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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최고로 대우하는 법을 익히다

평범한 옷에 새긴 나만의 브랜드

by 김지향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는다.

젊은 시절 당연했던 것들이,

어느 날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는 때가 온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 없이 벌컥 마시던 차가운 물이 속을

뒤흔들고, 두세 개쯤은 건너뛰던 계단이 버겁게 느껴지며,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도 뛰어오르던 버스를 그냥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때,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 몸의 리듬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그 변화는 비단 물리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다.

어느 순간 사람들 사이에 머무는 시간이 피곤해지고,

말보다는 침묵이 편안해지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보다 묻히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그렇게 나이를 인식하게 되는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나는 이 시간에 색깔과 리듬을 입히기로 했다.

삶의 흐름에 주도적으로 리듬을 넣고,

나만의 ‘의례’를 만들어가기로.


나의 의례는 ‘옷장’에서 시작된다.

욕실을 지나면 마주하는 미국식 드레스룸.

다양한 색감과 질감의 옷들이 계절도 나이도 잊은 채 나란히 걸려 있다. 그 속에는 서울에 있는 여동생과 사촌, 조카들,

심지어 어머니의 오래된 옷들까지 있다.


흑인은 여름에도 니트를 입고, 백인은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는 이곳 미국. 유행이란 개념이 모호해진 이 문화 덕분에 십 년이 지난 옷도 ‘깨끗함’과 ‘자기표현’만 갖춘다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브 생 로랑은 말하지 않았던가.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고


나의 옷장은 그 말의 실천이자 해석이다.

화려하게, 담백하게, 클래식하게.

나는 매일 아침 나의 의식을 치른다.

오늘 하루를 살아낼 나만의 ‘스타일’을 고르는 것으로.


그 순간, 옷은 단지 외피가 아닌 나를 존중하는 방식이 된다.

소풍 가듯 출근하고, 무대에 서듯 거울 앞에 선다.

나에게 있어 ‘명품’이란,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재화의

가치가 아니라, 내게서 뿜어 나오는 태도인 것이다.


값비싼 브랜드의 리미티드 에디션 못지않게,

서울에서 건너온 오래된 스웨터 한 장에도

나만의 추억과 철학이 입혀져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명품이다. 나를 위한 최고의 가치를 담은 브랜드.


그 옷들을 통해 나는 나를 최고의 자리에 앉힌다.

그리고 최상의 대우를 해준다.

이는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이므로 이미 탑티어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삶과 시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오늘도 나를 위한 런웨이를 걷는다.

그리고 나의 철학과 태도가 내 인생을 대변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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