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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Jan 25. 2022

자녀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그림책과 대화하기

그림책독서치료 들어가기


“엄마는 왜 내 마음을 몰라?”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 자주 했던 말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런데 이제 우리가 부모가 되어 아이들로부터 이 말을 듣게 되었다. 그것도 자주 말이다.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로 한번 되돌아가 보자. 울거나 웃기밖에 안 하는 아이와 우리는 어떤 식으로 대화했을까?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우리 집으로 시집온 큰 새언니가 조카들을 키우는 모습에서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새언니는 한 달도 안 된 조카가 ‘응애’ 하고 울기만 해도 배가 고파 우는지, 기저귀가 축축해서 우는지, 졸려서 우는지 알고 그에 맞게 움직였다. 결혼 전이었던 나는 그런 모습이 생소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그때는 새언니가 아이 키우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몇 년이 흘러 내가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같은 소리인데도 ‘속이 답답하니 트림을 시켜주세요.’ ‘엄마, 졸린데 그냥은 잠이 안 와요. 안아주세요.’ ‘심심해요. 놀아주세요.’ ‘밥 좀 더 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남편조차도 신기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배냇저고리에 손 싸개를 한 갓난아이의 말을 알아듣고, 단어 하나의 숨은 의미도 파악했던 우리, 보채면서 우는 아이의 소리를 듣고 신손하게 반응했던 우리가 왜 서서히 아이의 마음도 몰라주는 사람으로 바뀌었을까?     

아이를 키워본 사람만 아이의 마음을 잘 아는 건 아니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고도 아이와 유독 잘 통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본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아이를 셋, 넷 키우고도 아이와 같이 칭얼대고 서로 할퀴는 부모도 있다. 아이를 키우든 키우지 않든 아이와 어른 사이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서로 갈등하고 힘들어하는 걸까?


난 ‘대화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대화하지 않고 어떻게 살겠느냐는 사람도 있을 테고, 우리는 하루종일 대화하며 산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대화는 ‘어!’하면 ‘어!’로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어!’라고 이야기했는데 ‘아!’로 알고 대화한다면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원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덧붙이면, 같은 ‘어!’라도 어떤 뉘앙스를 주는지에 따라 말의 의미 전달도 달라지고 상대방의 기분도 달라진다. 예를 들면, 엄마가 “밥 먹어라.”라고 말할 때, 똑같은 말이어도 끝을 올려서 말하느냐 내려서 말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엄마의 숨은 감정을 파악한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엄마가 던진 말과 같은 뉘앙스로 대답한다. 엄마 역시 신속하게 반응한다. 부정적인 뉘앙스다 싶으면 가차 없이 서로가 맹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각자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서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얼구을 삐죽 내민다. 또는 맛있는 반찬을 내놓으면서 무언의 화해 제스처를 취한다. 화해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상태로 일단 마무리되었더라도 잔재는 남아 있다. 소강상태가 지나고 나면 또 서로를 맹공격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이런 패턴이 꼭 부모 자식 간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웃집과도 그렇고 직장 내에서도 그렇다. 자신이 잘못했다기보다는 상대방이 잘못 받아들이고 잘못 이해한다며 남을 탓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대화 습관을 점검해보지 않거나, 자신에게 틱(어려운 상황일 때 대처하는 무의식적 심리적) 현상이 잇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와 아이는 어떻게 만나야 할까? 어떻게 해야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즐거운 대화가 될 수 있을까? 먼저, 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어떤 일들을 겪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아이 입장에서 폭넓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크게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내 아이만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 아이들은 영아기 때부터 거짓말을 한다. 옛날로 되돌아가 보자. 아이가 숨넘어가게 울어서 달려간다. 축축한 기저귀도 갈아주고, 배부르게 젖도 주고, 시원하게 트림도 시켰는데 내려만 놓으면 자지러지게 운다. 그사이 또 똥오줌을 쌌는지 점검해보고 젖병을 다시 물려봐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널던 빨래를 마저 널러 자리를 뜰라치면 아이는 아까보다 더 심하게 울고 보챈다. 할수 없이 어부바를 하고 빨래를 널면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방실방실 웃고 까르르 웃는다. 그렇다. 아이들은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필요하다 싶으면 거짓말을 한다.     

