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세계 일주
‘여행‘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여행은 떠난 이후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하나의 축제가 된다.
누구나 떠나고 싶은 곳이 많고, 가슴속에 품은 여행지 리스트는 끝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우리를 붙잡아둔다.
바쁜 일상, 지친 몸과 마음, 그리고 여행을 떠날 여력이 없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나는 최대한 아늑한 곳을 찾고, 좋아하는 스낵을 곁에 두고 나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여행한다.
책 한 권을 펼치는 순간,
나는 지구 반대편으로 순간 이동한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으며 라만차의 마을을 거닐고, 끝없이 펼쳐진 스페인의 평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낀다. 기사도의 시대가 남긴 유쾌한 광기는 페이지마다
넘쳐흐르고, 나는 어느새 그 광기에 빠져든다.
카밀로 호세 셀라의 ‘라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에서는 먼지로 가득한 마드리드의 거리에서 숨이 막힐 듯한 더위를 견디다가도, 겨울 골목을 헤집는 매서운 칼바람에 몸을 움츠리기도 한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 19세기 런던의
어두운 골목을 누비고,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속에서는 빅벤이 울려 퍼지는 아침, 리젠트 가의 상점들을 지나하이드파크를 걷는다. 템스 강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책장사이를 스치고 지나간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며 여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닐다 네바 강을 건넌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속에서는 모스크바의 황금빛 가을 햇살을 맞으며 크렘린의 둥근 돔 위에 걸린 노을을 바라본다.
파울로 코엘료의 ’ 연금술사‘에서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해변을 따라 걷고,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강의 다리‘에서는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다리 위를 걸으며 이슬람 사원을향해 가는 무슬림 아이들을 마주친다.
루쉰은 나를 베이징으로, 장아이링은 상하이로 데려간다.
책 속에서 떠나는 여행은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 도시에 깃든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을 만나는 일이다.
이렇게 책장을 넘기며 지구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어느새
나의 몸과 마음은 충전이 되어 있다.
방 안에 앉아 있었지만, 수많은 도시를 걸었고, 다양한 시대를 넘나들었으며,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벌떡 일어나 문을 연다.
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문득 깨닫는다.
‘아,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구나.’
그러나 나는 안다.
언제든 책 한 권이면 다시 떠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