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ㅡ May 01. 2023

배달 앱 없는 사람, 저요!

- 아토피와 코로나로 단련된 생존셰프 -


어린아이를 정신없이 키워가야 할 때 즈음, 직장에서는 경력상으로도 직급상으로도 정신없이 일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한다. 그렇게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치열함이 겹치게 되니,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먹는 것이 점점 싫어졌다.


한때는 70kg을 훌쩍 넘었었는데 조금씩 삶에 치여 하필 제일 먼저, 먹는 것이 싫어졌던 듯싶다. 오물거리삼키조차 '일'이 되어버려 하기가 싫었.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가 없더라. 돌이 지나면서 더욱 악화되는 아이들의 아토피 질환으로 피부상태를 확인해 가며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 먹여야 했다. 각종 유기농 재료들로 요리하고, 먹고 난 뒤 피부상태를 확인해야 했고, 버리고 토하고 실패를 거듭하며  많은 시간을 먹을 것을 준비하는 데신경 썼다. '먹는 일'에 질려버릴 정도로.


긁고 할퀴어져 움푹 파인 살들도 먹어야 돋아날 테고, 그의 안에 내부기관들도 먹고 성장해 가며 단단해져야 아토피를 이겨낼 생겨 테니. 오로지 그 생각만 하며 요리했다. 


그렇게 금시에 십 년이 흘러가 버렸다. 사라져 버렸다는 말에 가까울 정도로, 없어져버렸다.

 


게다가 둘째는 아토피에 더하여, 호두, 계란, 유제품 등 일부 식재료에 아나필락시스 쇼크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알레르기 검사를 하며 식재료에 제한을 두고 요리해야 했으므로 외식은 불가했다. 물론 그것도 여러 번 크게 혼쭐나고서안 사실이지만.


일반 분유마저 극심한 알레르기로 먹일 수 없었고 삼키고 넘겨내는 에 이상이 있어 매일 수도 없이 분수토를 하니, 둘째 아이에겐 '먹는 일'이 정말 '커다란 일'이 되어버렸다.


방수요를 여러 개 준비해 두고 토해낼 때마다 빨아내던 그 시절에는 경쾌한 물소리를 핑계 삼아 많이도 울었다. 토해내고 난 뒤 입 주변이 벌겋게 까지고 눈이 퉁퉁 불어 엉망인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아무 일도 아닌 것 마냥 웃어  애썼지만, 눈에 가득 고이는 눈물은 감추기가 어렵더라.


그때 웃어주지 못한 것을 나는 지금도 가장 후회한다. 




대학생활 내내 자취생활을 하며 70kg까지 살을 획득하였으므로 요리에 관심도 있고 조금은 익숙할 것 같지만, 사실 철저히 음주로 얻은 살들이었고 요리에는 깃털 하나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환경이 중요하다 했던가. 아픈 두 아이의 덕분으로 밥맛이 뚝 떨어져 가던  길고 긴 요리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엔 이유식 한 국자를 만드는데 하루종일이 걸렸다. 저렴한 곳으로 찾아가 유기농 식재료를 사서 손질하고 다지는 데만도 초보요리사는 시간이 많이도 걸렸으니, 만들고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바로 다음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또한 그렇게 먹이고 나면, 아니 먹이는 중에 분수토를 하여 내어놓으니, 다음 끼니는 다른 재료로 더 잘게 다지고 조금 더 맛이 나게, 그렇게 매일 열심히 요리했다. 그들의 취향을 알아내기 위해. 리고 내가 요리에 몹시도 소질이 없었으므로 많이 노력할 수밖에.


'언제까지 이래야 ?'를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다음 끼니엔 게워내지 않기를 바랄 뿐, 그 이상을 바라고 기대하면 결국엔 더욱 슬퍼지더라. 



그렇게 둘째 아이는 식재료에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응급상황으로 병원을 곁에 두고 뛰어다녀야 했고 아이는 말라갔다. 병원에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려 혀에 막 대어도 사가운에 닿을 듯 힘차게 게워내는 바람에 의사들은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했지만, 병원에 지쳐버린 아이가 부둥켜안고 질겁하기에 조금 더 노력하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가 입학을 하고 동시에 코로나가 찾아왔다. 때마침 나의 사직도.


나의 본격적인 요리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나의 요리를 맛깔나게 도와줄 이이 생겼으니 매일매일의 삼시 세끼가 예전만큼 두렵진 않았다. 들과 요리해 본바, 아이들의 알레르기와 무관하였으며, 언제든 냉장고 안에서 나를 도와줄 채비를 하고 대기 중이니 어떤 요리도 뚝딱 해낼 수 있었다.

