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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없는 여자

by 김화연

김화연


간판이 없는 맛집 기사를 읽다가

나의 간판을 생각하네.

하얀 콘크리트 벽에 무지개가 떠 있고

이름 석 자 네온 글귀에 걸어 놓았네.

가끔은 매니큐어 손톱으로

핑크 자판기 머리에 이고 거리에 서면

햇살은 한심한 듯 지나쳤네.

어느 날은 검정 고무신에 월남치마 입고

고향 요리를 하면 혓바닥 흘리며 사람들은 줄을 섰네.

나의 취향에 맞는 업종 변경이 경력이었고

변덕과 입방아로 숨겨진 폐업이 이력이네

드르륵 미닫이문 열고 사방을 보면

진열된 것들이란

먼지의 상표, 쓸모없는 문서거나

고딕체 디자인들이네

불빛 간판을 버리고

간판 없이 진열하기로 했네.

영업시간, 취급 품목, 포장지를 쓰지 않기로 했네.

풀밭에 들어가 풀이 되고

아침잠 깨우는 수다스러운 참새도 되고

개울에 발 담가 발 시린 가을이 되기로 했네.

간판이나 목 좋은 자리는

젊은 여름에게 주기로 했네.

저기 쑥부쟁이가 피어있는 흙길

달빛 은은한 곳에서

많이 불리는 이름이 아니라

많이 생각나는 여자가 되기로 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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