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떠날 때 몸 하나만 남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부자가 있다.
가진 것을 쌓아두는 사람과 가진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
나 역시 한때 ‘부‘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로 결정된다고 믿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지혜로운 스승 중 한 분을 만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보스나이에서 온 교수 부부, 그리고 나의 깨달음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할 당시, 우리 학과에는 여러 외국인 교수님들이 계셨다. 그중에서도 특히 레쉬치 교수와 그의 아내 카차 도리치는 내게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선물해 주신 분들이다.
레쉬치 교수는 세르비아 문학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학자였고, 그의 아내 카차 도리치는 유명한 연극배우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한국행은 단순한 연구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내전을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나는 유학 시절 현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자연스럽게 외국인 교수님들께 각별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 낯선 생활을 하는 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시장 장보기부터 문화 체험, 병원 방문까지 적극적으로 도왔다. 특히 연세가 있는 그들에게 병원 방문은 번거로운 일들이 많았고, 나는 그들의 곁을 자주 지켰다.
그 덕분인지, 우리는 단순히 동료 교수를 넘어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명절이면 직접 음식을 싸들고 찾아가 한국의 전통 요리를 함께 즐겼고, 그들은 나를 예술의 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의 공연에 정기적으로 초대했다. 우리는 함께 공연을 감상하고, 공연 후 카페에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의 삶 자체가 하나의 철학이었고, 나는 그것을 가까이서 배울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어느 날, 공연을 보고 나온 후 나는 평소 궁금했던 것을 조심스레 물었다.
“교수님, 외람된 질문이지민, 2년 계약이 끝나고 본국으로 돌아가시려면 저축을 많이 해두셔야 하지 않을까요?”
당시 보스니아는 내전으로 인해 경제가 붕괴된 상태였다. 환율 차익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받는 연봉을 잘 모으면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교수님 부부의 한국 생활을 보면, 그들은 전혀 돈을 아끼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궁금했던 것이다.
레쉬치 교수님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김 박사, 우리 부부는 한때 사라예보에서 없는 것 없이 살았네. 값비싼 가구로 꾸며진 집, 온갖 보석과 모피로 치장한 아내, 그런데 전쟁이 터지자 가방 하나 달랑 들고 탈출할 수밖에 없더군.”
나는 숨을 삼켰다. 교수님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덤덤하게 이어갔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서 나올 수 있었으니 큰 행운이었지. 그때 깨달았네. 떠날 때 남는 건 결국 몸 하나뿐이더군. 그 이후로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었다.
“물론, 우리도 작은 기쁨은 즐긴다네. 내 아내는 가끔 길 가다 키오스크에서 싸구려 액세서리를 사기도 해. 그 정도는 괜찮잖아? 하하.”
그날 이후,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진정한 부란 무엇일까?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레쉬치 교수님 부부는 재산의 전부는 잃었지만, 정신과 예술, 그리고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지켜가고 계신 거였다.
그날, 나는 결심했다. 내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기로.
돈, 명예, 물질적 풍요. 그것들은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나는 여전히 삶을 배우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깨달음을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