<나의 요리 친구들>


삼시 세끼, 사투를 벌이며 코로나의 시기를 3년 즈음 겪었을 무렵,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다 아이와 유치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엄마가 말을 건네어왔다.

"궁금한 게 있어서요, 아이가 어떻게 저렇게 살이 쪘어요? 너무 달라져서 꼭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지난 겨울방학이 시작될 때 아이가 내게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엄마, 방학 동안 제발 항상 밥솥 안에 밥이 없지 않게 해 주세요."


그렇다. 그들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자연스레 병원과도 멀어졌고, 아팠던 기억 덕분으로 스스로 몸에 좋은 것들로 골고루 야무지게 챙겨 먹는다. 그런 이유로 나는 또다시 '요리감옥'에 갇혀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행복 감옥이다.




무엇 때문에 잘 먹기 시작했냐고 묻는다면, 이것도 시간이 필요했던 일이었다. 긴 시간 두고 커가면서 나아지더라. 조금씩, 한 걸음씩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큰 걸음으로 나아졌다. 


음의 7년 동안 매일 실패하고 정성과 시간을 다해 만든 음식을 버리고 그도 토하 나도 토하고를 반복하다, 어느 날 모르는 사이 토하는 것이 사라졌다. 그러다 어느 날은 밥 한 공기를 다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밥을 더 달라하더라. 

세상에.


아이의 몸속도 시간이 지나며  단단하게 자라나, 음식의 역류현상도 줄고 위의 공간도 늘어나고 꼭꼭 소화시킬 힘도 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시간 동안 형편없던 나의 요리실력도 조금은 나아졌을 테고. 


그리고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없었으므로 본인이 원하는 걸 물어보고 언제든 만들어주었다. 그래봤자 아이들의 식재료는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 아니었고 냉장고에 구비해 둔 것으로 충분했다.


지겹도록 원한다고 해도 지겹도록 해주었다. 다르게 먹어보자고 타이르거나 몸에 좋다는 강황가루 등 각종 영양가루를  요리하지 않았다. 잘 먹지 않는 아이의 입맛은 몹시도 예민하기에.


먹고 싶은 때에 조금만 만들어주고 남은 음식을 다시 데워주지도 않았다. 아니 남지 않도록 조금씩 요리했다.  먹었요리다음 끼니에 데워주면 먹지 않더라. 그저 본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단순하게, 그때그때 해주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뒤에는 그 지겹게 좋아하던 식재료로 슬쩍 조리법을 다르게 하여 만들어 줘도 본인좋아하고 익숙한 재료임을 알기에 밀어내지 않고 즐거이 먹게 되니 점점 더 먹을 수 있는 요리들이 많아지더라.


또한 그 지겹도록 좋아하는 것들을 지겨워하지 않게 이제는 같이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그렇게 '먹는 일'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많았다. 먹는 것들이 좋아지니 몸도 마음도 튼튼해진 느낌, 자신은 이제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고, 아이가 내게 말해주었다.



잘 먹기 시작하면서 아토피 증상이나 알레르기도 좋아졌고, 종종 하는 외식도 병원에 갈 일 없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집에서 먹는 음식을 훨씬 좋아한다. 물론 맛있어서가 절대 아니고 십 년이 넘도록 적응된 탓이다. 그것이 내게 아주 종종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지만, 분명 그것보다 훨씬 더 큰 행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먹는 '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아픈 아이를 돌보다 보면 쉴 새 없이 돌아오는 끼니에, 아픈 아이의 모습이 겹쳐, 부모로서 자책하게 되고 지치고 슬퍼지는 마음 감출 수가 없더라. 하지만 그것조차도 시간에 조금은 맡겨야 한다.


극적인 마법의 열쇠를 난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 나아진다는 것을 안다. 이것을 알았더라면 힘든 시절 나의 아이에게 조금 더 여유 있게 웃어줄 수 있었을 텐데. 끝이 보이지 않던 그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돌아가 그때의 나에게 알려준대도 울어대느라 듣지도 못했을 테지만.



그리고 희한하게도 요리를 하면 할수록 요리하는 사람의 입맛은 뚝뚝 떨어지더라. 물론 여전히 초보요리사인 나의 실력 탓일 테지만. 


여하튼 그럼 이젠 나의 입맛을 살려낼 요리를 시작해 까?


아니면 나도 배달 앱을 설치해 볼까나:D





이전 07화 내 마음속에만 남겨진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