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ㅡ Sep 01. 2023

닮기 절대 금지!

- 날 돌아보고, 널 안아본다 -


아이의 유치원 상담 때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님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고.

"저를 닮은 것 같아, 걱정이에요."

"대체 누굴 닮은 건지, 걱정이에요."


과연 나의 이야기였다. 아이의 불안한 부분의 반 나를 닮은 것 같아 러운 마음으로 걱정스러웠고, 나머지 반절나를 조금도 닮지 않아 해할 수 없었기에 다른 방향으로 걱정했다.


10년을 넘게 아이들과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의 마음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도 아이 둘,   모르겠고, 나를 닮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아이의 엄마로서 적당한 길을 가고 있는  여전히 확신이 없으며, 이런 엄마가 정상인건지도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혹여 놓치는 일이 없도록 아이의 말에 그득히 귀를 기울이고, 그것들이 날아가지 않게 되뇌어 곱씹어볼 뿐이다.




초등학교 4학년의 아이가 하교하자마자, 발그레 달아오른 뺨을 내게 비비며 깊숙이 안겼다.

아무런 말도 없이.


어떤 말을 네게 건네주면 좋을까?

난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미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난 초등학교 때 조회시간이 몹시, 아니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싫었다. 중학교 때에도 고등학교 때에도 그곳이 운동장이든 강당이든, 많은 사람들 속에 짝을 찾아 줄을 맞춰서야 하는 시간, 그것무서운 형상으로 나를 통째로 삼켜버리는 기분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나에게만 보이는 무언가가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따가운 시선과 차가운 말들을 막아줄 무엇이든.


50명이 넘는 한 반의 학생들 속엔 다양한 아이들이 숨어있었다. 그중 너무나도 고요해서 보이지가 않는 아이, 그것이 나였다. 아이들이 나라는 사람이 싫어서 나와 놀지 않는 것이라기보다, 내가 보이지 않아서 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느낌. 나는 언제나 그런 느낌으로 학교의 묵직한 공기 안에서 유령처럼 홀로 보이지 않게 떠돌아다녔다.


어떤 때엔 비참하리만큼 존재감이 없던 아이, 그리고 어쩌다 그들의 눈에 띄었다고 해도 무시해도 괜찮을 아이. 말로 내는 방법을 몰랐을 정도로 작았을 테지만, 나는 모든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아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첫 조회시간에 키번호순으로 서는 줄 알고 가운데 즈음 서있었다. 아이들은 조금씩 눈을 흘기다 혹여 중간에 끼어버린 나 때문에 본인들이 손잡고 있는 짝꿍과 서지 못하게 될까 봐 째려보기도 하고, 뒤로 가서 서라며 입을 모아 소리치기도 했다. 미안했다.


그 이후로는 언제나 맨 뒤에 섰다. 기대를 버리고 나면, 상황을 인정하고 나면 덜 외로웠다. 그러고 보면 우리 반의 아이들 수는 왜 항상 홀수였을까.




나는 친구가 없어...

고요히 안긴 채, 더욱 뜨거워진 볼을 내게 대고 그가 겨우 말을 냈다.


4학년의 나의 둘째 아이는 입학과 동시에 코로나가 시작되는 바람에 3년 동안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경험하지 못했다. 학교를 거의 갈 수 없었고,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벗은 적이 없었으므로 친구들 얼굴을 제대로 볼 수도, 말이나 표정으로 서로 교감을 할 수도 없었을 테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극심한 아토피와 아나필락시스(알레르기 쇼크 증상)가 있었던 터라 집에서 생활하는 때가 많아 친구를 깊게 사귀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둘째 아이를 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복직하고 거의 매일같이 자정에 퇴근하는 바람에, 내가 마음속을 사랑으로 다 채워주지 못한 아이, 앞으로 더 큰 숟가락으로 가득 채워주어야 할 아이였다.



이제껏 친구를 제대로 사귀어본 적이 없는 탓에 이번에는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볼 거라며 용기 내어 간 개학날, 그리고 일주일쯤 지난 오늘, 절망하여 내게 안긴 것이다.


다음 달부터 앉게 될 짝꿍 투표 후에 아이들이 서로 싫다며 울고 다투는 바람에 마음이 더 오그라진 모양이었다. 본인의 짝꿍이 그런 것이 아니었음에도 마음이 퍽 가라앉았던 게다.



무슨 말이 좋을까. 당장에 떠오르지 않을 때는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오래도록 안고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 때문에 겪는 일인 것만 같아 미안했다. 그리고 항상 혼자였던 나를 돌아보았다. 커다랗고 시끌벅적한 운동장 한가운데 서있던 나는 손이 얼음처럼 차가워 시렸고, 고개가 배꼽까지 내려가 언제나 뒷목이 아팠다.


렇게 그 시간들이 지나고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마주하고 니, 조용히 다가 따스하게 두 손을 잡아주고 볼을 쓰다듬어 고개를 올려주고 싶다. 그리고 작은 책 한 권을 손에 들려주고 싶다. 곁에 있으면 절대 외롭지 않을 근사한 책 한 권을.


그렇게 나는 나를 돌아보다 내가 알려줄 수 있는 일들을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지금  품에서 느껴지따스함언제든 꺼낼 수 있게 마음속에 저장해 두라고, 그렇게 네가 어디 있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속삭여주었다. 네가 하루를 마치는 곳에 항상 내가 널 기다리고 있겠다고도 말해주었다.


그리고 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너와 같은 아이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그것마저도 용기내기 아직 어렵다면 네가 외롭지 않게 네가 좋아하는 책을 두 권 정도, 책가방에 더 넣어두라고 말해주었다. 엄마는 책을 만나고 나서 혼자가 두렵지 않은 일이라는 걸 진정 깨닫되었다고도.




정말 유쾌하지 않았던 일, '항상 혼자였던 나를 마주하는 일'마저도 이렇게 소중한 경험이 되고 만다. 닮지 않기를 바랐던 소리 없는 나의 모습을 닮아버린 것 같은 아이에게 조곤조곤 내어줄 수 있는 이야기보따리가 된 것이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생의 어느 즈음에 렇게나 외로운 때가 있대지나고 나면 지금의 나와 같이 외롭지 않게, 근사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그를 위해서라도 더 외롭지 않게, 야단법석을 떨며 신나게 살아야  테다. 



렇게 너는 오늘도 나를 키우고 있는 중이다.

언제나 내가 너를 키우는 중이라는 말은 거짓 것이다.


아니,

너는 나의 자라도록 나를 안아 돌보아주고,

나는 너의 몸이  자라도록 오늘도 요리 중이니,

우리는 서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키우고 있는 중인 것이다.


자, 누가 더 잘 키워내는지 두고 보자꾸나:D






이전 10화 들켜버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