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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Feb 08. 2022

일곱 살인데 아직도 한글을 모른다고요?(하나)

그림책독서치료 - <어린이 탈무드>, <이솝우화>

상담대학원 졸업을 앞둔 5학기 중반쯤이었다. 석사전공이 독서치료다 보니 책과 관련된 수업을 많이 수강했는데, 상담이론과 심리검사, 이상심리, 개인 및 집단상담이론을 배움과 동시에 전공과 관련된 저널 치료, 이야기 치료, 시 치료 등을 배웠다. 그중에서도 이야기 치료를 수강할 때의 일이다. 독서치료 전공자들의 선택과목에 박사과정을 밟고 계신 할아버지 한 분이 같이 수강을 했다.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조심스럽게 내게 오시더니 독서치료에 관한 이런저런 궁금한 점을 물어보셨다.     


독서치료 전공자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니 책을 많이 읽게 되어 좋은 것 같다,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좋은 그림책 있으면 소개해달라, 상담일지는 어떻게 쓰는 게 좋으냐 등의 질문이었다. 나는 내가 아는 선에서 성의껏 말씀드렸다. 그러자 박사생 할아버지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한 가지를 물어보셨다. 아주 조심스럽게.     


“큰딸 아들내미가 지금 일곱 살인데, 아직도 한글을 몰라요, 애미는 때되면 다 한다고 걱정하지 말라는데 오히려 할아버지인 제가 겁이 나는 겁니다. 이런 손주 녀석한테 추천할만한 책도 있나요?”

“어떤 책을 권해드리면 좋을까요? 책에 재미를 붙일 수 있는 책이 좋을까요? 아니면 한글을 익히기 좋은 책이 좋을까요?”

“아, 그러니까. 음, 뭐랄까. 내년이면 학교를 가야 하는데 아직 한글을 모르니까 한글을 빨리 뗄 수 있는 책 같은 거 말입니다. 그런 책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강의와 상담을 병행하면서 비슷한 질문과 유사한 내용의 상담을 자주 의뢰받았다. 이럴 때 나는 특별히 도움이 될만한 책을 소개하기 보다는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다 보면 일상에서 분명 우리 어른들이 놓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런 것들을 차차 개선해가면서 책과 병행할 때 원하는 효과를 빨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직업이 독서치료사로 활동하는 현장에서 책으로 아이를 치료해달라는 부탁을 받거나 비슷한 제안을 받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책만 읽는다고 모든 증상이 사라지고 다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독서치료사로부터 독서심리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상담받는 모든 대상자(내담자)에게 앓고 있는 병을 낫게 하는 건 아니다. 그림책 독서치료는 병의 아픔에서 낫게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아픔을 낫게하고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다. 하긴 하다. 독서치료라는 영역은 의사가 아닌 영역에서 활동하는 거라 100% 치료로 아픈 것을 낫게 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아이들이 이상 행동을 보이는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 가정에서 비롯되는데 밀착된 어른들은 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 아이들을 돌보는 양육자를 옹호하거나 누구를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원인을 찾으려 하다 보면 오히려 더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아이를 윽박지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지치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손댈 수 없을 만큼 부모와 멀어지게 되고 돌아킬 수 없는 상황에 까지이르게 된다는 걸 명심하자.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이지만, 하루 정도 시간을 내서 아이들을 관찰하기 바란다. 그냥 넋 좋고 이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분석을 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관심 어린 눈빛으로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분명 가까운 곳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부모의 모습에서 찾을 수도 있고, 아이의 기질에서 찾을 수도 있다, 아니면 대화 도중 주고받게 되는 기 싸움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때문에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 지을 수도 없고, 한 가지 처방만 내릴 수도 없는 것이다. 나나 이렇게 되묻곤 한다.


“일단 어떤 책을 권하기 전에 상준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것 같아요. 상준이가 좋아하는 책 종류가 어떤 건지 아세요?”

“같이 사는 게 아니라서 그것은 잘 모르는데..... 그걸 꼭 알아야 하는 가 보죠?”

“상준이가 어떻게 책을 보는지, 가령 책 볼 때 다리를 흔드는지, 소파에 앉아서 보는지도 궁금해요.”

“......”

“아무래도 아이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좋은 책을 선뜻 권하기 힘들어요. 권해도 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거든요. 그럼 상준이 부모님한테 편한 날 정해서 상준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일단 지켜보라고 해주세요. 감시가 아니라는 거 아시죠? 감시가 아니라 관심 어린 관찰입니다!”     


할아버지와는 일주일에 한 번만 3시간만 같은 수업을 듣는 관계로 한 번에 많은 것을 전달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상준이가 책을 볼 때의 습관이나 표정, 행동 패턴을 조금씩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한 권의 책도 오래 집중해서 보지 못하고 수시로 책을 바꾸며 본다, 부모가 읽으라고 하면 울면서 읽거나 억지로 읽는 시늉을 한다, 소파에 앉았다가 거실 바닥에 누웠다 하면서 읽는다, 만화책을 읽으면 그나마 이런 행동이 덜하다 등이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한글을 몰라서 그런 것 같다며 큰 호응을 주셨다. 한글도 깨우치면서 책을 재미나게 읽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셨다. 많은 부분을 놓친 것 같아 안타까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을 발견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구두로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나름 알려드렸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아예 방문상담을 요청하셨다. 조금 먼 거리였지만 내가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 데다 다른 상담보다 더 효과가 빨리 나타날 것 같아 바로 수락했다. 직접 상준이를 만나 진단해 본 결과, 상준이가 아주 못읽는 건 아니었다. 모르는 단어가 많다 보니 책을 읽어도 의미 전달이 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책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책이 그저 싫기만 하고 책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는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상준이를 반갑게 맞고 자연스럽게 탐색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상준이 엄마는 쾌활하고 즐겁게 상준이를 맞이했다. 나와 함께 간식을 먹으며 즐겁게 대화나눴다. 그러다 상준이 엄마가 상준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하자 상준이는 못 들은 척했다. 엄마가 여러 번 이야기 하자 상준이는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읽기 시작했다. 한 장 넘기는 게 쉽지 않았고 자꾸만 몸을 비틀었다.    

 

상준이 엄마는 상준이에게 나를 ‘재미있게 놀아주는 책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차근차근 상준이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준!”

“어! 엄마아빠가 부를 때 그렇게 부르는데?”

“그래? 선생님 오빠가 셋 있는데, 준으로 끝나거든. 그래서 선생님 엄마도 그렇게 부르더라구. 그래서 상준이도 그렇게 부를까 싶어서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한 번 불러봤지.”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 집에 왜 왔어요?”

“글쎄 왜 왔을까?”

“책 안 읽으니까 혼내러?”

“선생님이 혼내러 준이 집까지 온다고? 그럴 리가.”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자꾸 책 안 읽고 딴짓하면 혼내주는 선생님 온다고 그랬어요.”

“정말? 선생님이 상준이 혼낼 것처럼 생겼니?”

“아니요. 하나도 안 무섭게 생겼어요.”

“고마워. 참, 상준이는 과자 좋아하니?”

“네. 하루에 하나 먹어요. 아이스크림도 먹어요. 티코아이스크림!”

“그렇구나. 선생님도 그러는데, 찌찌뽕!”     




이 원고는 <엄마라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2010) 신인문사

책에 실린 글입니다. 그림책으로 심리상담했던 사례와 실천에 관한 임상관련 글입니다.


재출간을 기다리며 수정하고 있습니다.

그림책독서치료 관련해서 관심있으신 출판사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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