그렇다면 아이의 이 거짓 행동은 언제 가장 심하게 나타날까? 우리 엄마들이 이런 말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운 네 살, 때리고 싶은 일곱 살’.(지금은 때리고 싶은 네 살, 죽이고 싶은 일곱 살이라고들 한다. 슬프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자기 주도성이 세지고 거짓말을 많이 한다. 가장 거짓말이 심할 때는 네 살이라고 한다. 여자아이의 경우 엄마가 외출하고 없을 때 엄마 화장품에 대고 립스틱을 부러트리기도 하면서 장난을 치다가 엄마가 돌아오면 그런 적 없는 척 시치미를 떼기도 한다. 남자아이의 경우 엄마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쉬하다가 바지가 젖는 건데도 물장난하다가 그런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아이들의 특징이 또 있는데 바로 고집이 세진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중심성이 발달하는 것이다. 부모가 먹여준다고 해도 스스로 먹겠다고 하다가 옷을 더럽히거나 밥그릇을 엎는 아이, 신발 끈 못 매면서 혼자 매겠다고 씨름하는 아이, 도와주겠다고 하면 바닥에 털석 주저앉아 동제가 떠나가라 울어 재끼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는지. 이 또한 내 아이에게만 나타나는 이상행동이 아닌 또래 아이 모두에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이들의 발달과정에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첫째의 경우 행동은 느려도 책임감이 강하고 의젓한 반면, 막내는 어리광과 엄살은 심해도 애교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어른들이 만든 선입견에 불과하다. 이 선입견 때문에 도리어 아이를 잡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예를 들면, 큰 애가 작은 애보다 활달하고 장난스러우면 “동생만도 못하구나. 동생 좀 닮아봐라.”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 말을 들은 큰 애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도 못해봤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도 자라면서 부모님이 이웃집과 비교하고 형제들과 비교하는 것을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사소한 말에도 쉽게 상처받는 아이들의 마음을 한 번만 헤아려준다면, 적어도 “엄마가 내 마음 알아?”라는 말은 듣지않을 것이다.     

이처럼 부모들은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한다. 이런 경우 효과적인 대화 방법은 없을까? 아이들한테 “이리 와서 이야기 좀 하자.” 라고 하면 아이들은 또 잔소리를 듣겠거니, 그냥 거실에서 봐도 되는데 왜 오라고 하실까, 걱정부터 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그림책을 포함한 책 읽기다. 함께 그림책을 읽고 나누면서 주인공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대변하고 공감한다. 자연스럽게 하고싶은 말을 주인공의 감정에 감정이입을 하면 핑계를 대거나 남을 탓하지 않고 최소한의 방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     

난 이 방법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상담할 때도,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날 때 최소한의 가르침으로 최대의 공감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는 아이와 대화하고 싶을 때 영화관을 가기도 한다는데 나는 내 아이와 대화할 때 그림책으로 자기 마음을 감정 이입하며 감정을 나눈다. 일주일에 한 번 그림책으로 이야기 하는 대화의 날을 정한다. 영화든 그림책이든, 모두가 서로 자신이 선호하는 방법, 또 효과적이었던 방법을 쓰기 마련이다.     

혹시 아이들에게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니?” 하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는가? 이 질문에 아이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나는 얼마 전에 내 아이에게 “까꿍이는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할 때, 두 번째로 행복할 때, 그리고 세 번째로 행복할 때가 언제니?” 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아이는 “가장 행복할 때는 엄마가 옆에 있을 때, 두 번째로 행복할 때는 엄마가 그림책 읽어줄 때, 세 번째로 행복할 때는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놀 때!”라고 대답했다. 내 예상에서 벗어난 대답이라 놀라긴 했지만 기분 좋았고 한편으론 어깨가 무거웠다.     

