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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Mar 01. 2022

외모에 불만이 많은 내 아이에게

그림책 육아상담 - 달라서 좋아요

아이의 외모를 아이탓으로 생각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부모는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부모의 짐작대로 아이의 바람을 알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갑니다.

오늘은 그릇된 주변 시선이 아이 마음에 상처가 난 사례에 대해 <달라서 좋아요> 그림책심리상담했던 이야기 입니다. (15년 전의 사례이고, 주인공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시켜줘, 시켜달란 말야.”

“얘가 도대체 왜 이래. 네가 몇 살인데 그래? 얼른 저리 못 가!”

“안가. 시켜달란 말이야.”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시켜달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치킨이나 피자를 배달시켜달라는 말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말이까? 이 아이가 조르는 건 도대체 뭘까?     


여섯 살 경미의 상담이 떠오른다. 통통한 얼굴에 웃을 대 입술 옆에 작은 보조개가 들어가던 귀여운 경미, 짧은 단발머리 생머리가 찰랑거려 더욱 생동감 있게 느껴진 아이다. 숨넘어가듯 목을 넘기고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활달했다. 이렇게 귀엽고 웃음 많은 어린 경미를 내가 상담하게 딘 까닭은 무엇일까?     


어린이집 부모교육 특강을 마치고 노트북을 챙기던 중 한 어머니가 내게 다가오셨다. 여섯 살 난 아이가 딸아이가 있는데 요즘 들어 갑자기 성형수술을 시켜달라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 후로 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어린이집에서 경미를 상담하게 되었다.  

   

시누이의 딸 지니는 경미보다 일주일 먼저 태어났다. 지니는 3.2kg으로 건강했으며 얼굴도 뽀얗고 예뻤다. 첫아기라 가족들에게 관심이 최고였다. 하지만 경미는 열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2.0kg의 미숙아로 태어났다. 경미는 태어나자마자 한 달가량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나왔는데, 누굴 닮았는지 얼굴도 까무잡잡했고 울기도 잘 울었다. 젖을 물려도 잘 빨지 못하고 울어만 댔다. 분유를 먹지 않아서 유축기로 간신히 짜낸 모유를 조금 먹였다. 그러고 나면 경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잠이 들었다. 언젠가는 경미 얼굴에 황달기가 심해서 병원에 갔는데, 아이가 잠잘 때 스탠드를 켜 놓으면 황달기가 없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집에 돌아와 하루에 몇 차례씩 스탠드를 쬐니 정말 황달기가 사라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일 이후로 경미 얼굴이 더 까매졌다는 것이었다.    

 

지니와 경미가 나란히 누워 있으면 친척들이 “얼굴 낯빛 하나로 이렇게 아이 얼굴이 달라 보이니.”하며 비교를 했다.

“엄마는 예쁜데 아이는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네.”

“가족 중에 얼굴 까만 사람이 없는데 이 아이는 왜 이럴까.”

“우리 조카들 중에 가장 못난 얼굴.”

그럴 때마다 경미 엄마는 속이 상했다.     


지니는 치마 입는 것을 좋아했고 앉을 때도 다리를 비스듬히 기울여 여성스럽게 앉았다. 그에 반해 경미는 바지 입는 것을 좋아했고 앉을 때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지니는 머리가 길어서 항상 다양하게 머리 스타일을 바꿨다. 원피스에 어울리는 머리 핀과 방울로 치장했고, 레이스 치마를 입는 날엔 양 갈래 머리를 땋아서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경미는 머리 기르는 것을 싫어해 늘 귀밑으로 짧게 잘랐다. 아가들 사이 유행했던 양배추 머리 모양의 파마를 시켜준다고 해도 싫어했고, 예쁜 레깅스를 사줘도 답답하다고 싫어했으며, 남들이 탐내는 스커트를 사줘도 귀찮다며 입기를 거부했다.   

