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앓는 밤

by 김화연

김화연


누구나 자신의 그림자를 깔고

잠드는 날은 찌뿌둥등하고

불편한 꿈을 꾼다

돌아누울 때마다 관절이 닳은

그림자는 자주 모로 누우려 한다

한때는 몸보다 빨라서

태양의 각도를 벗어나 저만치 앞서가던 그림자도

나이가 들면서 뒤따라오는 그림자를 재촉하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림자보단 빠른 몸이다

노점(露店)은 한 사람이 쪼그려 앉고

몇 가지의 채소들의 진열로 세워지는

허술한 구조물이다

어깨와 허리가 빈 사과 상자들처럼 삐꺽거리고

장사 이문이 박한 날은 그림자도 끙끙거리며

설거지통 밥그릇 엉키는 소리가 난다

그림자를 덧입는 날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또 더운 일이다

평생 단벌이지만 흐린 날엔 어느 맑았던

날로 하루쯤 쉬는 것 같기도 하다



거뭇한 몸이지만 거뭇해서 보이지 않는

어둑한 상처들이 또 많지만

자식들이 빠져나간 손끝과

두 눈은 검은 밤에도 화끈거린다

걱정스러운 그림자들이 아른거린다

한 벌 그림자로 덧 입고 사는 일은

온통 멀어지고 있거나 멀어져가는 일이지만

그래도 동병상련의 그림자가 있어

한 겹 요를 깔 듯 그 위에 잠드는 것이다

소설책 열권 분량의 인생사는

부록으로 묶어둔다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발표지원선정작품

keyword
이전 03화군락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