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 Sep 27. 2021

담뱃불 지키기

 아빠에게는 문석이 삼촌이라는 친구가 있다. 문석이 삼촌은 아빠가 온전한 당신이었을 때부터 아빠의 친구였다. 아빠가 엄마를 처음 만났던 자리에도 문석이 삼촌이 있었다고 한다. 청춘을 함께 보낸 친구로서 내가 알지 못하는 아빠를 문석이 삼촌은 안다는 것이 부럽다. 


 문석이 삼촌은 키가 길쭉했고, 도수가 높은 커다랗고 촌스런 안경을 썼다. 삼촌은 아빠의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말투가 거칠지도 않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우리 아빠 역시 문석이 삼촌 가족에게 다정했다. 아빠는 문석이 삼촌의 엄마를 친엄마처럼 모셨고, 문석이 삼촌 딸 영지에게 특히 잘해줬다. 영지를 며느리로 삼는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고, 그 애에게 거금을 들여 피아노를 사주기도 했었다. 나는 왠지 모를 질투심에 혼자 입을 삐죽거린 적이 몇 번 있다.


 아빠가 술로 망가지기 이전에는 분명 행복한 때도 있었더랬다. 언젠가 한 번 우리 가족과 문석이 삼촌의 가족이 함께 바다로 캠핑을 갔었던 적이 있다. 지금이야 캠핑이 부유하고 고상한 취미가 되었지만, 그 옛날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는 것은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두 가족이 부릴 수 있는 최대한의 사치였다. 그날 아빠와 삼촌은 서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어이, 문석이. 담배 좀 줘." 아빠가 저 멀리에 있는 삼촌을 불렀다.


"아 이 자식, 지 담배는 어디 두고 참. 얘들아, 이리 와 봐!" 삼촌은 재킷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문석이 삼촌은 라이터로 담뱃대에 불을 붙여 그것을 깊게 한 번 들이마시고는 방파제 근처에서 뛰어놀던 우리를 불렀다. 담뱃대에 불이 꺼지기 전에 빨리 아빠에게 가져다 드리라고 했다. 빨간 불이 절대 꺼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눈을 찡긋이셨다. 삼촌의 그 커다란 안경 뒤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나와 아이들은 우다다다 서둘러 아빠에게로 향했다. 그중 내가 가장 큰 아이였고, 불이 붙여진 담배는 내 손에 있었다. 나는 행여 담뱃대 끝의 빠알간 불이 꺼질까 조마조마했고, 옆에서 아이들은 손을 모아 바람을 막았다. 우리는 그 불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담뱃불이 식어가는 것 같은 순간, 나는 너무나 급한 나머지 담배를 한 입 크게 들이마셨다. 아뿔싸, 매운 연기와 텁텁하고 쓴맛. 나는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기침을 시작했다.


"와하하하하하!"

"하하하하!"


나는 왠지 모를 억울함과 부끄러움에 울음이 터졌던 것 같다.



 아빠와 한바탕 하고 집을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왔다. 나는 동네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샀다. 흡연자는 아니었지만, 그날은 왠지 담배 한 대가 당기는 날이었다. 아빠의 담배 심부름을 해본 적은 수도 없지만, 내가 피기 위해서 담배를 구입한 적은 처음이었다. 담배를 피우려면 라이터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도 깜박했던 나는 라이터를 사기 위해서 편의점에 다시 한번 들러야 했다.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 조용해진 집 근처 놀이터 정자 위에 앉아 서투르게 비닐을 까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 한 대를 다 피우고 났지만 마음이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대를 꺼내 물었다. 두 번 째는 조금 수월하게 불을 붙였다. 담배 두 대를 피니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핑핑 도는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자 위에 잠시 누우니, 문석이 삼촌네와 캠핑을 했던 때가 떠올랐다.


 방파제 양쪽에서 크게 터졌던 삼촌과 아빠의 웃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다. 아빠의 웃음소리는 내가 항상 듣는 슬픔과 자조가 섞인 아빠의 웃음소리가 아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웃음소리다.

 이제 아빠가 온전했을 때의 아빠를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들은 진작에 아빠와 멀어졌거나, 아빠와 비슷한 사람들이 되었다. 아빠도 누군가의 친구였고, 청춘이 있었겠지. 문석이 삼촌만이 아빠한테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증인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아 무척이나 슬퍼진 밤이었다.  


이전 03화 엄마의 팔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