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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Oct 17. 2022

누가 친정이 편하다고 했는지요..

- 잠시 쉬었다 조금씩 다가갈게요 -


일요일 저녁 7시에서 8시 사이.

10분 정도.

내가 나의 부모님께 전화드리는 시간.


이것은 나만의 조금 오래된 루틴이다.

내겐 조금 힘든 시간이자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시간. 그것을 놓치고 나 다음날 "무슨 일 있니?"라고 메시지가 도착하는  보면 부모님께도 하나의 스케줄로 이미 자리 잡은 듯하다.


이럴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신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이겨내려 애쓰는 나를 응원해 주고 계시는 거라고 단단히 믿고 다.




나는 첫째 딸이다. 많이 사랑한다. 부모님을. 떠올리면 슬퍼서 마음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렇게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 글쓰기가 어려울 정도로.


나는 서울, 부모님은 울산에 살고 계신 이유로 1년에 2~3번 밖에 만나지 않는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십 분의 통화가 왜 이렇게 긴장되고 어려울까. 앞뒤가 맞지 않는 이런 나의 감정과 행동이 싫고 죄책감으로 괴롭지만 억지로 해낼 수 없는 일이. 이젠.


이제 편안함이고 싶다.

부모님에게 내가, 내게 부모님이.

'사직'이라는 일로 나를 찾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였으니 이것 역시 행복함으로 풀어나가고 싶다.



난 먼저 연락을 하는 타입이 아니다. 특히나 전화는 결코 먼저 하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고 외로운 순간이 있었대도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대학교 때 선배들도 그랬다.

"너처럼 연락 안 하는 애는 처음 봤다. 그러니까 친구가 없지."

그런가.



그런 나의 직장은 전화가 많이도 오는 곳이었다.

바쁠 때는 수화기를 내려놓기만 하면 다시 울리니 회신해주어야 할 이에게 전화를 다시 걸 방도가 없을 정도였다.


쉴 새 없이 울리는 바람에 전화를 걸 수 있는 틈이 나지 않았고, 그러니 전화를 건 사람들도 많이 기다렸을 테고, 전화를 기다린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테니 기분 좋은 대화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쏟아지는 비난을 듣고 시작하는 대화가 갑자기 유쾌한 대화로 이어지긴 어려웠다. 그렇게 며칠 지내다 보면 전화 울리는 소리만으로도 두려웠다. 지독한 적막 속에서 살아왔던 에게 그랬다. 


그렇게 늘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소리로부터. 전화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사직 후 이와 같은 상황에서 멀어지면 아지려니 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래서 아무리 형편이 어려도 장난감이나 책들을 중고로 팔아 본 적이 없다. 전혀 모르는 타인들의 전화나 문자의 공포를 이겨낼 자신이 없어 그냥 내가 안 먹고 안 쓰는 편이 나았다. 학부모 모임에서 연락처를 주고받은 후 자주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도 어려웠다.


어려우면서도 런 내가 참 싫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발신하는 버튼이 부모님인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다가오면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이젠 시간의 반경이 넓어지면서 일요일 전체를 마비시키는 느낌이다.


그 마음을 알아챈 남편이 항상 먼저 전화를 걸어 내게 건네주었지만, 그럼에도 긴장스런 시간의 반경은 점 더 범위를 넓혀갔다.



'내가 전화라는 매개체무서워하니까 그런 거야.' 라고 위로하기에는 친정방문 후에 늘 몸살 아닌 몸살로 누워있는 나를  때마다 나조차 그런 나를 이해해 주기 어려웠다.


분명 친정에 가서 부모님과 대화하는 것 외에 몸을 쓰 하는 일이 없었다. 단지 조금 긴장했던 탓인 걸까.


언젠가 친정방문 후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남편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 이제 부모님이 이혼하셔도 괜찮을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할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성장하면 언젠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여전히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네. 이제는 우리 모두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하고는 많이 울었다.



그랬다. 늘 불안했다.

격양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로 빠르게 오가는 날카로운 말들에 내 말이 들어갈 틈 없었다. 겨우 비집고 들어가도 퉁퉁 튕겨져 나가는 내 말과 대화라고 할 수 없는 대화 아닌 대화들. 그렇지 않아도 말이 쉽게 내어지지 않던 나는 그렇게 점점 말하는 것이 싫어졌던지도 모르겠다.


그런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너무나도 안타깝다. 오랜 시절 벗어나기 어려웠던 가난과 겹치는 아픔들을 겪어내고 남겨진 상처들을 서로 보듬어 줄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았고, 그런 것들을 내가 크고 나면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다룰 수 있는 부분아님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니 허탈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이 고난만 이겨내면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견딘 시간 뒤에 남겨진 희망의 부재에 더없이 허탈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날카로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정신과를 방문했을 때 의사가 물었다.

"가장 힘든 게 뭐예요?"

"사람이 싫은 거요. 저도 가족도 부모님도 다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싫어서 뭐가 힘들어요?"

"교류 그런 감정이 죄스러워요."

그럼 마음 가는 대로 해요.
억지로 전화하지 말고 찾아가지도 말아요.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의 마음의 불편함은 본인이 그대로 느끼면 그만이에요.
그것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마음의 불편함'이라. 

그렇다.

난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부모님은 절대 나로 인해 마음의 불편함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것.  사실을 알고 있기에 퇴사를 결정하고 나서 내 마음이 더욱 불편해진 것일 테다. 


그분들의 힘들었던 삶,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한대도 절대 근심의 부분이 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런 딸의 모습을 원했던 건 절대 아닐 것이다.


힘들다고 부모님께 투정 부릴 줄도 알고, 행복함을 나 줄도 아는 따스한 아이이기를 바라지 않으셨을까.


시간과 횟수를 정해놓고 의무처럼 내어놓는 감정과 행동들을 받아내길 원하셨던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일요일 저녁 십 분의 통화는 부모님 마음의 불편함을 핑계로 내 마음의 불편함까지 키워나가고 있는 이해불가한 행위일 뿐인 것이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꼭꼭 다져 만든 이상한 감정 뭉치. 이것을 버려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난 반드시 우주 밖으로 던져버릴 테다.



 곁에서 평온함을 연기하던 첫째 딸은 저도 모르는 사이 오롯이 불안으로 덮여버렸다. 그 뿌연 안갯속에 나의 길도 잃어버린 채 잠시 그 자리에 앉아있다. 그 불안의 안개가 걷힐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한 시간 안에서 불안함 모조리 걷어내어야 온전한 나를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더는 서두르지 않을 테다.

걱정이나 불안함으로 인생을 낭비하진 않을 것이다.


부디 조금만 기다려줘요.
언젠가 고이 내 모습으로 걸어 나와,
부모님께 훨훨 날아갈 테니.
아주 조금만 기다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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