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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하루를 기억하게 하는 것들

에피소드가 많은 인생

by 김지향

“잘 산다는 것과 아름답게 산다는 것,

그리고 의롭게 산다는 것은 모두 같은 것이다.”

—소크라테스


마치 한 겹 한 겹 인생의 껍질을 벗겨내듯,

본질을 향해 가는 문장이다.

무엇이 잘 사는 삶인가를 묻는 순간,

대답은 언제나 조금 늦게 오곤 한다.

때로는 너무 늦게 와서,

그 대답을 꺼내보기도 전에 한 시절이 지나버리기도 한다.


살아오며 흘려보낸 순간들이 있다.

어떤 이유로든, 혹은 핑계로든 놓쳐버린 시간들이다.

모든 순간이 사실은 내가 잃어버린 인생의 조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부터 조급해진다.

삶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

정지된 것 같은 하루도, 돌아보면 무심히 흘러 있다.


종종 근사한 인생이란 어떤 건지 내게 물어온다.

글쎄, 에피소드가 많은 삶이 아닐까

화려하거나 웅장한 일이 아니어도 좋다.

다만 그 안에 이야기가 있고, 웃음이 있고,

나눔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모임에서는 누군가의 자랑이나 과시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되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길지만, 기억에 남지 않는다.

반면, 어떤 자리에서는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경험도 있다.

그런 시간은 언제나 좋은 에피소드로 가득한 순간이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서, 많은 이야기를 가진 것은 아니다.

세상의 이치를 바라보는 눈이 따뜻한 사람에게는

작은 일상도 훌륭한 에피소드가 된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도

사람들은 각기 다른 기억을 담아간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비루한 처지에 있을 때라도 비범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어려운 처지에 있어도 사람을 어여쁘게 바라보는 시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 시선이 인생을 다채롭게 한다.

그런 시선이 사람을 이야기로 채운다.

한 사람의 품격은 그가 가진 경력에 있지 않고,

그가 기억하는 이야기의 표정 속에 담겨 있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는 말했다.

“사람들은 진실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삶을 곧게 만든다.”

진실한 삶은 꾸밈이 없다.

그 안에는 웃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난 순간들이

에피소드로 묶여 있다.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의 연속이다.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시선으로 오늘을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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