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속이야기7화] 나는 _배웁니다

삶의 지혜를

배운다는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익히고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라는 존재를 알리고 보살핌을 받기 위해 울기 시작한다. 아기는 생존본능에 따라 배가 고파서도, 졸려서도, 혼자라는 걸 느껴도 운다. 부모는 우는 아이를 달래며 젖을 물리고, 재워주고 안아주면서 소통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가르쳐준다. 아직 말을 배우지 못한 갓난 아이는 자기의 울음에 돌봐주는 그 누군가의 웃음과 미소와 따뜻한 언어로 화답하는 것을 배우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배운다는 것은 누가, 언제가 되었든 시기별로 다 다르다. 내가 배운 것들을 나잇대 별로,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시기별로 내가 배운 것들이 달랐다. 내가 10대 때 배운 것은 학창시절 친구들과 즐겁고 재미나게 노는 것을 배웠고, 남녀가 유별하니 조심해야한다는 것, 오빠들 속에 자랐기에 여자 아이들 보다 남자 아이들과 노는 게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 집에서는 형제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며 공부를 잘 해야 성공한다는 것을 배웠다. 학교에서는 학교 성적이 그 사람의 인격과 인성까지 같은 잣대로 재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평가의 잣대에 밀리지 않기 위해 하기 싫은 공부를 하면서 벼락치기를 배웠고, 친한 친구와도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을 배웠다.


20대 때 배운 것은 소속된 대학의 이름에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을 배웠다. 해외 유학과 스펙이 사람의 성공잣대가 된다는 것을 배웠고, 우리 집 형편과 나의 실력으로는 거리가 멀어 도전할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최소한 3~4명 정도와 데이트를 해야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자신의 성격과 완전히 다른 성격을 이상화하면 안 되는 것과 첫 남자와의 연애가 반드시 결혼으로 가야한다는 잘못 입력된 배움이 어려움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사랑의 콩깍지로 자신은 모르지만 제 3자는 잘 알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부모님과 지인이 반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과 극구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배웠다.


30대 때 배운 것은 처음으로 혼자 독립된 삶을 책임져야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를 배웠다. 전혀 다른 성격, 자라온 환경이 다른 사람과의 결혼, 자신의 최고 자존감이 무너졌을 때 대처하는 행동의 중요성을 배웠다. 언어 폭력과 신체 폭력보다 정서적 폭력이 사람을 더 병들게 할 수 있음을 배웠고 강한 결단력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어렵게 얻은 이제 막 돌 된 아이와 이혼 후 감내해야할 한부모 가정의 경제적 자립과 정서적 고립이 삶의 무게로 지쳐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다부지고 의지적인 정신력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삶에서 도태되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자신과 타인을 살리기 위해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배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배움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림책이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따뜻하게 원상복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40대 때 배운 것은 한 우물을 파서 끊임없이 배우고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내 것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성형수술에서 쌍커플은 필수이고, 코는 다들 한다고 하는 것처럼, 상담심리 분야도 석사는 필수이고 박사는 기본으로 해야 상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집안을 빨리 망하게 하고 싶으면 도박을 가르치고, 서서히 망하게 하려면 상담을 배우면 된다는 말처럼 상담공부에서 시간과 돈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힘들다는 것을 배웠다. 박사 논문은 혼자 엉덩이 힘으로 타이핑을 하되 교수님의 파워에 좌우된다는 것을 알았다. 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특별하게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것을 배웠고, 오로지 자기만족이라는 것을 알았다. 동업하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과 1인 기업처럼 혼자 꾸려나가는 연구소 사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건 굉장한 정신력과 고단한 마음을 지탱해야하는 근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마음을 교류할 남자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만 18년을 엄마 혼자 딸아이를 키우는 게 쉽지는 않지만 사는 보람과 의미찾기에 자식만큼 소중한 게 없다는 것을 배웠다.


