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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

by 김화연


김화연


죄지어 고개 숙이는 멱살이 있어

손아귀 하나 피해 다녔다.

어쩌다 그 손아귀에 잡히는 날이면

바짝 마른 능소화 같이

쏟아진 물 컵같이 체념이다

늦가을 바람에 뒹구는 파지(破紙)다.

살다 보면 누군가는 내 멱살 잡고

굴욕의 길 함께 가자고 할 것이다.

꽃잎에겐 허연 입김이 천적이듯

빨래에겐 소나기가 천적이듯

죄지은 멱살에겐 느닷없는 손아귀가 천적이다

나는 천적이 있어 날개가 돋아났고

두 손이 공손해지고

미안하다는 말을 껌처럼 씹었다.

목을 잠그기로 했다

어떤 굴욕도 들지 못하게

뻣뻣이 세웠던 목 불러들여 숨죽이라 했다.

세상의 어떤 용서, 어떤 굴욕보다

더 낮게 목을 내리기로 했다.

태어나면서 동행한

목숨이라는 천적을 모른 척하는

나이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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