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속이야기8화] 태어난 아이

내 반창고는 그림책

by 그림책살롱 김은정

그 전과 다른 자신의 모습으로 쇄신하고 싶을 때, 새롭게 일을 시작할 때 ‘오늘 다시 태어나는 거야’라며 몸과 마음을 다지는 행위를 한다. 가령, 그간 길렀던 손톱을 바짝 자른다거나 변신을 주기 위해 미용실을 가는 것, 목욕을 하며 묵은 때를 벗기듯 그간의 여정을 잊고 새로 태어나는 기분을 가지겠다는 의지적 행동이다. 의지적 행동을 한다는 건 앞서와 다른 모습을 하겠다는 자기최면을 거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성공이다. 외적 변신을 일주일에 두 번씩은 할 수 없으나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3일마다 새롭게 마음에 변신을 주면 변신이 자리 잡는 21일이 경과한 뒤에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혼 후 홍대 앞 노상에서 옷가게를 6개월 하다가 그만 두었다. 생각 외로 장사가 잘 되었으나 날씨의 영향이 많고, 그 날에 영향을 받는 일이라 고심했다. 반 년을 하다 그만 두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분유와 이유식을 먹는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서 놀게 하는 것은 건강과 환경적으로 좋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다. 규칙적이고 안정적 생활, 넉넉한 분유 값과 생계를 위해 바로 구직에 나섰다.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직업은 무엇일까? 어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출퇴근이 자유로운 직업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 떠올린 직업은 학습지 선생님 이었다. 서울과 인천, 서울에서 6개월씩을 머물다 큰오빠가 있는 의정부로 이사를 감행했다.


그 당시 3살이었던 딸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녔다. 집 앞에 아침 8시 10분에 도착하는 어린이집 셔틀버스에 제일 먼저 탑승하고 맨 구석에 자리하는 걸 보고 9시 반까지 출근했다. 일주일에 이틀은 어린이집에 저녁 8시 반 도착하면 거실 같은 홀에서 남겨진 둘 셋 사이에서 남겨져 텔레비전을 보는 아이 틈에서 내 아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얻거나 걸어 집에 오면 9시 반이 넘었다. 다른 날들은 마지막 운행 셔틀버스를 타고 오는 어린 아이를 큰새언니는 저녁을 먹여주고 놀아주었다. 조카들 틈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등에 업고 채점할 학습지 가방을 매고 돌아오는 5분 거리가 거의 20분 거리로 느껴질 정도로 지쳤다.

예전과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은 그림책이었다. K학습지 선생으로 학습지 가방을 양쪽 어깨에, 손에, 팔에 4개의 가방을 매고 차도 없이 다니다 보니 무릎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어린이집 교사에게 딸아이가 어떻게 노는지 물어보면 “가장 조용해요. 손이 하나도 가지 않는 얌전한 아이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라는 말이 오히려 나를 걱정하게 했다. 집에 있을 때는 여자아이지만 장난치기 좋아하고 떼도 쓰면서 아기다운 표현을 하는데 어린이집에서는 얌전한 아이라는 말이 정말 맴맴 몇 날이 지나도 계속 들렸다. 어린 딸에게 어린이집에서 가장 부러운 게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엄마가 데리러 오는 거라고 했다. 엄마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느냐고 물었을 때, 셔틀버스 타지 않고, 다른 친구들 많을 때 예쁜 엄마가 직접 데리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은 귀에 확성기를 댄 듯 크게 들렸고, 가슴엔 망치질 하듯 쓰라렸다.


그러는 와중에 17년 전 우연히 모 신문사에서 주관하고 협찬한 독서논술에서 그림책을 만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매 월 18권의 책 중에 그림책이 15권, 동화책이 3권을 무료로 받아 볼 수 있었다. 신문사에서 주관한 논술은 홈스쿨 방식이라 집에 아이들을 모아 논술을 하는 거라 출퇴근이 없어 좋았다. 무엇보다 아이의 소원인 셔틀버스를 태우지 않아도 되고 아이를 집 근처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아이들이 많이 귀가하는 시간인 4시에 내가 직접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있어 가장 좋았다. 전집 조금만 있던 우리 집에 한 달에 18권의 책들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난 무척이나 행복했다. 아이와 즐겁게 놀아줄 시간이 늘어서 행복했고, 아이에게 필요한 그림책이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적어도 7권, 많게는 하루에 40권도 책꽂이에서 골라오는 아이를 보는 그 흐뭇함은 잊을 수 없다. 목이 아파서 쉬고 싶다가도 아이가 책 읽어달라는 말은 정말 종다리가 노래하는 것 처럼 들려 오히려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몫을 하는것 같아 뿌듯했다.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아이는 ‘그림책’이다. 거꾸로 말하면, 나는 ‘그림책’으로 다시 태어난 아이다. 딸과 내가 변하게 한 일등공신이 그림책이고, 그림책은 내 인생의 1/3을 차지하는 주인공이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그림책 인연은 대학원에서 독서치료를 공부하게 이끌었고 이 공부로 내 마음의 치유와 내 아이를 제대로 보는 눈이 생겼다. 무엇보다 그림책심리치유가로 활동하면서 지금의 나를 온전히 만날 기회를 가지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17년 전의 그림책 만남은 힘든 나를 힘들다고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해주기에 충분했다. 영혼의 약상자가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태어난 아이다.


결혼과 이혼으로 굳게 닫힌 마음을 열고, 열린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닿게 연결해주도록 다시 태어나게 한 그림책이 내게 태어난 아이인 것처럼, 다시 태어난 아이 심정의 마음을 잘 표현한 사노 요코가 쓰고 그린 <태어난 아이> 그림책을 펼쳐 본다. 태어나고 싶지 않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세상 무서울 게 없었고, 그 무엇에도 관심도, 아무 부끄럼 없이 살았다. 벌레에 물려도 아프지 않고, 넘어져도 아프지 않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비로소 태어났다. 엄마의 따듯한 보살핌,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엄마의 사랑을 본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태어나고 싶어졌다.


"엄마"
"괜찮아, 괜찮아"


“반창고”로 다시 태어난 아이

태어나고 싶지 않은 아이를 태어나게 한 ‘반창고’가 내게도 있다. 세상과 꼭꼭 단절하고 숨어 살며 태어나고 싶지 않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나의 반창고는, 그림책'이다. 태어난 건 피곤하고 지칠 수 있지만 ‘내겐 큰 반창고가 있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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