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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맞바꾸다

by 김화연


김화연



세상에 와서

손가락을 맞바꾼 사람이 있다

맞바꾼 손가락엔 풋살구 같은

건너가던 약속과

건너뛰는 약속들이 있다 .

빛나는 손가락 하나 갖는 것이 어린 날 꿈이었던.

닿은 길 없는 천장을 보며

석순과 종유석에 순결을 뿌린다.

맞바꾼 손가락은 펼쳐진 커튼 뒤에서

낮을 따라 밤을 따라 떨어지는 물방울로

천상의 석주를 그린다.

물기 촉촉한 손과 찬 공기의 한숨으로

손가락의 매듭은 굵어지고

반지는 점점 좁아졌다

반지의 동그란 원을 들여다보면

축축한 개구멍을 나오다 다친 약속들이 쓰라리다

윤슬 같은 눈웃음이

상처 위에 앉는다.

동굴 속 어둠에 눈이 먼 동굴새우와 엄지유령개미는

흙탕물에도 여유롭다

박쥐 한 마리 날벌레로 저녁 먹는 시간

일으켜 세운 손가락이 차갑다

내 손가락이면서

내 손가락이 아닌 내 손가락

물 자국 패인 곳에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석주가 끼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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