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손톱 달력

by 김화연

김화연

손톱을 깎고 다시

손톱을 깎는 그 기간엔

어떤 날짜들이 들어있을까

해답인양 앞니로 물고 뜯던 손톱 끝

자라는 길이만큼 무관심했던

손톱에 그 어떤 적의도 묻힌 적 없다

다만 담장 밑의 여름을 찧어

손톱에 물들였을 뿐

비닐로 꼭꼭 싸맨 명주실 속에는

백반처럼 하얗고 시린

말더듬이 끝, 첫마디가 들어있다.

금잔화 주위를 서성거리는 뱀처럼

담장을 몰래 넘어가 흘렸던 서체(書體)

열 손(手) 기다림이 손톱 끝에서 떨고 있다.

폐가 우물가에서 만난 정오의 눈빛

진흙투성이 신발이 생경해 쳐다 본

동안童顔에게

눈인사의 수줍음을 전하지 못하고

우물 속만 쳐다보다 해가 졌다

우연은 우물의 바닥처럼 마르고

여름은 억세어지고 웃자랐다

붉은 손톱을 깎을 때 마다

꽃씨 같은 손톱이 톡톡 날아갔다

그리고 그 기간엔

사람 하나가 손끝처럼 짧아졌다

한여름 비 맞고 있는 봉숭아를 보면서

손톱 달력이 떠올랐다

똑똑 담장을 깎으며

여름이 가면 낮아진 담장을 넘어

첫눈이 내렸고 쌓였다

봉숭아 핀 여름부터 첫눈까지는

손톱의 달이다

이사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