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듀듀 시험 합격, 뮤뮤뮤 팔로워 묭묭, 츄츄츄 구독자 춍춍 등 구체적으로 써 내려간 가족들의 새해목표들이 거실 한 구석에서 지금도 빛을 발하고 있지만, 그것과 다르게 형체를 잡을 수 없는 나의 마음의 방향을 적어보고 싶다. 스스로 상담 중인 나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게. 불안감에 파묻히지 않게. 나의 글이 진정 마음이 단단해지는 상담일지가 되기를바라며 고스란히 남겨본다.
후회 없는 삶.
나 또한 많은 이들처럼 그랬다. 오랜 시간 그것이 참 중요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당장 죽음을 눈앞에 둔대도 오늘을 후회 없이 살아내고 싶었다.
나와 가장 오래된 친구는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즐거이 일하고 있다. 아이들이 공부에 지쳐 질문을 할 때 나의 말들을 인용한다고 했다.
"선생님, 수능 3개월 남으니까공부가 더하기 싫어요!"라고 아이들이 말하면,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누가 그러더라. 너 3개월 공부할래? 15개월 공부할래?"
내가 그녀에게 자주 하던 말이라는데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 인생의 어느 때에도 하루가치열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보니 어땠냐고 묻는다면 철저하게 그저 치열하기만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안타깝게도그저치열하게 사는 것이 후회 없이 살아가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두렵고 막연했으며 지치고 힘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때는 그렇다는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치열하게 의식도 없이 굴러갈 때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생각할 수 없으니 힘든지도 몰랐을 테다.
그래. 그거 하나는 좋았다.
결과적으로 나는합리적으로 치열하지 못했다. 근사하게 성공한 사람들의 치열함과는 달랐던 듯싶다. 영리하지 못한 치열함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는 치열함이 다라고만 생각했던, 그 '후회 없는 삶'을 내 마음의 첫 번째로 두지 않을 테다.
노력하지 않는 삶.
이제는 이것을 살아보고 싶다.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느껴보고 싶다.
내가 열개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내일의 두 개까지 끌어와 열두 개의 에너지를 태우며 노력하는 삶 말고, 다섯 개만큼 노력하고 나머지 다섯 개는 나의 가족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천천히 아껴 쓰고 싶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해본 적이 없으므로 모르겠다. 이제 천천히 알아가야 할 것이다.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위해 생각도 없이 불태우듯 달려가기보다 초 끝에 간신히 붙어 타오르는 아기 불씨처럼 천천히 타오르고 싶다. 더는 삶에 지치고 싶지 않다.
삶이 나를 지치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삶을 지치게 만들었다는 것을이제야 깨닫고 있다. 그러니이제는 천천히 혼자만의 세상에서 나와, 나처럼 지쳐있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 보고도 싶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와보고 싶다.
향기로운 삶.
사람 내음이 가득한 지하철역에서 향기로움이 풍겨왔다. 저절로 고개를 들고 살폈다. 특별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플랫폼에 가만히 서서 먼 곳을 보다 알았다. 결혼식에 다녀온 것 같은 누군가의 손에 들린 싱그러운 백합 세 송이. 예쁘게싸이지도않고그저 손에 꼭 쥐어진, 눈에 띄지도 않는 흰색 꽃 세 송이.
딱 그것이면 좋겠다.
그만의 향기를 먼 곳까지 고이 내어주는 사람, 예쁘게 포장하지 않아도 함께 있고픈향기로운 사람, 보이지 않는 향기만으로도 커다란 위로가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올해의 수많은 날들도 여느 때처럼 하루하루 나만의 레시피로 정성스레 채워나갈 것이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고, 걱정과 핀잔을 주는 사람들을 뒤로 두고,나만의 향기를 차곡차곡 만들어 담아언젠가 아낌없이 내어주기 위해 보통의 날들을 하루하루 특별하게 살아낼 것이다.
그렇게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꿈꾸며 살아갈 테다.
얼마 전, 우연히 은둔형 외톨이 지원기관 대표의 강연을 접하게 되었다. 여러 에피소드들을 듣다 갑자기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창 힘들었던 때였다. 나는 말이 내어지지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음을 알고 당장 월세와 생활비 충당을 위한 과외부터가 걱정이었다. 일부러 스스로 고통을 줘보기도 했다. '악' 소리는 나지 않을까 싶어서. 크게 소용이 없었다.
아프다고 과외를 두 달만 쉬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문자로 전했고, 부모님께도 문자로 간간이 안부를 전했다.
집에만 있었다. 아니 '박혀 있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싶다. 두 명 정도 누울 공간의 조그마한 원룸이었고, 나는 그곳의 한 구석에 온종일 '니은자' 모양으로 앉아있었다. 텔레비전도, 불도 켜지 않았고, 밤에도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잠이 들면 그만이었다. 날이 밝아 눈을 뜨면 시선이 가는 곳에 고정해 두고 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찾아왔다.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주길 부탁했다. 다섯 걸음 정도 되려나. 내가 앉은 모퉁이에서 대각선 방향에 있는 문까지. 그곳에 닿질 못했다. 기운이 없었고 소리가 안 나오는 기가 막힌 내 모습을 그들에게 들킬 수가 없었다. 그렇게괜찮다는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소중한 그들을 위해서라도 웃으며 밖으로 나가야 했고, 현실적으로는 당장의 월세 때문에 일어서나가야 했다. 시간이 흘러 다행히 나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물론 현실에 떠밀려 나온 것이겠지만, 이유가 어떻든 나의 몸과 목소리는 구덩이에서 나오게 되었다. 어떻게 나오게 된 건지 구체적인 방법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온종일 느꼈던 끔찍했던 낮과 밤의 감각만이 생생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