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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Feb 16. 2022

일곱 살인데 아직도 한글을 모른다고요?(둘)

그림책독서치료 - <어린이 탈무드>, <이솝우화>

이렇게 상준이의 관심을 끈 뒤 나는 상준이 엄마에게 과자를 사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혹시 상준이가 먹으면 안 되는 과자나 음료수가 있는지 확인하고 근처 마트에 갔다.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정을 들고 이름을 말하면서 맛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들은 시간 가즌 줄 모르게 놀면서 재미나게 한글을 배울 수 있다. 별스럽게 뭐 그렇게까지 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직저 써왔던 방법이었고 효과가 좋았기 때문에 소개한다. 효과는 그야말로 만점이다!     


상준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가지고 온 나는 봉지에서 과자 이름을 오린 뒤 단어 카드 한 장에 과자 이름 하나씩을 붙였다. 그리고 퀴즈 게임을 했다. 예를 들면 과자의 색깔이나 맛, 광고 음악 등을 힌트로 주고 과자 이름을 맞추게 하는 것이다. 승부욕이 있는 아이들은 퀴즈를 모두 맞힐 때까지 계속하자고 하기도 한다. 나는 상준이 엄마에게 숙제를 하난주었다. 라면, 아이스크림 등 상준이가 관심 있는 물건(간식)을 구입한 뒤 위와 같은 방식으로 퀴즈 게임을 하는 것이다. 이때 아이가 재미있어한다고 해서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제시하지 않는 것을당부했다. 오히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2~3일 간격으로 주제를 바꿔서 하면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한글을 익힐 수 있다.     


어느 정도 단어를 익힌 다음에는 다른 작업에 들어간다. 일곱 살쯤 되면 어느 정도 필압(글씨를 쓸 때의 압력)이 있기 때문에 직접 연필을 잡고 잠깐이라도 글씨를 쓰게 해야 한다. 더구나 조금 있으면 초등학교 입학하므로 책 읽는 습관 못지않게 글 쓰는 것도 중요하다. 단어를 익히면서 동시에 글도 쓸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방법에는 연습장 한 권과 4B연필 한 자루, 지우개가 필요하다.(4B연필을 사용하는 이유는 일반 연필보다 부드럽게 써지지 때문에 팔 힘이 약한 아이들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단어 카드에 있는 과자 이름을 보고 연습장에 따라 적게 한다. 이때 과자 이름과 관련된 상항이나 음악을 콧노래 형식으로라도 들려주면서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는 짧은 문장 쓰기를 해야 한다. 부모 욕심에 처음부터 긴 문장을 쓰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경우 어렵게 가진 흥미를 잃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아주 짧더라도 문맥에 맞는 문장을 쓰게 해야 하는데, 가능한 한 스스로 쓰게끔 하고 못 쓰는 글자는 살짝만 도와주도록 한다.      

예를 들어 ‘상준이는 새우깡을 좋아해요.’라는 말을 쓰게 한다고 가정해보자. 상준이는 특별히 어려워하는 글자만 내가 써주고 다른 글자는 상준이가 직접 채워가게 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점점 길게 쓸 수 있다. ‘상준이는 새우깡은 좋아하지만, 양파링은 싫어해요.’ 등 꼬리에 꼬리를 물 듯 글쓰기 연습을 하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글 읽는 재미와 글쓰기에 가속도가 붙는다.     

마지막 단계는 무엇일까? 글자를 익혔다면 이제 내용이 조금이라도 있는 글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이 단계에서 가장 추천할만한 책은 <이솝우화>(안선모 글, 이민결 그림)와 <탈무드>(장태원 글, 이우정 그림)이다. 이 책들은 한 권에 여러 편이 실려 있는데, 대부분 짧은 문장으로 이우러져 있어서 부담 없이 읽기 좋다. 또한 초등학교 교과 과정과도 연관이 있어 입학하기와 맞물린 아이들에게 유익하다. 또한 올바른 인성을 기르기에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 권장할만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기 때문에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일단 위에서 언급한 책들을 아이에게 혼자 읽어보게 한다. 만약 아이가 읽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힘들어하면 선생님이나 부모가 먼저 읽어준다. 하루에 한두 편 읽어주기를 반복하면서 아이가 책에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 이 과정에서 효과적인 학습법을 한 가지 추천한다. 이 방법은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인데, 대화가 나오는 부분에서 번갈아 가며 읽는 것이다. 아이가 못 읽는 부분이 나오면 부모님이 한 번 읽어주고 다시 읽게 한다. 상준이의 경우 이렇게 대화 부분이라도 참여시키고 나니 조금씩 스스로 읽는 범위를 넓어졌다.     


