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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Sep 11. 2022

"당신 아이 엄마 맞아요?"

- 아토피 환자의 보호자로서의 삶 -


돌아보면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는 날도 있다.

또한 스스로 언제나 옳은 일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조금 더 되짚어보면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로 정리되는 때도 있다.



그즈음 내 안에 내가 전혀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의사가 "당신 아이 엄마 맞아요?"라고 흘기는 시선으로 호통칠 때, 난 오래도록 생각했다.


정말 이러고도 나라는 사람이 엄마라고 할 수 있나. 그럼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지쳐 사라져 가고 있는 건가, 그리고 당신이 나의 삶을 살았다면 당신은 더 잘 해낼 수 있었을까. 아니. 이 말은 선한 의도를 가진 호통이며, 숨겨진 친절한 의도만 마음에 새겨보자.


수만 가지 생각으로 나를 돌아보게 하는 마디였고, 지금도 잊히지 않고 나를 다독이게 하는 마디이다.




남편은 극심한 아토피가 있다. 

처음 친정에 내려가 인사드린 날, 결혼반대의 첫 번째 이유는 단연 그의 아토피 질환이었다. 부모님은 이곳저곳 남겨진 핏자국과 대화 도중 정신없이 긁어대는 그의 모습을 보셨고, 돌아와 전화드리니 나중에 같은 병을 가진 자식을 낳게 되면 키울 자신이 있냐고 물으셨다. 앞이 훤히 보이는 그 길을 왜 굳이 선택하냐고. 저것을 좀 참기만 하면 되는 쉬운 병으로 생각하냐고.


사실 그런 질환을 안고 사는 그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것이 유전되지 않을 거라고 굳건히 믿었다. 촉한 피부의 나의 유전자가 그의 유전자를 이겨낼 거라 믿었을게다. 또한 그런 삶을 내가 조금도 겪어본 적이 없어 겁이 없었을 터였다. 



부모님의 걱정대로 그것은 두 명의 아이들 모두에게 고스란히 유전되었고, 하루하루 우리는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그러면 아토피라는 적군들 다시 여린 곳부터 공격하여 피가 흘러나올 때까지 순식간에 점령하므로. 정말 아토피와의 전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끝이 보이지 않고, 무엇 때문인 이유도 알 수 없지만, 그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는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워야 .


참고로 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바디로션이라는 것을 발라본 적이 없다. 피부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보통사람의 보통의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으로 긁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기에게 깨물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이를 낳고 어느 날 크림 값을 계산해 보니 매달 30만 원을 넘지 않은 달이 없었다. 보습제 외에도 여느 사람들처럼 아토피에 좋다는 것은 대부분 해보았다. 정말 여한이 없을 정도로. 숯, 편백, 탱자, 각종 약초 달인 물, 영양제, 식단 제한, 아토피 치료로 유명하다는 병원, 효과가 있다는 각종 보습제들.


결론적으로 말하면 어느 하나가 효과가 있더라 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것저것 열심히 해보지 않았다면 지금에 와서 '그때 해볼걸'하는 후회가 있었을 것이므로, 그런 면에서는 그 시간과 비용,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도 싶다.




아직도 생생한 새벽의 어느 날이 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일 년이 훨씬 넘은 때였다. 여느 때처럼 아이를 재우다 나도 모르잠이 들었다. 그때도 아이의 손에는 생이 만들어준 손싸개 씌워져 있었다. 눈을 떠보니 이불 매트가 피범벅이었다. 팔꿈치를 매우 깊게 긁어 파고 그 팔꿈치를 온 이불에 비벼대어 납작붓에 빨간 물감을 묻혀 낙서를 한 것처럼 보였고, 손싸개가 벗겨진 그의 손톱은 모두 피투성이었다. 그것이 얼굴에도 묻어 정말 처참했다.


그 이후로 난 밤에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긁지 못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낮시간보다 잠들어 지켜보지 못하게 되는 밤이 내겐 훨씬 두려운 시간이 되었다. 


결국 대학병원까지 이르렀다. 채혈 후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가 의사 선생님께서 본인이 아토피의 유전성에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며 남은 혈액을 연구에 써도 되겠냐고 하셨다. 기꺼이 드리오니 부디 낫게만 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계속 잠을 자지 못하는 상태였던 나는 늘 꿈속에 있는 듯 몽롱했는데, 같은 과 진료실 앞에 대기하고 있는 부모들의 표정이 모두 그랬다. 아무 표정도, 아무런 기운도 없어 보였다. 



처음엔 사소한 질환일 거라 생각했던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점점 24시간이 조금 더 치열하게 어려워졌다. 생각지도 못한 삶이었다.



