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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을 찾으세요

PART 3. 제발, 선을 넘지 않는 시부모가 됩시다

by 해날

여성은 결혼하면 호칭이 바뀝니다. 여보, 아내, 집사람, 며느리, 아줌마, 누구 엄마, 시어머니, 할머니…. 이건 모두 역할에 대한 호칭입니다. ‘너의 역할은 무엇이다’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 역할을 하는 ‘사람’은 중심에서 물러나 있습니다. 마치 이 역할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 상관없다는 것처럼 말이죠.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는 더블 캐스팅이라는 것을 합니다. 주인공 역에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 이상 뽑는 것이죠. 건강상의 이유도 있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공연을 못 할 경우를 대비해서입니다. 이렇듯 여러 이유가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언제든 그 역할을 대신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호칭은 사람이 수단으로 느껴지게 만듭니다. 책임감과 의무감이 한가득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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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 사위, 아저씨, 누구 아빠, 시아버지, 할아버지….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만들고 새로운 거래처 사람을 만날 때는 자신의 이름을 말합니다. 여성도 맞벌이를 할 때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전업주부는 다릅니다. 이름을 말하고 불리는 횟수가 솔로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남편과 함께 지인을 만나면 남편의 아내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남편이 이름을 불러줄지 몰라도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게 되면 당장에 ‘누구 엄마’로 불립니다. 어쩌다 본인이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나 이름이 불립니다. 그렇다고 이름 한 번 불리자고 아플 수는 없잖아요.


사이가 좋은 부부는 아내를 애칭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내가 전업주부인 경우에는 종종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다고 말이죠. 제가 불러주지 않으면 아내는 결혼 이후로는 이름 없이 사는 것입니다. 멀쩡한 전업주부가 어느 날 갑자기 존재감과 자존감이 낮아지는 이유는 전업주부로서 하는 일의 가치가 낮아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살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자신인데 이름을 잃어버렸으니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역할만이 남아 있지요. 이런 이유로 저는 아내의 이름으로 휴대폰 번호를 저장해 두었습니다. 그러면 전화를 받을 때마다 아내도 자신의 인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저 스스로 상기하게 됩니다.


상황이 이런데 아들이 결혼하면서 며느리에 시어머니라는 또 하나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나이 든다고 내면의 아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80이 되어서도 내 안에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면의 아이는 결혼 후에 자신을 불러주는 사람이 별로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처가댁에 가서 엄마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는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시월드의 최대 피해자는 ‘시어머니’ 자신입니다. 적어도 자녀가 독립 후에 갖는 부부기(재신혼기)에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취미 활동을 위한 모임에 나가보는 것입니다. 모임에서는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많습니다.


잠자고 있는 내 안의 백설 공주를 불러 깨워보세요. 행여 갑자기 자신이 소녀처럼 행동한다고 놀라지 마세요. 오랜 잠에서 깨어난 백설 공주는 여전히 그대로니까요. 이제 시어머니들은 힘껏 외치고 당당히 걸어가야 합니다. 바로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굿바이, 시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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