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연
손톱을 깎고 다시
손톱을 깎는 그 기간엔
어떤 날짜들이 들어있을까
해답인양 앞니로 물고 뜯던 손톱 끝
자라는 길이만큼 무관심했던
손톱에 그 어떤 적의도 묻힌 적 없다
다만 담장 밑의 여름을 찧어
손톱에 물들였을 뿐
비닐로 꼭꼭 싸맨 명주실 속에는
백반처럼 하얗고 시린
말더듬이 끝, 첫마디가 들어있다.
금잔화 주위를 서성거리는 뱀처럼
담장을 몰래 넘어가 흘렸던 서체(書體)
열 손(手) 기다림이 손톱 끝에서 떨고 있다.
폐가 우물가에서 만난 정오의 눈빛
진흙투성이 신발이 생경해 쳐다 본
동안童顔에게
눈인사의 수줍음을 전하지 못하고
우물 속만 쳐다보다 해가 졌다
우연은 우물의 바닥처럼 마르고
여름은 억세어지고 웃자랐다
붉은 손톱을 깎을 때 마다
꽃씨 같은 손톱이 톡톡 날아갔다
그리고 그 기간엔
사람 하나가 손끝처럼 짧아졌다
한여름 비 맞고 있는 봉숭아를 보면서
손톱 달력이 떠올랐다
똑똑 담장을 깎으며
여름이 가면 낮아진 담장을 넘어
첫눈이 내렸고 쌓였다
봉숭아 핀 여름부터 첫눈까지는
손톱의 달이다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