖에 없었다. 검은 정장에 구두, 정제된 이목구비, 하지만 느긋한 눈동자. 드라마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였다.

”네, 그런데... 누구시죠?“

지운은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박지운입니다. 예주랑 중학교 동창이예요. 친구예요, 친구. 전 지금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랑 잠깐 이야기 나눠도 괜찮을까요?“

그의 거침없는 태도에, 예주를 알고 있기까디 하다니 서윤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예주 씨랑 친하세요?”

서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네. 나름?”

“어떻게 알게 되신 거세요?”

“직장 동료예요.”

“아아... 예주 아직도 디자인해요?” 지운의 눈은 다른 데 향해 있었다.

“네.”

“이 근처 자주 오세요?”

“아뇨. 어쩌다 오게 됐네요. 예주가 좋아하는 작가래서..”

“호오...”

지운은 뭔가를 보고는 지갑을 꺼내 명함을 건넸다.

“언제든 연락하세요. 예주 친구라면 제 친구이기도 하니까.”

서윤은 지운의 명함을 조심스레 받았다. 그리고 지운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니 거기에 예주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서윤과 예주는 근처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겼다. 예주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었고, 입은 튀어나와 있었다. 서윤은 슬며시 말했다.

“저기... 명함 버릴까?”

“네? 아뇨!”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것 같아서.”

“....”

“아까 그 박지운 이라는 분이랑.. 사이 안 좋아?”

“사이 안 좋다고 하면, 네, 그런 거겠죠.”

“헐, 그 분은 너랑 친구라고 하던데, 뭐야?”

“친구라고요? 하… 그 녀석은 친구 아니에요.”

‘그 녀석’라니..., 서윤은 예주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랑 무슨 일 있었어?“

”...걔 생긴 건 안 그래보일 수 있는데 마마보이예요. 저도 걔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걔도 저 싫어해요. 제 소꿉친구를 가정실습실에 가두고 놀리면서 학폭했던 애예요.“

”어머나, 그게 무슨...“

”제 친구가 직접 말한 거예요. 걔가 그런 거짓말 할 애가 아니고 순진한 애예요. 그런데 그 놈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이라고 하더군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녹음도 제대로 들었거든요.“

”이게 무슨 일이야.“

”걔가 학생 때 일진이었고 아주 여우예요. 어른들 앞에서만 세상 착한 척하고... 걔네 엄마가 저랑 걔 이으려고 하는데 쓸데없는 짓이예요. 걘 여자도 많으면서 일단 지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거라고요. 저한테 친한 척하는 거요.“

”그런...”

직원이 두 사람의 음료를 내밀었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어휴, 박지운 그놈 사이코라니까요.“

하지만 서윤은 그 명함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예주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주임님이랑 저 사이도 어떻게든 물 흐릴 수도 있어요. 그 녀석, 꼭 틈새를 파고들거든요.”

서윤은 명함을 꺼내 버렸다.

“자, 됐지? 버렸어.”

“안 그러셔도 되는데, 하하...”

그렇게 말하는 예주의 표정은 한껏 풀려 있었다.


둘은 자리에 앉았다. 서윤이 물었다.

“예주 씨, 옛날에 유흥 좋아했다고 했잖아. 그럼 지금은 이런 것만 좋아하는 거야? 주말에 뭐해?”

“‘이런 거’라면 오늘 같이 전시회 본 거 말씀이세요? 음, 이런 것도 가끔이죠. 제가 주임님 남친 없대서 꼬셔본 거예요. 저도 남자친구 없거든요.“

”오호, 그렇구나.“

”애인이 없으니까 집에만 있게 되고 할 게 없더라고요.“

”그런 거 있어, 정말!“

서윤과 예주의 차이라고 한다면, 서윤은 연애할 돈조차 아끼고 싶다는 사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요즘 남자한테 쓰는 돈이 아까워요. 가난한 남자 질렸어요. 저만 그래요? 특히 자취하는 애들 정말 심해요~ 그렇게 데이트에 돈 아낄거면 토킹바를 가던가, 데이트 알바 쓰던가. 후후, 안 그래요?“

서윤은 자신의 친구 민수가 떠올랐지만 얼른 잊고는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이야!“

“주임님은… 결혼하고 싶으세요?”

“나? 당연히 결혼하고 싶지~! 할 수만 있다면…”

“에이, 해내실 수 있어요. 힘내세요~.”

“글쎄다~. 요즘 남자들 예주 씨 같은 여자 좋아할텐데.”

“네?”

