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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수화

by 김화연

김화연


흐르는 물을 만지면

쉬지 않고 흐르는 말을 만지는 느낌이 든다

나무를 만지면 돌 지난 아이의 흔들리는 말이 들리고

돌멩이를 만지면 구르고 또 굴러다니는

구수한 사투리 말을 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팔십의 엄마 손을 만지면

마디 굵은 수화

말이 사라진 자리에 앙상하게 흐르는 그 말

오래전 잠든 나의 이마를 짚던 엄마의 손

더듬더듬 더듬던 손의 말

못 알아듣는 척했던 그 말을

오늘 내가 만지고 있다

나무가 흔들리고 물이 흐르고

딱딱한 돌멩이가 굴러다니는

그 거친 손의 말을 뚝뚝 눈물 흘리며 들었다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 말

배운 적 없는 수화를 배운 것처럼 알고 있다

평생을 낭비하고 배운 말들

아무 말 마라,

내가 네 맘 다 안다

지워지지 않는 말

멈추지 않고 핏속으로 흐르는 말

걷고 뛰고 웃고 우는 말은 침묵하고

잔잔하게 또닥거리는 침묵의 말

광활한 우주의 손잡이 같은

그 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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