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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레이는 누구인가?

우리를 살리는 것은 말이 아니라 온도다.

by 김지향

살다 보면 문득 그런 순간이 온다.

마치 긴 터널을 걷고 있는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늪에 빠진 듯 서서히 가라앉는 기분이 들 때,

사방이 막힌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허공을 헤매는 것 같은 때.

그럴 때면, 우리는 무엇에 의지해야 할까?


1849년, 도스토옙스키는 반체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총살형이 집행되기 직전, 황제의 칙령이 도착했다.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시베리아 감옥에서 10년을

보냈다. 혹독한 추위, 썩은 빵, 몸을 때리는 채찍질, 그리고 온갖 범죄자들 속에서의 긴 나날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기적처럼 한 장면을 떠올린다.


아홉 살 때, 어느 여름날이었다. 혼자 놀던 산에서,

문득 환청을 들었다. 늑대가 온다! 놀란 그는 울며 도망쳤다. 그때 누군가 그를 향해 걸려왔다. ‘마레이’. 그의 집 농노였다.

마레이는 조용히 웃으며 그를 달랬다.

흙이 묻은 굵고 거친 손으로 아이의 입술을 닦아주었다.

그의 이마에 성호를 그었다. 따뜻한 손길이었다.

강요도, 커다란 위로도 없는, 그저 한순간의 온기였다.


그리고 20년 뒤,

시베리아 감옥에서, 그는 그 기억을 떠올린다.

눈앞에 보이는 죄수들은 거칠고 난폭했다.

살인자도 있었고, 도둑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문득

마레이의 손길을 떠올리며, 그들에게도 연민을 느꼈다.

마치 마레이가 자신을 안심시켜 주었던 것처럼,

그 순간, 그는 자유로워졌다.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누군가가 내게 건넨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심지어 누구였는지도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온기,

나를 감싼 따뜻한 느낌은 잊히지 않는다.

어릴 적, 엄마가 아픈 배를 문지르며, “괜찮아” 했던 손길.

친구가 말없이 내 어깨를 두드려 주던 순간.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내 손을 꼭 잡아주던 기억.

우리는 결국 그런 기억으로 살아간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 나를 다시 살려준 것은 거창한 조언도,

화려한 문장도 아니다.

누군가 나를 감싸주었던 그 작은 온기.

그러니, 혹시 지금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떠올려보라.

당신의 ‘마레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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