서윤은 아차, 싶었다.

“아아니, 내 말은, 예주 씨 스타일이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서 말이지. 예쁘장하고.”

“고마워요. 실제로는 인기 없지만요. 하하.”

“그럴 리 없어~.”

“아니에요, 후후.”

예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이리저리 휘저어 댔다.

“혹시 다음 주 토요일에도 시간 되세요?”

“글쎄... 특별한 약속은 없을 텐데. 왜?”

“하이팰리스에서 입주민 파티가 있어요. 제가 사는 데요.”

“우와, 그런 행사가 있어?”

“매년 한 번씩 열리는 거예요. 동반으로 외부인 입장 가능한데 제가 친구가 없어서 누굴 데려가야 할지 고민 중인데.”

“그래서 나한테...?”

예주는 장난스레 눈웃음 지었다.

“그냥... 저 혼자 가면 좀 모양 빠져서. 주임님이랑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와, 나 그런 데 처음인데.”

“괜찮아요. 다들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그냥 똑같은 사람들이에요. 그보다, 주임님이랑 저랑 같이 있는 거... 나쁘지 않잖아요?”

서윤은 민망하게 웃었다. 그런 말, 누군가에게 들어본 게 언제였더라.

“그래도, 너무 드레스 코드 빡세거나 그러면 나 좀...”

“드레스? 제가 스타일링 해드릴게요. 옷, 악세사리 다 제가 챙겨드릴게요.”

예주의 말이 빠르게 이어졌다. 마치 이 상황을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이라도 한 듯.

“...정말 괜찮아?”

“완전요. 그리고 주임님, 어차피 언젠간 이쪽 세계 알아야죠. 사회적 감각, 필요하잖아요? 저만 믿으세요.”

예주는 그러고는 핸드폰을 꺼내 일정을 보여줬다.

“이 날이에요. 오후 6시부터 시작이고, 저녁까지 이어져요. 와인도 나오고, 사람들도 꽤 많아요. 재밌을 거예요.”

서윤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번 가볼게.”

“좋아요. 후회 안 하실 거예요.”

잠시, 예주는 커피를 마시는 척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 눈은 무언가를 향하는 열망의 눈빛이었다.


“팔 벌려봐요.”

예주가 거울을 등진 서윤에게 말했다. 하이팰리스 백화점 지하 1층, 의류 매장 프라이빗 피팅룸. VIP 고객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커튼이 쳐진 조용한 공간에 고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서윤은 어색하게 팔을 벌렸다. 시폰 블라우스를 입은 채, 드레스 여러 벌이 걸린 옷걸이 옆에 서 있었다.

“이건 어때요?”

예주는 금빛 옷걸이에서 진한 밤색의 실크 드레스를 꺼내 서윤의 몸 위에 대보였다. 어깨 라인이 깊게 파인 디자인. 허리는 날씬하게 들어가 있었고, 스커트는 허버지 위까지 흘러내렸다.

“…너무 노출 심한 거 아닌가?”

“이 정도는 기본이에요. 파티는 무대예요, 주임님.”

예주는 거울 너머로 서윤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너무 평범하면 시선조차 안 와요~.”

서윤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시선을 떨궜다. 이 낯선 공간, 값비싼 조명 아래에서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럼… 이건?”

서윤은 손에 쥐고 있던 드레스를 꺼내보였다. 베이지 톤의 단정한 롱드레스. 팔뚝 절반이 가려지고, 허리 라인도 심하게 조이지 않았다.

예주는 그걸 보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음… 너무 회식룩. 안 돼요. 그건 그냥 퇴근길 커피숍 갈 때나 입는 거.”

“아…”

“이건 어때요?”

예주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드레스를 꺼냈다. 딥 블루 오프숄더. 광택 있는 소재에 등 라인이 곡선으로 절제되게 파여 있었다.

“저, 이건 좀…”

서윤이 물러서려 하자 예주가 조용히 다가왔다.

“주임님, 저 믿는다 하지 않으셨어요?”

그 한마디에 서윤은 말문이 막혔다. 방금 전까지도 드레스에 치여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한 번 더 작아진 기분이었다.

“막 누구에게 예쁘게 보여야 하는 자린 아니지만… 그래도 멋있어야 하잖아요. 그 정도는, 서윤 주임님도 욕심내셔도 돼요.”

“…그럼, 입어볼게.”

예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만족스러운 눈빛. 마치, 장기말 하나를 바르게 세운 사람처럼.

