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호메로스가 남긴 것—다리에 대하여
„Највећа дела људска су мостови.“
“인간이 만든 것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다리이다.”
이 문장은 『드리나 강의 다리(На Дрини ћуприја)』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동시에 작품 전체의 정신을 상징하는
핵심이다.
이 문장을 음미하는 순간,
우리는 질문을 받는 쪽으로 밀려난다.
왜 다리인가?
다리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극을 이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드리나 강의 다리』는 이보 안드리치(1892–1975)의
대표작이자, 그를 196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만든
결정적인 작품이다.
나는 이 소설에 나타난 동서양 문화의 경계를 연구하며,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2005년, 이 작품을 한국어로 완역해 문학과 지성사를 통해 출간함으로써 한국 독자들과 이보 안드리치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다리’는 실재하는 건축물이다.
보스니아의 소도시 비셰그라드(Višegrad)를 가로지르는
드리나 강 위에 놓인 아름다운 다리.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재상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치가
자신의 고향을 기억하며 세운 이 다리는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발칸 반도의 복잡한 역사와 인간의 운명을 통과시키는 상징이 된다.
『드리나 강의 다리』는 16세기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무려 400년에 걸친 발칸의 역사를 ‘다리’라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서술한다.
소설은 다리 위를 지나는 사람들—
세르비아 정교도, 오스만의 무슬림, 유대 상인, 오스트리아 병사, 보스니아의 농부—
그들의 일상, 저항, 침묵, 폭력과 꿈을 조용히 관찰하며,
파편처럼 보이는 그들의 삶을 하나의 강처럼 흐르게 만든다.
작중에선 “다리는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조용한
증인”으로 묘사된다.
끊임없이 이어지다 때로는 부서지고, 또다시 복원되며,
다리는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품고 있는 것이다.
이보 안드리치는 평생 ‘경계’를 사유한 작가였다.
보스니아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관리였으며, 말년을 세르비아에서 보냈다.
동서 문명이 충돌하는 자리에서 언제나 ‘다리’ 위의 인간으로 살아왔다.
그는 다리를 단순한 연결의 상징으로만 보지 않았다.
다리는 이어지기에 부서지고, 놓이기에 끊어진다.
즉, 다리는 항상 위태로운 희망이자,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가장 절실한 구조물이다.
지금 발칸은 1990년대 이후, 구 유고슬라비아의 해체와
함께 다시 수많은 ‘국경’과 ‘민족’이라는 이름의 단절을
겪었다.
하지만 안드리치가 그려낸 다리는, 단절 이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다리는 이제 더 이상 과거만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묻고 또 답해야 할, 미래를 향한
실존의 물음이다.
“인간이 만든 것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다리이다.”
이 시대를 꿰뚫는 문학적 예언 앞에 다시 생각에 잠긴다.
다리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언제나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며,
그 위로 인간은 늘 고독하게, 혹은 함께, 건너야 했다.
우리는 여전히 다리를 필요로 한다.
기억과 상처 사이를, 언어와 침묵 사이를,
고향과 타향 사이를 잇는 다리를.
『드리나 강의 다리』는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 어떤 경계를 건너고 있는가?
우리는 아직, 타인을 건너는 법을 기억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