내가 예상한 대답은 혼자 그림책으로 볼 때라든지 쇼핑할 때였다. 그렇다면 아이가 이렇게 답한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선은 내가 일을 하느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릴 적부터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던 습관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딸자식 잘 키웠다고 자랑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자랑을 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큰돈 들이지 않아도 아이와 충분히 그림책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내 아이가 이렇게 대답한 것에는 다름 아닌 ‘그림책의 힘’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딸아이가 세 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딸아이는 놀아달라고 치맛자락을 잡고 다녔다. 소꿉장난도 하고 블로 놀이도 함께 하면서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가르치려는 말투가 아니라 마치 아이처럼, 때론 아이보다 더 유치하게 심술도 부리면서 놀아주었다. 이렇게 함께 놀아다 아이를 재울 때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아이가 가지고 오는 그림책은 가급적 다 읽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가 가지고 온 그림책을 모두 읽어주기에는 체력이 부족했다. 사실 이 무렵 아이가 글은 잘 모르고 그림만 보던 때라 나는 한 번에 두세 장을 넘기며 읽어주었다. 그러면 아이는 처음에는 그냥 자나치다가 “아니야. 요기 빼먹었잖아.”라고 자다가도 다시 일어나 앉기도 했다. 지나칠 법도 한데, 자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콕 찝어 지나친 그림 장면들을 찾아내는지 모른다. 아이는 자신이 가지고 온 그림책을 엄마가 읽어주면 바로 잠들었다. 어떤 날은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아이보다 내가 먼저 잠든 날도 많았다. 아이가 일곱 살이 되어 한글을 떼고부터 본인이 읽고 싶은 책과 엄마가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가 스스로 그림책을 포함한 책을 읽을 때면 나는 가사 일을 하지 않았다. 아이를 안고 함께 눈으로 읽어주거나 책의 한쪽 끝을 잡아주면 함께 했다. 이렇게 하면 아이가 어떻게 책을 읽는지도 볼 수 있고, 아이와의 대화 소재가 풍부해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어떤 글귀에서, 어떤 장면에서 오래 시선이 머무는지 알 수 있다. 책을 읽은 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때 아이의 모습을 보면 아이의 생각도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무조건 많은 말을 하는 것만이 대화가 아니다. 짧은 대화라도 아이가 지금 어떤 마음상태인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짧은 나로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아이와 스킨십을 하고 싶었다. 자연스러운 스킨십은 아이를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아이와 함께 머물 수 있는 시간을 그림책 읽기를 사랑한다. 또 그림책을 활용한다.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알고 헤아리며, 엄마 마음 또한 아이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난 안다.      

그림책 한 권을 사이에 두고 아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고, 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변화도 알게 된다. 그렇게 여러 해를 겪다 보면 아이와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아이에게 강제적이거나 요구적인 대화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다른 아이나 부모와 대화를 할 때도 그림책을 사용한다. 상담할 때도 적절하게 사용한다. 그림책은 큰 경제적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든 그림책 한 권으로 편하게 아이의 마음, 부모의 마음을 전달하며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즉 그림책의 힘이기도 하고 그림책이 가진 치유의 힘이기도 하다.     

강의를 하다 보면 ‘아이와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난 다시 질문한다. “어머님은 어떻게 하시는데요?” 그러면 머뭇거리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학교 잘 갔다 왔니? 급식은 어땠어? 숙제는 다 하고?” 그 뒤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다. 왠지 감시받는 것 같고 어떤 대답을 해도 칭찬받을 뻔한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화가 아니라 그냥 질문과 대답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답을 피하려고만 한다거나 원하는 대답을 하고 자리를 뜬다거나 그마저도 귀찮다며 자기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고 말을 잇지 않는다.     

아이들과 긴 대화를 원한다면 진심 어린 대화를 시도하자. 감시받는 느낌의 첫 마디가 아니라 ‘엄마가 정말 나를 걱정하시는구나. 아빠는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구나. 나에게 관심이 많구나.’를 느낄 수 있게 질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내 아이가 요즘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또래관계는 잘 하는지 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알고 싶다고 한꺼번에 질문하면 아이들은 또 취조당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평소에 대화를 통해 아이의 관심과 부모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내 강의를 들은 한 학부모가 ‘지금껏 해온 대화법 말고 오늘 여기서 배운 대로 한 번 해봐야지.’ 라고 결심하고는 집에 돌아가서 안 보던 그림책을 펼치고 이야기를 시도했다고 한다. 그러자 아이는 “치! 엄마 오늘 어디서 뭐 배우고 온 거나?”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고 한다. 사실 내가 아이 입장이었어도 그렇게 말했을 것 같다. 이런 대답을 듣지 않으려면 평소에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을 미리 관찰을 통해 알아두길 바란다. 감시가 아닌 진심으로 아이를 관찰하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아이와 풍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자녀에게 이렇게 대화를 시도해 보길 바란다.

“하늘은 보았니?”
 “네 마음은 무슨 색일까?”




<엄마랑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 (2010)원고 수정 중입니다

개정판을 출간하고 싶어요. 관심있으신 출판사 대표님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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