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호사, 삶의 격을 높이다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온종일 집에서 뒹굴거리기엔 왠지 찔린다.
그럴 땐 나름 말쑥하게 차려입고 밖으로 나서게 된다.
카페도 좋고, 공원도 좋지만, 단연 으뜸은 갤러리 마실이다.
도심의 인사동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발길 닿는 대로 들어선 조용한 갤러리에서
뜻밖의 그림 한 점과 조우하게 될 때가 있다.
그림 앞에 오래 머물며 눈호사를 즐기다 보면
그날 하루는 마치 선물처럼 느껴진다.
아무런 계획도 없던 하루에 품격이 더해진다.
런던에도 그런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 있다.
입장료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국립 화랑(National Gallery).
‘런던은 걸출한 화가나 작곡가를 많이 배출하지는 않았지만,
셰익스피어 한 사람으로도 이 도시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 라고 생각하다
여섯 편의 시리즈로 이어진 작품 앞에서 멈춰 서게 된다.
윌리엄 호가스의 연작 <요즘 결혼식>이다.
18세기 조지안 시대의 풍속을 담은 여섯 폭의 회화는
마치 사회풍자극 같고,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하다.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과 손짓,
그들이 있는 공간의 디테일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그 그림을 바라보다가,
나는 사소하지만 놀라운 물건 하나에 멈칫하게 된다.
화폭 한 귀퉁이에 놓인 낡은 신문 한 장.
1730년대 런던 사람들도 신문을 읽었다는 사실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가벼운 충격이 밀려온다.
어릴 적 셜록 홈즈를 읽으며,
‘19세기 런던에 지하철이 있었다’는 설정에 놀랐던
그 기억과 오버랩되며 묘한 전율이 느껴진다.
그렇다.
그림이나 음악 속에는 숨겨진 시간의 조각들이 존재한다.
그 조각들을 찾아내는 일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 와도 같고,
또 하나의 독서이며, 역사 여행이며, 자신만의 발견이다.
그렇게 얻어낸 작고도 흥미로운 숨은 그림 찾기 같은 놀이는
삶을 훨씬 더 윤기나게 만들어준다.
이렇듯 일상의 무료함은,
관점의 앵글을 조금만 비틀면 작은 호사로 바뀐다.
나는 그림 앞에서, 때로 음악 한 곡으로,
혹은 아주 오래된 책 한 귀퉁이에서
나만의 고급스러운 여백을 찾는다.
결국 삶의 재미란, 강도보다 빈도라는 말처럼
얼마나 자주 발견하고 감탄하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그 작고 소중한 발견을 위해
말쑥하게 차려입고, 무작정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