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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Oct 23. 2022

내 마음속에만 남겨진 말

- 네 마음속에만 남겨질 그 말 -


아이의 아토피가 환절기를 핑계로 심해졌던 며칠 전 어느 날,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하루 종일 " 먹으렴."부터 "분간 과자는 절대 먹지 말아야 해."까지 늘 해오던 일에 잔소리를 조금 더 얹어 늘어놓았을 테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일 때마다 피부에 크림을 더 꼼꼼히 발라주겠다며 온종일 괴롭혔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사춘기가 가와 문을 똑똑 두드리고 있는 것 같은 12살의 첫 아이가 온 얼굴에 짜증 돋아내 중얼거렸다. 아니 중얼거렸다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소리치며 토해냈다.


왜 나는 아빠 아들로 태어나서
아빠처럼 이런 피부인 거야!



난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작은 고요만이 대답해 주었을 뿐, 아이도 다시 그 말을 되풀이하거나 말을 이어가진 않았다.


언젠가 들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결코 듣고 싶지 않던 말이었다. 


조금 근사한 대답을 준비해 놓을 걸. 

잠시 후회했다.



래도 다행이었다.

남편은 근으로 퇴근이 많이 늦어진 날이었으니. 

그렇게 정작 당사자는 듣지 못했다. 여러모로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자다가 아니 자려고 노력했으나 잠들지 못한 아이가 자정이  되어 울며 나왔다.


내가 한 말 때문에 아빠한테 너무 미안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안아줬다.

상황이 슬퍼 아무 말도 없이 안고 있다가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음속에 슬프게도 남아있던 그 .



아빠의 첫 차는 '갤로퍼'였다.

뒤에 바퀴 하나가 붙어있고 말그림이 그려져 있는 싸개가 그 바퀴를 덮고 있던 회색 갤로퍼.

난 그 차가 싫었다. 이유도 없었다.


아니다. 사춘기와 완전히 이별한 지금 돌이켜 보니 이유가 있다.


하필 내가 다니는 중학교 교문 앞에 아빠가 일하시는 공장 입구가 있었다. 


아빠가 주간 근무인 주에는 당연히 같은 목적지로 가는 딸을 태워주고 싶으셨을 테다. 하지만 난 그 차도 싫었고, 정적만이 가득한 우리 집의 분위기가 그대로 옮겨진 차 안의 공기도 불편했으며, 그 불편한 공기 속 그 공장 앞에서 내리는 것이 싫었다.


아마 공장에 다니시는 아빠를 숨기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아주 못됐다.



어느 날, 아빠에게 말했다.

여느 때처럼 들리지도 않게 매우 작은 목소리로.


난 공장 입구 말고
저기 큰 도로에서 내려주세요.

"왜? 그럼 한참 걸어야 하잖아."

"그냥요."


아빠는 다 아셨을다.

그날 이후 아빠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때 내가 한 말이 떠올라 슬펐다. 죄스러웠다. 지워지지가 않더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 아빠와 이야기하다 난 용기 내어 그때 일을 꺼내보았다. 그런데 아빠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만약 그것이 아빠의 연기였다면 아빠는 단연 연기대상감이다.


그러고 난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며 으며 마무리했다. 그것으로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죄책감의 모자를 쓰고 있던 나의 말은 슬픔을 벗고 단순한 에피소드 한 편으로 남겨졌다.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남아 지우고 싶던 그 말이.




아이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아이의 마음속에 슬픔으로 뿌리내리기 전에.


"엄마도 그런 적 있어. 말하면서도 후회되던 말. 
심지어 난 너처럼 금방 알아채지도 못하고 몇 년이 흘러버렸지. 외할아버지한테 말이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 말이 내 마음에 남아 돌이킬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어. 지워지지도 않고.
어느 날 용기 내어 외할아버지에게 솔직히 말했는데 기억을 못 하시더라.  
내 마음에만 콕 박혀 있던 미운 말이었던 거야.

아빠한테는 전하지 않을 거야.
네가 다시 담고 싶은 그 말.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아빠가 잘못했네.


대신 우리 앞으로는 도로 담아내고 싶은 말은 하지 말자. 누구보다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
그리고 이렇게 용기 내어 얘기해 줘서 고마워."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니다.

분명 아이가 나를 키우고 있음이 틀림없다.

슬프게도 포근했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입이 간질간질.

전하고 싶네.  말의 주인공에게..: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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