주기적으로 알레르기 검사를 해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음식을 피해 요리를 해야 했고 아이가 계란, 우유, 호두 등 일부 재료에 아나필락시스(알레르기 쇼크)있는터라 외부음식은 금물이었다. 매 끼니를 집에서 해결해야 했고 환경적이 것도 자극이 될 수 있다 하여 심할 땐 외출도 삼가고 집에서 생활했다.


어느 날 생선살을 갈아 어묵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양이 많아 이웃에게 한번 드린 적이 있다. 그분은 아직도 나를 아이에게 온 정성을 쏟는 대단한 엄마로 기억한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먹는 것과 재우는 것에 신경 쓰느라 어쩌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부족하기 그지없는 사람일 뿐.



먹이고 나면 아이가 긁을 틈이 나지 않도록 즐거이 놀아주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지루해지면 그의 손은 자석에 이끌리듯 긁으러 가므로 온전히 '그의 취향'에 맞추어 노는 것이다. '나의 취향'에 따책을 읽어주기 시작하면 그의 손은 매우 민첩하게 긁으러 가기에 책은 한동안 도저히 읽어줄 수가 없었다. '그의 취향'은 전혀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두 시간에 한 번씩 온몸에 보습제 바르기. 내가 10년 넘게 아토피를 관리하며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물론 도움이 되는 다른 방법들도 있었지만, 피부가 건조하지 않게 일정한 시간마다 보습제를 바르고 아침과 저녁으로 스테로이드제까지 꼬박꼬박 바르는 것, 이것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옷을 다 벗기고 크림을 바르고 완전히 흡수될 때까지 두드려주고 옷을 입히기까지 20분 정도 소요된다. 이것을 두 시간마다 하루 종일, 매일매일. 

현실적으로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내게도 아이에게도.


어디를 가나 크림과 스테로이드 연고부터 챙겼다. 조금만 나태해져도 그의 손은 긁으러 가고 긁기 시작하면 피가 날 때까지, 그럼 그 살이 돋아날 때까지 계속 진물과 가려움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러기를 10년이 되니 요즘 난 내가 스스로 머리를 묶는 것도 힘들다. 팔을 백 년은 쓴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떠올린다. 이제 많이 고와진 아이들 몸 구석구석을.



그리고 공포의 밤 시간. 

잠은 여느 아이들의 컨디션에도 중요하듯 아토피를 가진 아이들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저녁 9시에는 잠들 수 있도록 씻기고 크림을 바르고 나서 사용하지 않았던 새양말로 손을 씌우고 재웠다. 


커 카면서 맞는 손싸개가 없었고, 손싸개는 쉽게 벗겨지므로 통풍이 잘 되는 얇은 으로 된 벗기기 어려운 쫀쫀한 양말을 사서 손에 입혀 잤다. 지금도 너무 심하게 가려울 때에는 본인들이 양말을 먼저 씌워달라고 할 정도로 오랜 시간 아이들이 힘들게 보냈다. 나도 함께 손에 씌우고 자곤 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갑갑하고 불편해 잠들기 어려웠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달도 가고, 그렇게 모르는 사이 년이라는 시간 사라져 버렸다. 




복직을 하고는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집에 도착하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무엇보다 주기적으로 보습제를 발라주어야 하는 루틴이 무너져버렸고 순식간에 아이들의 온몸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당시 연가를 내기도 어려웠던 상황이라 주말에 아이들과 피부과에 갔다 듣게 된 말이다.


당신 아이 엄마 맞아요?
당신 얼굴이 이 모양이었어도
바로 병원 안 갔을 겁니까?
얼마나 괴로운지 아세요?


병원에서 온몸을 보여주기 어려워 찍어두었던 사진..


다 맞는 말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그때부터 느꼈던 싶다. 지금 난 무엇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가까지.


돌아보니 감사한 말이다. 지금 내가 이곳에 이렇게 있을 수 있게 한 시작점이 된 고마운 분일 테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나를 제외한 우리 집 아토피 3인방은 그 병원의 VIP 단골이지만, 이젠 그때의 피부와는 완전히 멀어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바뀐 것.

이제 아이들이 스스로 바르기 시작했다.

아직 많은 연습이 필요해 보이지만, 그래도 좋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사실 난 크림의 그 들러붙는 척척한 감촉너무나도 싫었다. 죽을 때까지 내 몸에도 절대 바르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크림 지옥으로부터 탈출하는데 성공!



끝이 없을 것 같던 일들에도 반드시 끝은 있다. 설령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끝의 모습이 아니라고 해도. 이제 그 끄트머리에 가까워졌다면 이젠 내가 원하는 끝의 모습으로 다듬어 가보아야지.


아토피, 너를 지구 밖으로 영원히 추방할 테다! 

지구출입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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