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시간을 따로 떼어두어라.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머리 움켜쥐며 논문만 보다가 눈가가 촉촉해지는 시집을 읽으니 감성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아주 맑아지는 마음이 좋다.
시집 머리말이 참 마음에 든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대, 이젠 잠시 멈춰 시를 만나야 할 시간> 고두현 시인님의 시집은 나에게 마음저격!
재작년 유영만교수님의 북콘서트 때 직접 뵈며 인사를 드렸던
고두현 시인님의 신간 시집 제목은 “이제 당신도 사랑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귓불이 빨개지듯 속으로 화답했다.
‘이제 제 나이 오십이니, 그럴 때가 되었습니다.’로 말이다.
이런 표현 근 20년 만에 써보니 정말 새삼스럽고 등 뒤가 간질간질 하다.
시 읽기의 네 가지 유익함을
‘몸과 마음을 춤추게 하는 리듬(운율)의 즐거움(樂)’,
‘마음속에 그려지는 시각적 회화의 이미지(像),
’시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設),
그리고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감성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공감각적 상상력(想)’이라고 하면서
시에 대한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듣고 보니 즐거움과 이미지, 이야기와 생각 들이 피어나는 것이 <詩>임을...
특히 이 시집은 시의 감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의 배경과 시인의 목숨을 거는 사랑의 뒷 이야기가 가슴에 꽂히든 설명되어 더더 시에 심취하게 만든다. 새로운 시집에 대한 감성폭탄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자~ 많은 시집에서 내 마음의 심금을 울린 시에 대한 느낌을 간단히 적어보고싶다.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시(58p)에서
선택의 연속을 ‘다음 날을 위해 남겨 두었던 한 갈래의 길’로 표현하였다.
이 시를, 로버트 프로스트는 실의에 빠져 있던 20대 중반에 썼단다. 대단히 놀라웠다.
‘선택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인생의 길 끝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음을
어찌 이리도 짧은 글로 표현을 했는지 말이다.
고두현 [발왕산에 가보셨나요] 시(128p)를 읽으면서
도서관에서 갑자기 크게 웃어버렸다.
‘귀엽기도 하지.’
발왕산에 가서 곤돌라를 타고 전망대 2층 식당을 가봐야겠다. 현실감 있게 대놓고
웃고싶다.
수없이 듣고 외웠던 시 중에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많았는데,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1775년에 산문 124편, 편지가 1049통이나 된단다.
엄청난 사실로 놀라움.
더구나 더 놀라운 건 생전에 7편만 발표하였고 나머지는 서랍에서 번호로만 붙여졌다니...
번호 1540번 시가 “슬픔처럼 살며시 여름이 사라졌네”란다.
가장 평범한 것과 가장 초월적인 것을 대비시키며 허무와 죽음, 상실과 이별을 노래한 이유가 이 시에 있다.
특히,
사람의 의미를 4행짜리 짧은 시(183p)로 압축한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그녀의..
한 편이 나를 더 울린다.
사랑은 자기 그릇 밖에 담지
못하다니....
함민복의 [부부] 시(234p)는
총각 시절 후배의 부탁으로 결혼식 주례를 서며 썼던 주례사를 가다듬어 세상으로 나온 시란다.
이 신...
정말 가슴에 메일 정도로 확 와 닿는다.
‘부부란 긴 상을 함께 들 때는 보폭까지 맞춰야 함’을.
내가 만약,
다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면....
긴 상을 함께 들고 보폭을 맞출 수 있겠지...
20년 가까이 혼자 아이랑 살고 있는 나도 긴 상을 들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겠지.
정채봉 [첫 마음] 시(240-242p)을 읽으면,
매 해 1월 1일을 떠올려야겠다.
올 해 2019년이 시작된지도 이틀이나 지났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100세까지 사는 세상, 이제 딱 절반이 50의 시작이다.
작년의 좋고 나쁨은 다 잊고, 이제 다시 첫 마음으로 시작이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막은 첫 마음오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덜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