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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기적, 우리는 왜 보지 못할까?

by 김지향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자주 맞아떨어진다.

우리는 태어나 자란 도시보다, 잠시 머물렀던 낯선 도시의

구석구석을 더 선명히 기억하곤 한다.

심지어 그 도시의 뒷골목 이름, 오래된 카페,

벽돌 색깔에 얽힌 역사적 유래까지도 외우듯 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문득 헛웃음이 나온다.


런던을 관통하는 템즈강 위로 안개가 내려앉을 때,

그곳 사람들은 ‘아, 오늘은 조기퇴근이겠다’고 짐작한다.

그만큼 안개는 그들에게 익숙하지만 안전을 떠올리게한다.

하지만 정작, 미국의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나

프랑스의 클로드 모네가 런던의 안개를 화폭에 담기 전까지,

영국 화가들은 안개를 그림의 주제로 삼지 않았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휘슬러가 런던의 안개를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

참으로 위트가 넘치는 멋진 멘트다.

우리가 무엇을 본다는 것,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것, 그리고 그 가치를 자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별개의 일일런지 모른다.


서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짧은 여행으로 머물다 간 외국인이 서울의 골목과 정취,

계절마다 바뀌는 건물 풍경, 심지어 거리의 간판조차

세세히 기억하며 말을 꺼낼 때면, 묘한 감정이 인다.


‘내가 왜 미처 보지 못했을까.’

익숙함 속에 안주해 버린 감각을 돌아보게 된다.

매일 지나치는 풍경이기에 무뎌졌고,

매일 듣는 소리이기에 소홀해졌고,

매일 접하는 일상이기에 소중함이 흐릿해졌다.


자연도 그러하다.

우리 곁에서 묵묵히 생명을 지탱해 주는 존재들.

숨을 쉬게 하고, 먹을 것을 내어주고, 사계를 돌게 하며,

어느 계절에도 잊지 않고 다가오는 것들.

우리는 그것들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

저녁마다 붉게 물드는 노을,

그 뒤 어둠을 부드럽게 밝히는 달빛,

창가에 기대어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와

자정 무렵 들려오는 바람 소리까지…

헤아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늘 가까이에 있다.

그것들은 소리 없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가 미처 눈을 돌리지 않아도 언제나 우리 곁을 지킨다.


삶이 지칠 때마다 우리는 멀리서 해답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 위안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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