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시, 게인즈빌(Gainesville)
독일 남서부, 튀빙겐의 어느 여름날.
슈바르츠발트에서 시작하여 라인강까지 이르는 네카강이
도시를 감싸고, 학생들은 강가의 벤치에 걸터앉아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붉은 지붕 아래 펼쳐진 돌길과 나무 그림자, 그리고
슈토커칸이라 불리는 장대로 젓는 나룻배가 물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있었다,
도시는 마치 오래된 경전처럼, 사유의 공간 그 자체였다.
지금 나는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대륙의 또 다른 대학 도시, 그러나 묘하게 닮은 꼴인 플로리다의 게인즈빌에서 그때의 감흥을 다시 느낀다.
강 대신 늪이 있고, 배 대신 악어가 있고,
붉은 벽돌 대신 야자수 그림자가 드리워진 도시.
튀빙겐에서 느꼈던 그 지적인 고요함 속의 활기를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여간 행복하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다만, 이제는 다른 언어로, 다른 리듬으로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그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게인즈빌은 플로리다 대학교(UF)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다.‘주립대의 아이비리그’라 불릴 만큼 연구력과 스포츠 명성이 뛰어난 이곳은, 어디를 걸어도 캠퍼스의 생기가 가득하다.
학문과 젊음, 그리고 정열의 땀 냄새가 섞인 공기.
UF의 야구팀 ‘게이터스(Gators)’는 지역의 자부심
그 자체이며, 경기 날에는 도시 전체가 오렌지 색으로 물든다.
이곳을 처음 찾은 건 2년 전, UF의 공식 초청으로 방문했을 때였다. 그때 묵었던 호텔 인디고에 이번에도 짐을 풀었다. 익숙한 호텔 라운지, 창밖으로 보이는 이끼 낀 늪지대,
오후 네 시의 정적까지—모든 것이 그저 반가웠다.
이 도시에서 늪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일종의 캐릭터다.
코치는 내게 “악어가 야구장에 나타난 적도 있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이곳에서는 농담이 곧
현실이 되곤 한다.
오후엔 UF 풋볼의 전설적인 인물, 스티브 스퍼리어 코치의 이름을 딴 Spurrier’s Gridiron Grille에서 야구팀 코치들과 식사를 함께했다.
늦은 오후에는 근교의 자연을 보기 위해 Poe Springs Park에 잠시 다녀왔다. 이곳은 잘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 소박함이 마음에 들었다.
짧은 숲길을 걷고 나면 마치 숨겨진 연못처럼 투명한 샘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름 햇살 아래서도 시원하게 유지되는
이 물의 온도는 연중 내내 약 22도. 고요하고 맑은 물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떠돌고,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며 웃는다.
도시에서 보낸 하루가 그 물속에 잠시 담겼다 씻겨 나가는
느낌이었다.
게인즈빌은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생동감 넘치고
지적인 삶의 단면들이 도처에서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다.
예술과 늪, 대학과 악어, 그리고 찬란하게 빛나는 샘물.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도시.
이 도시의 리듬을 따라 조용히 걷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 리듬이 나를 포근히 감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