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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Jan 03. 2019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

사랑할 시간을 따로 떼어두어라.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머리 움켜쥐며 논문만 보다가 눈가가 촉촉해지는 시집을 읽으니 감성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아주 맑아지는 마음이 좋다. 


시집 머리말이 참 마음에 든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대, 이젠 잠시 멈춰 시를 만나야 할 시간> 고두현 시인님의 시집은 나에게 마음저격! 


재작년 유영만교수님의 북콘서트 때 직접 뵈며 인사를 드렸던

고두현 시인님의 신간 시집 제목은 “이제 당신도 사랑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귓불이 빨개지듯 속으로 화답했다.

 ‘이제 제 나이 오십이니, 그럴 때가 되었습니다.’로 말이다.

이런 표현 근 20년 만에 써보니 정말 새삼스럽고 등 뒤가 간질간질 하다.    


시 읽기의 네 가지 유익함을

‘몸과 마음을 춤추게 하는 리듬(운율)의 즐거움(樂)’,

‘마음속에 그려지는 시각적 회화의 이미지(像), 

’시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設),

그리고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감성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공감각적 상상력(想)’이라고 하면서

시에 대한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듣고 보니 즐거움과 이미지, 이야기와 생각 들이 피어나는 것이 <詩>임을...    

특히 이 시집은 시의 감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의 배경과 시인의 목숨을 거는 사랑의 뒷 이야기가 가슴에 꽂히든 설명되어 더더 시에 심취하게 만든다. 새로운 시집에 대한 감성폭탄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자~ 많은 시집에서 내 마음의 심금을 울린 시에 대한 느낌을 간단히 적어보고싶다.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시(58p)에서

선택의 연속을 ‘다음 날을 위해 남겨 두었던 한 갈래의 길’로 표현하였다. 

이 시를, 로버트 프로스트는 실의에 빠져 있던 20대 중반에 썼단다. 대단히 놀라웠다.

‘선택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인생의 길 끝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음을

어찌 이리도 짧은 글로 표현을 했는지 말이다. 



고두현 [발왕산에 가보셨나요] 시(128p)를 읽으면서

도서관에서 갑자기 크게 웃어버렸다.

 ‘귀엽기도 하지.’

 발왕산에 가서 곤돌라를 타고 전망대 2층 식당을 가봐야겠다. 현실감 있게 대놓고


웃고싶다.




수없이 듣고 외웠던 시 중에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많았는데,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1775년에 산문 124편, 편지가 1049통이나 된단다.

엄청난 사실로 놀라움.

더구나 더 놀라운 건 생전에 7편만 발표하였고 나머지는 서랍에서 번호로만 붙여졌다니...

번호 1540번 시가 “슬픔처럼 살며시 여름이 사라졌네”란다.

가장 평범한 것과 가장 초월적인 것을 대비시키며 허무와 죽음, 상실과 이별을 노래한 이유가 이 시에 있다.

특히,

사람의 의미를 4행짜리 짧은 시(183p)로 압축한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그녀의..

  한 편이 나를 더 울린다.

사랑은 자기 그릇 밖에 담지

못하다니....



함민복의  [부부] 시(234p)는

총각 시절 후배의 부탁으로 결혼식 주례를 서며 썼던 주례사를 가다듬어 세상으로 나온 시란다. 

이 신...

정말 가슴에 메일 정도로 확 와 닿는다. 

‘부부란 긴 상을 함께 들 때는 보폭까지 맞춰야 함’을. 



내가 만약,

다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면.... 

긴 상을 함께 들고 보폭을 맞출 수 있겠지...

20년 가까이 혼자 아이랑 살고 있는 나도 긴 상을 들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겠지.


정채봉 [첫 마음] 시(240-242p)을 읽으면,

매 해 1월 1일을 떠올려야겠다.

올 해 2019년이 시작된지도 이틀이나 지났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100세까지 사는 세상, 이제 딱 절반이 50의 시작이다.

작년의 좋고 나쁨은 다 잊고, 이제 다시 첫 마음으로 시작이다.




첫 마음

 정채봉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막은 첫 마음오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덜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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