이제 입문한 50대, 지금부터는 무엇을 배우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더 힘든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과 삶이 조금은 편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시작하는 50대에는 어떤 것을 배워야 할까? 꽝손이라 그리고 꾸미는 건 잘 못하지만 평소 배우고 싶었던 캘리를 배울까, 악기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배웠던 피아노 외에 기타나 드럼을 배울까, 아직 배워보지 않은 다른 영역의 것들이 많고, 지금 배워보고 싶은 것들도 많다.


배우고 싶은 게 많다는 건 모르는 게 많다는 거, 모르는 게 많다는 건 아직 삶의 에너지에 열정이 있다는 것이리라. 그러면서도 이제는 뭘 배우더라도 많이 재면서 몸을 사린다. 30대와 40대에는 나이 어린 자녀가 있었고 지금보다 더 시간에 쫓겨 4시간 이상 자지도 못하면서도 일과 배움에 정신이 팔렸는데 지금 50대에 들어선 나는 머리로는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만 앞설뿐 몸과 마음은 꼼짝 않으면서 꼼지락 거리고만 있다. 열정이 식거나 게을러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도전, 아직 배워보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으로 예전처럼 적극성과 열정을 가진 배움을 가지고 싶다.

내 나이에도 배우는 게 쉽지 않은데 일흔네 살 할머니가 차근차근 하나씩 배우는 것을 재미있게 그린 그림책이 있다. 가브리엘레 레바글리아티가 글을 쓰고, 와타나베 미치오가 그린 그림책 『나는 [ ] 배웁니다』는 평생 포크만 사용하다가 일흔네 살 전부터 젓가락으로 밥 먹는 걸 배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수영을 배우면서 욕조에서도 숨쉬기 연습을 하고, 가까운 도서관에 가기 위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할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이 듦을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들면서도 즐기기 위해 간단한 것부터 배워나가는 할머니. 할머니 나이가 일흔네 살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꾸준하게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일흔네 살은 전혀 늙은 게 아니야!


50대에는 캘리그라피를 배울 것이다. 캘리로 그림과 글을 쓴 내 색깔이 분명한 그림책을 낼 것이다.

60대에는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배울 것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함께 할 사람들과 정열적 나눔을 할 것이다.

70대에는 멋지게 나이 듦을 배울 것이다. 나이를 서로 나누어 어린 아이들, 자녀를 돌보는 사람들과 그림책과 이야기로 남은 삶과 남을 삶을 영위하는 즐거움을 표현할 것이다.


지금까지 배웠던 것은 인생을 뒤돌아보면 의도치 않게 배운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정말 배우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서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간 핑계와 주변 환경을 핑계 삼아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워야 한다. 자기 중심적 자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객관적으로 두고 제 3자의 시선에서 관찰하며 여유 있는 사람으로서 배워야 한다. 한 템포 늦지만 편안한 마음 시선으로 상대방의 마음에 귀 기울임을 배워야 한다. 자기 시선의 고정식이 아닌 근거리와 원거리를 자유자재로 밀고 당기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다. 내 가치관과 기준, 또는 타인 기준으로만 보았던 시선을 탄력적으로 바꾸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면 50이후의 삶은 과거의 삶보다 촉촉하고 말랑해 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제는 배울 것이다. 내가 지금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왜 배워야 하는지 이유를 찾기보다,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미룰 핑계를 찾기 전에 어디서 배울 수 있는지를 찾는 연습을 해야 한다. 배워야 하는 이유보다 배우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지금을 더 값지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호호 할머니가 되어도 이웃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며 살아가는 이야기와 살아가는 지혜를 남겨주는 것을 배우고 싶다. 어느 영화 주인공처럼 파파 머리 노부부가 서로 손잡고 잔잔한 호수를 거닐면서 서로의 노곤한 등에 따뜻한 볕이 되어주는 그런 마음을 배우고 싶다. 나의 미래에는 예쁘게 나이 드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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