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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Apr 21. 2023

우울감의 소화 훈련기

- 후다다닥, 조물조물, 잘근잘근, 꿀꺽! -


해가 구름에 가리어지고 축축한 습기가 온 피부에 스며드는 날씨 탓인가, 가족의 수술을 앞두고 달려드는 긴장감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으레 돌아오는 우울의 주기상 이럴 때가 된 건지도 모르겠고. 너와 이별했던 순간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같은 이 습도와 조도, 나는 그 안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여전히 어렵다.


그러 그 모든 생각들을 그 자리에 내버려 두고, 무작정 달려 나가야 한다. 아주 힘껏.


그렇게 몇 날을 참고 다독이다 오늘은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더 두면 다시 또 나의 우울이 내 손아귀 밖으로 넘쳐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흘러갈 것 같아서.




깊은 우울의 늪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건져진 나는, 이젠 정상의 범위 내들어섰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이유도 없이, 규칙도 없이 찾아오는 호흡장애를 가끔 겪기는 하지만, 직장에서 오랫동안 겪은 그것보다는 훨씬 나아졌고 이 정도라면 조금씩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날 돌보지 않았잖아!"라는 말이나, 하원할 때 할머니 대신 내가 데리러 가면 유치원 차량에서 내리지 않던 아이들이 이제는 스스로 와서 날 아주고 어루만져주니, 나는 안도했다.


"마음 놓고 네게 그만두라고 말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라고 말하며 눈물짓던 남편도 "죽기 전에 언젠가 돌아보면 지금의 이 시간들이 떠오를 것 같아. 요즘 너무 행복하거든."라고 말하길래, 그야말로 안심했다.



'정상'이라는 말범주 어디까지인지 나아직도 모르겠지만, 그저 막연하게 난 내가 정상 범위의 궤도 안에 들어온 것이라고 믿었다. 


처음으로 혼자 결정한 사직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며,

시간에 고스란히 나를 내맡겨 보면서,

평온의 구덩이를 단단히 만들어내는 중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벗겨진 초등학교 푯말, 잔뜩 구겨져 빨랫줄에 널린 이불, 부신 햇살조차 들어서지 못해 컴컴하기만 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 깊게 달인 무언가의 향기, 텅 빈 지하철 선로, 잠시 눈을 게 만드는 눈부신 햇살, 고이 잠든 의 눈꺼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한순간 나를 우울의 구덩이로 어 버리니, 나는 나의 우울포인트를 모르겠다. 예측할 수가 없고 건드려지면 멈추기가 어려운 그 포인트를.



그래. 그것들은 원래 자신의 모습 그대로 그곳에 있을 뿐, 나를 슬프게 할 의도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들을 꼬투리 삼아 잘됐다는 심정으로 깊이도 슬퍼온다. 


하지만  기분 좋은 날 다시 그것을 본다면, 분명 맘에 담아두고픈 여쁜 장면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도 생각해 본다. 그러니  조그마한 생각의 전환만으로도 나만의 어두움  맨 끝까지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토록 아무 이유가 없는 우울감이라면 이제는 내가 적당한 정도로만 스스로 조물조물 버무리며 살아가고 싶다.  끝까지만 내려가지 않도록.




무엇이든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더라. 쉽고 무자비하다. 바위 끝을 가까스로 잡고 한 걸음씩 옮겨 겨우 앉을만한 바위찾았다고. 그리 믿올라앉을 무렵, 조금 생각을 달리하다 힘을 잃어 손을 놓치고 말아 버리니, 겨우, 어렵게 벗어났던 처음 그 우울의 끝으로 추락해 버린다.


다시 올라가려고 마음먹기는 첫 번째보다 더 어렵두려움은 배가 되어 그대로 돌아서고 싶어 진다. 포기하고 싶다. 의미도 목적도 찾을 수가 없다. 아니, 찾을 힘이 없다.



하지만 그 모든  한순간의 생각 차이, 였을 . 그래서 오늘 그 찰나의 순간, 뛰쳐나왔다.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곳으로부터 우울함이 스멀스멀 밀려들어 내 마음 곳곳에 스며드려 한다면 난 그저 어디로든 달려 나간다.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같은 곳에서 다르게 생각해 보려 아무리 노력해도 오랫동안 내가 깊숙이 파두었던 우울의 우물을 단번에 벗어나기는 어렵더라.


햇살도 고대로 맞아보고

바람도 고스란히 느껴보고

비가 온다면 조금 젖어도 보고.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가슴이 답답해질 때까지 달려 나가 다른 곳에  맡겨 버린다. 그럼  쉴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찬 가슴을 진정시키려, 그 숨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이전의 우울감은 내 안에 설 곳을 잃어버리고 잠시 잊힌다.


어볼 틈도 없이 지독하게 우울한 어느 때는 누군가 퍽하고 곁을 치고 가는 감각마저도 감사할 때가 있더라. 감사히 비틀거리며 더 격렬히 느껴야 한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의 것들만 느껴보아도 내 안에 스미는 어둠을 잊는데 도움이 된다. 훨씬 나아지더라.





그렇게 오랜만에 스미는 우울을 피해 뛰다 걷다, 이렇게 이곳, '브런치'로 돌아왔다. 이 또한 언젠가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건강한 날이 올 것이므로 버리고픈 이 마음마저도 남겨본다.


그리고 이렇게 깊이 다짐도 해본다.

우울함이 내 안으로 깊이 스며들 수 없도록 뛰고 걸으며 마음의 방수막을 탄탄하게 만들고, 이곳 '브런치'에 들어와 남아있는 우울의 잔여물마저도 조물조물 내 마음대로 요리하여 꿀꺽 삼켜내겠다고.



그렇게 오늘우울감 무사히 말랑말랑하 소화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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