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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Aug 08. 2023

우울자를 도와준 가족들의 노력

- 우울전달자 대패 & 행복전달자들 압승 -


소심한 겁쟁이인 나의 경우,

"나 정신건강의학과 좀 가볼게."라든가, 

"나 마음병원에 가볼게."유사말이 입에서 쉬이 나오지가 않더라.


그렇게 조용히 갔던 병원에서도 말이 나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증상이 뭐예요?"

"..."

숨이 안 쉬어지고 가슴통증이 잦아지고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난다고 해서 커다란 문제인 것처럼 생각되지는 않았으므로.


그렇게 묵혀두니 갈수록 심해졌던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알아챈 이가 배우자였다. 같은 일을 하니 스트레스의 종류도 비슷할 것이고, 같은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삶의 환경도 비슷할 인데, 나만 유세를 부리는 것 같아 난 그저 꾹꾹 참았다.


지나고 보니 그럴 일이 아니다. 내가 그보다 스트레스 없이 잘 해낼 수 있는 일이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는 법, 내가 참아내면 참아낼수록 그에게 분명  큰 마음의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우울과는 거리가 먼 그의 성격에 그는 이런 나의 모습을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어떻게 다루어내야 할지도 몰랐을 것이다.


처음에는 병원 가보라는 그의 말이 참 듣기 싫었다.

병원 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을까. 



모든 것이 싫었그때, 단연코  가장 싫었다. 나 때문에 나의 가족들이 불쌍히 여겨졌고, 나만 사라지면 많은 것들이 해결될 것 같았다. 삶이라는 욕심을 부린 것 같은 느낌, 그 벌칙 같은 것에서 이제는 그만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그와 나 사이에 우울을 꼭꼭 숨겨둔 채 몇 년의 시간을 보내며, 그는 나의 '우울'이라는 친구를 다루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그와 그의 계획하에 움직이는 아이들 덕분으로 내가 부단히 나아지고 있으니.




그들이 나의 우울을 다루어 내는 방법 중 가장 근사했던 일이라면 단연코 일주일 중 하루, 우울자에게 온전한 자유를 주었던 일이다. 


나의 경우 토요일이 화실에 가는 날이므로 이 날로 정해졌지만, 어떤 날이든 암묵적으로 의된  전한 하루의 시간,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을 '기꺼이', 그가 '먼저' 말로 내어주었던 일장한 도움이 되었다.


토요일에 애들이랑 셋이 놀러 갔다 올게.
집에 와서 그림 마음껏 그려.


처음에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엔 괜히 밖에서 아이들과 하릴없이 배회하지 말고 일찍 들어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우연찮게 남자 셋, 여행의 시작이 되었다.


물론 많은 날들이 오매불망 손주를 기다리시는 할아버지 댁의 방문이지만, 내가 온전한 자유의 하루를 계획하는 만큼 남편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있었다.


계절마다 셋이서 이리저리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니고, 이제는 아이들이 원하는 일이나 가고 싶은 장소를 고르기도 하면서 아이들도 토요일은 으레 아빠와 데이트하는 날로 생각하게  듯했다. 그래서일까.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의 아이들은 가오는 사춘기를 인지하지 못한 채 아빠와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만의 시간을 준다고 해도 곳이 없더라. 사직으로 경제적 여유마저 없었으니, 마지막엔 기어코 생각이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근사한 일을 떠올리다가도 종국에는 기껏해야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까, 컵라면을 먹을까였다.


'내가 뭐라고.', '그 돈이면 아이들 좋은 곳에 데려갈 수 있는데.', '남편도 하루는 편안히 쉬어야 하는데.'등등의 생각이 들어 그저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어두운 하루를 보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 번 두 번 보내어보니, 그런 생각으로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었더라도 그것은 분명 나를 치유하는 커다란 힘을 지닌 시간이라 깨달았다.


마음에 고요가 고스란히 쌓이는 시간, 그 평온함이 우울의 높이를 이겨낼 때까지 찬찬히 쌓아 올리는 일. 혼자 집에서 말라버린 남은 밥을 먹어 치우고, 조용히 그림을 그리며 보통의 일상을 '혼자' 보내어내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이제 토요일에는 내가 아이들과
셋이서 즐겁게 놀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혼자 쉬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어보고 자신감이 충만해져 씩 웃으며 멋지게 말해주던 그는 지금 후회하고 있을까.


이렇게 미래를 속박하는 말을 낼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 평일 내내 일하여 피곤할 테고, 주말에는 쉬고 싶을 텐데 하루를 포기해야 하고, 주말에 일이 생겨도 토요일을 내게 내어주려면 본인의 스케줄을 일요일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주말마다 아이들의 스케줄은 무엇이 있는지 미리 파악하여 왕왕대는 아이들과 신나게 놀 계획도 짜두어야 한다.


이 모든 일이 현실적으로 보통일이 아닐 테지만 그는 전혀 힘들지 않다며 웃으며 말해주니, 감사함은 말로 다 할 수 없더라.




우울에 진득하게 젖어있을 때는 그 진득한 슬픔 외에는 무엇을 상상하는 것이 어렵기에 빠져나갈 방법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 생각을 멈추는 것만이 그것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나의 입으로 "당신이 하루만 아이들 돌봐줄 수 있어? 잠시만 혼자 있고 싶은데."라는 말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때에 그가 먼저 내어주었던 그 따사로운 말과 자유의 시간을 난 결코 잊지 못한다. 사소할지도 모르는 나의 공백을 충만하게 채워주었던 가족들의 노력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그들의 응원을 가슴 깊이 담아 이겨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힘든 시간을 마주할 때 나의 모든 우울의 레시피를 담아 전해줄 것이다. 우리 모두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마주할지 모르는 어두운 시간들에 커다란 힘이 될 수 있도록 따스하게 안아줄 것이다.


별 것 아닌 처럼 미소 지으며 덤덤하게. 들이 내게 보여주었듯이.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우울전달자가 아니다.

그들 덕분으로 행복전달자가 되어가는 중이다.

아주 조금씩, 

몹시도 느리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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