  

경미 엄마도 시누이처럼 딸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차분히 머리를 빗어주며 핀도 골라 꽂아주고 싶었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힐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싶은데 경미는 도대체 엄마 마음을 몰라주었다. ‘누가 봐도 여자! 다소곳한 예쁜 여자!’로 키우고 싶었는데 경미는 영 아니었다. 목소리가 커서 어디에서나 눈에 띄었고, 웃음소리가 괄괄한 탓에 남자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대장 노릇을 했다.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모래놀이나 소꿉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글짐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는 것을 즐거워했다.     


다른 여자아이들은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고 하는데, 경미는 멋지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경미 친구들은 주로 분홍색을 좋아했다. 하지만 경미는 파랑색을 좋아했으며 오히려 분홍색 좋아하는 애들은 공주병에 걸렸다며 놀기를 꺼려했다. 주변 친구들은 치마를 즐겨 입는데 경미는 바지를 즐겨 입었다. 편하고 좋다는 이유였다, 치마는 속바지를 입어야 한다며 귀찮아했고, 특히 남자아이들과 뛰어놀 때 거추장스럽다며 싫어했다. 정글짐이나 철봉에서 놀아야 하는데 치마를 입으면 남자아이들이 놀린다며 질색했다. 경미는 목소리가 커야 친구들이 자신이 많이 바라봐준다며 일부러 더 목소리를 크게 냈다. 경미가 여자처럼 작게 말하면 남자아이들은 되물으면서 짜증을 낸다고도 했다. 목소리가 크면 자신이 대장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단다.     


경미 엄마는 경미를 예쁘고 귀여운 여자아이로 키우고 싶었기에 경미의 남자 같은 행동이나 모습에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경미는 경미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선생님, 저는요. 시우니 딸 지니처럼 우리 경미도 그랬으면 좋겠어.”

“지니처럼요?”

“네, 지니처럼 경미도 여성스럽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저는 머리 땋고 만져주는 걸 무척 좋아하거든요. 친구들이 져보고 여자아이 낳으면 예쁘게 잘 키울 거라고 그랬을 정도예요. 그런데 우리 딸 머리도 제 마음대로 못하고, 남자처럼 다니기만 하고…….”

“어머니, 짧고 굵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아니, 제가 따끔하게 어머니께 말씀 한 가지 드릴게요. 어머니가 기분 나빠하든 말든, 먼저 양해를 구하고 합니다. 어머니는 경미를 어머니의 딸 경미로 대하는 게 아니라 경미 인형으로 대하는 것 같은데 제 의견이 어떻게 들리세요?”

“경미 인형이요? 전 그냥 다른 애들처럼, 여자니까 치마 입고 머리 땋고 여성스럽게 행동하고…. 그렇게 자라길 바라는 건데, 물론 인형처럼 예쁘게 자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애들처럼만 자랐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인형 처럼이 아니라…….”

“어머니 형제들도 모두 다른 성격과 외모를 가지지 않았나요? 자매라고 해서 다 여성스럽고 머리가 길어야 하는 거, 행동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야 물론 그렇죠.”

“경미 어머니, 저는 경미가 많이 힘들었을 걸 생각하니 답답해지네요. 아직 성 정체성도 정립되지 않은 아이입니다. 그저 어린아이일 뿐인데 그만한 나이에 하고 싶은 것만 하도록 충분히 두는 건 어떨까요? 나중엔 ‘바지 입지 말고 치마 입어라.’라고 쫓아다니며 잔소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거든요. 아직 초등학교도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하고, 머리띠 하면 운동화 사준다고 하는 것이 과연 경미를 위한 것인지 어머니께서 조금 더 생각해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실은, 우리 애가 자꾸 성형수술 시켜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자신이 못생겨서 성형수술 시켜달라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잘 들어보니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김은정 선생님 말씀 들으니 정말 경미한테 미안해지는 거 있죠.”

“성형수술 시켜달라는 게 예쁘게 해달라는 게 아니면…‥?”