드레스를 갈아입고 나온 서윤은 거울 앞에서 어색하게 손을 모았다. 예주는 조용히 다가가 손가락으로 서윤의 귀 뒤 머리를 넘겨주었다.

“이 귀걸이 해봐요.”

진주 드롭 귀걸이. 예주는 그것을 조심스레 서윤에게 달아주었다.

“자, 봐요.”

서윤은 거울을 봤다. 생전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도도해 보이고, 자기 것을 잘 아는 듯한 눈빛. 그게 자기라는 사실이 이상했다.

“…나, 진짜 괜찮은가?”

“이제야 좀- 당당해질 수 있겠네요.”

예주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의미심장했다. 무심한 듯 내뱉은 한마디가, 서윤의 뺨을 뜨겁게 만들었다.

“조금… 부담스럽지만.”

“처음이잖아요. 다음부터 더 익숙해질 거예요.”

‘다음’이라니? 서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주는 마지막으로 서윤의 어깨끈을 정리해주곤, 조용히 덧붙였다.

“주임님. 일단 오시기로 한 자리잖아요. 같이 재밌기로 해요, 우리.”

그는 말을 이었다. “주임님, 저는 제가 만든 사람 아니면 못 믿어요.”


쇼핑이 끝난 뒤 둘은 백화점 7층에 위치한 라운지로 갔다. 외진 곳에 있어 자연스럽게 입주민만 알 수 있는 장소였다.

“다리 아프죠, 주임님? 여기 앉아요.”

예주는 라운지의 창가 쪽 소파를 가리켰다. 서윤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다 말없이 앉았다. 처음 들어서는 공간인데도, 묘하게 숨이 막혔다. 천장은 높고, 사람은 거의 없고, 와인색 가죽 소파는 차갑게만 느껴졌다.

예주는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선 물끄러미 서윤을 바라봤다.

“드레스 잘 어울려요. 솔직히 좀 놀랐어요.”

“정말?”

서윤은 작게 웃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너무 비싸 보여서 몸이 굳더라고. 내가 입어도 되는 건가 싶고...”

“입을 수 있으니까 입는 거죠. 그런 거예요, 세상은. 어울리면 되는 거예요.”

예주의 말투엔 언제나처럼 부드러움과 단정함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건, 칼날이 천 조각으로 감싸진 느낌과도 닮아 있었다.

“저 사실...”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나도 친구 별로 없었어. 어렸을 땐 돈 많은 못생긴 여자아이라고 놀림 받았었어. 집이 힘들어지고 나니까 더 얕보더라고.”

“그런…”

“학교폭력이 있었어. 부자들만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내가 제일 부자였는데 시기의 대상이었거든. 뒷담화 안 했는데, 뒷담화 했다고 거짓말하고서 사람 못되고 이상한 사람 만들고. 초등학생들이 정치질 심했지.”


“주임님도 그런 일을 겪으셨어요?!”

서윤도 예주의 반응에 놀랐다.

“잠깐만, 서윤 씨도..? 그런 일을?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돼요. 저도 어렸을 때 예쁜 편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말수도 없어서인지 타겟이 되었죠. 저랑 말 한 번도 안 섞어본 애가, 제가 반장을 뒷담화 했다고 거짓말을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안 했다고 하니까, ‘그럼 내 친구가 거짓말 했다는 거야?’라면서 답 없는 상황을 조성하더라고요.”


“어쩌면 내가 겪었던 거랑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아? 나는 이런 걸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니까 뭐라는 줄 알아? 싸우지 말래.”


“누가 누군가를 괴롭히는 걸 ‘싸운다’고 표현한다는 건 사실상 방관이죠.”


“그러게 말이야.“

서윤은 말을 이었다.

”아, 왜지? 되게 시원하다! 난 내 얘기를 어디다 해도 불쌍해하기만 하고 공감은 못 얻었어. 무슨 말을 해도 결국은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아니냐’라던가 분위기 어두워지기만 하니까 어디 가서 말 못하는 얘기였거든. 그런데 여기서 예주 씨랑 이런 말 하게 될 줄이야..”


서윤은 고개를 살짝 떨군 채 눈을 감았다.

기억이, 한 장면처럼 밀려들었다.

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번져들던 초등학교 교실.
서윤은 네 번째 줄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칠판 앞의 반장은 친구들과 웃고 있었고, 그 사이 서윤의 이름이 들렸다.

그때였다.
정적.
반장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똑바로 서윤을 바라봤다.