나는 상준이와 석 달 동안 상담을 진행했다. 처음 만날 때는 놀이치료를 통해 글자에 대한 부담감을 최소화하게 해주었고, 그 이후 조금씩 글을 읽으면서부터 그림책 독서치료를, 아주 간단하고 기초적인 저널 치료(글쓰기 치료)를 통해 글쓰기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이사이에 책 읽어주기를 병행하자, 상준이는 스스로 짧은 글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짧은 글쓰기에도 감정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석 달이라고 해봤자 열두 번을 만났을 뿐인데 헤어질 무렵에는 상준이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나는 상담할 때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지 않는다. 그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찾고 그에 맞는 방법을 고려하면서 한다. 생각보다 쉽게 마무리될 때도 있고, 때론 난간에 부딪혀 지연될 때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의뢰한 부모님이나 친척과 상의하고 아이와 따로 이야기도 나누면 오히려 쉽게 문제가 풀릴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보람을 느끼고 더 하고 싶은 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준이와 함께 한 책 중에서 상준이가 글을 읽으면서 자신감을 가진 책을 소개하면, <1학년 이솝우화>(이솝 글, 이영호 옮김), <탈무드 지혜동화>(이상배 글, 하의정 그림) 등이 있다. 짧지만 생각하게 하는 책, 미취학 아동이 취학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이나 생각나는 부분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이야기 치료까지 할 수 있어 좋았다.     


일곱 살인데 글자를 못 읽는다고 부모님들이 내게 이야기할 때, 마치 부모는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말을 잘 잇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것이 아이 양육이나 교육 전체로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경우도 보았다. 아이가 글을 못 읽는 것은 부모 죄가 아니며, 그렇게 몰아가는 것은 흑백논리를 강요하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변을 보면 한글을 유독 빨리 깨우치는 아이가 있는 반면에, 일곱 살, 그 이상의 나이임에도 한글을 몰라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도 있다. 부지런한 엄마가 아이를 잘 가르친다고 말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꼭 엄마가 부지런해야 발 빠른 교육을 하고 맞춤 교육을 하는 건 아니다. 과연 아이들이 부모의 요구대로, 교육대로 자랐을까? 부모의 노력만큼만 아이가 자라준다면야 이 세상 엄마들의 걱정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아이 키우는 걱정 없이 “아이들, 마음먹은 대로 키울만하다!”라고 큰소리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를 대할 때 내가 바라는 대로 되기보다는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나 역시 시행착오를 겪고 숨죽여 울기도 하면서 아이를 키웠다.      


힘들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아이의 잘못이 마치 부모교육의 부재나 잘못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음을 무수히 겪었을 것이다. 말이 늦어도 부모 탓, 걸음마가 늦어도 부모 탓 등 많은 것들이 부모 역할에 소홀해서 벌어지는 일들이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아이 키우는 것만큼 힘든 농사도 없는 것 같다. 아이가 늦될 경우, 어떤 가정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여자가 살림만 하고 애들만 보는 데 뭐 그리 힘들다고 아이 교육 하나 제대로 못 시키고 있느냐, 집에서 도대체 뭐 하는 거냐.” 이런 말을 닫는다는 주부들의 하소연을 접할 때마다 같은 주부로서 속상하고 가슴이 아프다. 물론 워킹맘보다야 편할 수 있지만,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진다고 해서 아이들을 내 마음대로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러한 마음을 남편이 조금이나마 헤아렸으면 한다. 아이가 한글을 빨리 깨우쳐야만 엄마 역할을 잘하는 여자로 인정하기보다는, 아이가 아이답게, 사회성 있게 자라도록 도와준 것도 한글 깨우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엄마 역할임을 알아주기 바란다. 한글 깨우치는 상담은 쉬운 상담에 속한다. 오히려 사회성 훈련이나 적응 훈련이 더 어려운 상담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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