“저도 처음엔 우리 애가 눈을 성형수술 시켜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쌍꺼플도 있고 눈도 큰 편인데 왜 그럴까 그랬거든요. 알고 보니 남자처럼 보여야 멋질 것 같은데 눈이 커서 싫다는 거예요. 눈 작게 성형수술 시켜달라는 거였어요.”

“경미의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 드셨어요?”

“그러게요. 제가 선생님한테 혼나는 거 당연해요. 또 선생님이 무슨 말씀 하실 건지도 알고요. 그러면 이제 전 어쩌죠?”

“혼내는 게 아니에요. 어머니께서 경미의 마음을 바로 알고 이해해주시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어머니의 생각을 마치 경미의 생각처럼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어머니가 바라는 모습대로 자라주길 원하기보다 경미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치마를 입든 바지를 입든 간에 그냥 본인이 편하게 할 수 있게 그대로 바라보셨으면 해요. 정말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이 아니고 위험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제가 심리유형 강의할 대 주로 쓰는 교재라고 할까요? 상담할 때 그림책을 사용하는데 어머니께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림책 한 번 보시고 우리 경미에게 더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도록 어머니가 만들어가셨으면 해요.   

  

<달라서 좋아요!> 후세 야스코 글, 그림, 김향금 옮김. 대교출판

한 군데도 닮지 않은 네모와 둥그라미가 있었다. 둘은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 동행을 하게 되었다. 비탈길에서 동그라미는 데굴데굴 잘 굴렀지만 세모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자 동그라미는 세모를 등에 업고 함께 굴렀다. 열심히 두르다가 절벽과 마주치자 동그라미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세모는 동그라미 등에서 내려와 동그라미가 더 이상 구르지 못하게 막아주었다. 긴 여행으로 너무나 배가 고팠던 동그라미와 세모. 동그라미는 동그란 빵을 만들었고, 세모는 깡통을 땄다. 그리고 서로 힘을 합쳐 피자를 만들어 맛있게 나눠 먹었다. 그러면서 둘은 이렇게 말했다.

너랑 나랑 달라서 정말 좋아.    


그렇다. 내 애가 남과 다르다고 해서 병도 아니고, 그렇다고 행복해할 일도 아니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를 남과 다르게 키우려는, 즉 지나치게 차별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차별화는 좋다. 하지만 그 차별화를 본인이 찾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강요에 의해서 찾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강요에 의한 차별화는 오히려 독이 된다. 중도 포기할 확률이 높고, 의지가 없기 때문에 흥미가 떨어지면 좋지 않은 결론을 맞이할 수도 있다. 

    

‘어디에서 공부하면 잘 된다더라.’ 식의 ‘~카더라’에서 탈피했으면 좋겠다. 모 학원에서 논술지도를 받으면 점수가 잘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학부모들은 아이를 그 학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선다고 한다. 학원에서는 모범 답안을 가르쳤고 학생들은 모두 똑같은 내용을 적어냈다. 결국 정부에서 그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모 성형외과에서 수술한 뒤 연예인으로 발탁되어 잘 된다더라.’는 말에 몇 개월 전부터 예약하는 일도 많다. 다들 만족한다고 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뒤에는 어떨까? 모두 판박이처럼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연예인의 경우 시청자들이 헷갈리기까지 한다.  

   

남과 달라서 좋을 수도 있고 남과 달라서 힘든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하고 싶은 것이 남과 다르기 때문에 성공할 수도 있고 자신만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다. 엄마라서 관여하고 부모라서 방해하지 않길 바란다.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인정받을 수도 있음을 꼭 명심했으면 한다. 

    


이 글은

제가 2010년에 쓴 <엄마랑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 책이 2020년 계약만료로 절판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목차별로 원고 수정 및 재작성하여 쓴 글입니다.

2월부터 1주일에 책의 한 꼭지씩을 올리고 있어요. 아이를 육아하고 계시는 양육자 분들외에 개인 및 집단상담을 하시는 분들의 현장 상담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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