눈빛은 서늘했고, 웃음기 하나 없었다.
그 애는 교실을 가르며 다가왔다.
주변 친구들도 따라왔다.
말은 없었다.
하지만 시선은 모두, 서윤 한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서윤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그리고 그 시선들응 그녀의 피부를 찢듯이 훑고 지나갔다.

선하다고 믿었던 아이도 고개를 돌렸다.
도움을 청하듯 바라본 눈에, 단 한 번의 반응도 없었다.

의자는 미세하게 흔들렸고, 뭔가 툭 떨어졌다.
연필.
서윤이 허리를 굽히려는 순간, 옆자리 아이의 신발이 그것을 밀어냈다.
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너지는 기분.
말을 해봤자 믿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 전부를 앞에 두고도 애써 컴퓨터 화면에 집중하던 담임 선생의 무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했던 말이 서윤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서로 싸우지 말자”
모든 걸 '쌍방'으로 덮는 그 말.

그날 이후로 서윤은 자꾸만 생각했다.
‘나는 진짜 나쁜 애인가?’
‘아무 짓을 안 한 것도, 결국 죄가 되는 건가?’


서윤은 다시 눈을 떴다.

라운지의 조명이 눈부시게 차가웠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 속에서, 그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으나,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연필을 줍지 못한 손이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말 의외네요. 이런 얘기 할 줄은.”

예주는 다리 위에 얹은 손을 가볍게 깍지 끼며 말했다.

“이런 거 너무 반갑네요. 그러고보면 전 성인이 되고 나서 요즘도 꽤 외로웠는데.”

서윤은 예주를 바라봤다.

“정말? 전혀 안 그래보이는데.”


예주는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게 외롭지 않다는 건 아니잖아요. 특히, 아무도 믿을 수 없을 때. 뭐, 저에겐 그런 시기가 꽤 길었거든요.”

“...믿을 수 없다는 건, 어떤...”

서윤이 말끝을 흐리자, 예주는 눈만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가족, 친구, 남자. 그런 거요. 다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다가오더라고요. 순수하게 날 위해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예주의 말은 서윤의 가슴 언저리를 미묘하게 건드렸다. 그녀 역시 그런 경험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똑같은 감정이라도, 예주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어쩐지 ‘테스트’처럼 들렸다.

“...예주 씨는 날 왜 이렇게 챙겨주는 거야?”

서윤이 마침내 물었다. 눈을 똑바로 보면서.

예주는 웃음을 지었다.

“그냥요. 주임님 같은 사람, 흔하지 않아서요.”

“흔하지 않다고?”

예주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좋은 의미로 드린 말씀인데. 의심해요?”

“아니, 그냥 아리까리해서.”

서윤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냥... 이렇게까지 챙겨주시는 게, 나한테는 좀 낯설거든. 솔직히 말해서, 부담스럽기도 하고.”

예주는 그 말을 듣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에 안심한 듯, 허리를 등받이에 기대며 미소지었다.

“그런 경계심, 좋아요. 저 그런 사람 싫어요. 너무 쉽게 무너지거나, 쉽게 기대는 사람.”

“그럼 나 같은 사람은? 어때?”

서윤은 아직 망설이는 얼굴이었다.

예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요, 서윤 주임님처럼 말할 줄 아는 사람 좋아해요. 속에 칼을 감추고 있는 사람. 그게 더 안전하거든요.”

서윤은 말이 없었다.

예주는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듯,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라운지 안엔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유리창 너머로 내려앉은 햇살이 고요하게 퍼지고 있었다.

서윤은 그 햇빛에 은은히 비친 예주의 맑고 하얀 피부를 바라보다, 문득 생각에 잠겼다.

왜 자신은 이렇게까지 예주에게 끌리고 있는 걸까.

이상했다. 그 순간, 울컥한 감정 사이에 동경 비슷한 감각이 살짝 섞여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눈빛도, 일부러 만든 걸까? 누군가를 미치게 만드는 방식으로 계산된?

진실이 무엇이든 그런 건 서윤에게 사소한 요소였다. 예주와 함께 있는 이 순간만큼은, 자신도 그 멀고 낯선 세계에 조금은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서윤에게 유령처럼 존재하던 인스타그램 계정에 누군가 DM이 온 것은.

서윤은 알림을 확인하고는 예주를 살폈다. 예주는 편히 휴대폰 하라고 손짓 했다. 서윤은 “잠시만”이라고 말하고는 DM이 누구에게서 왔는지 봤다.

지운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서윤씨, 맞으시죠? 예주 친구 분’

‘재미있는 얘기 들어볼 생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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