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이다, MRI다, 힘든 검사로 사람을 초주검을 만들어놓고 나서 겨우 한다는 소리가 살날이 앞으로 석 달밖에 안 남았다고 했다. 이 따위 소리나 들으려고 돈이며 시간이며 왕창 들였다는 사실이 수진을 언짢게 했다.
"대체 무슨 말씀하시는 건데요." 짜증과 분노에 뒤엉킨 목소리로 수진이 말했다.
"그.. 말씀드린 대로 앞으로 많아야 세 달입니다. 그동안 증상이 꽤 있으셨을 텐데. 아무것도 못 느끼셨나요 환자분?" 의사는 콧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안경을 위로 쓸어 올리며 차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문자로 휘갈긴 차트에서 파악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정 가운데의 평균치를 한참이나 벗어난 빨간 막대들을 보아 상태가 좋지 않은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반대로 유일하게 파란 막대를 띄고 있는 것은 체중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정상치를 한참이나 벗어나 있어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체중도 지금 평균치보다 15kg가량 낮은 편입니다. 염증 수치는 여기, 여기 보이시는 것처럼 굉장히 높게 나왔고 혈압도 좋지 않은 편입니다." 의사는 검지 손가락으로 좋지 못한 결과치에 연신 동그라미를 치며 말했다. "피검사 상 소견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말을 계속 듣고 있자니 토가 쏠릴 것 같았다. 여태껏 살면서 받아온 스트레스가 폭풍처럼 몰려들어와 수진을 휩쓸어 가는 듯한 충격이었다. 수진은 무탈히 지내던 자신의 일상을 설명하며 의사에게 차트에 적힌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해 달라 말했다.
"음.. 임수진 환자분, 믿기 힘드시다는 거 잘 압니다. 죄송하지만 진행이 꽤 많이 된 상태예요. 환자분 지금 저체중에다가 기타 수치가 좋지 않아 항암을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예후가 좋지 못해요. 손 쓸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일단 마음의 준비는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환자 상태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해낸 의사의 덤덤함을 보며 수진은 소름이 끼쳤다.
"...4기요? 선생님, 저 그동안 아무 문제도 없이 잘 살았는데요. 제가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담배를 피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 저요, 진짜 아무 문제없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이래요 제가. 어떻게..." 수진은 당장이라도 하얀 가운의 깃을 움켜 잡아 흔들며 돌려내라 소리치고 싶었다. 수진의 시선을 애매하게 피했던 의사는 고개를 들어 무덤덤한 눈빛을 보내왔다. 그 고요하고 무거운 눈빛에 수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단 임수진 환자분, 항암 치료 진행 여부 결정 해주셔야 합니다. 말씀드렸듯이 진행이 많이 된 상황이라 완치.. 까지는 어려워요. 다만 환자분의 의사가 있으시면 치료 진행은 가능합니다. 밖으로 나가셔서 여기 수간호사님 따라가시면 절차 안내해 주실 거예요. 한 달 후에 뵙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고픈 마음이 들 새도 없이 수진은 수간호사에 떠밀려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 벤치에 줄줄이 앉아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는 수진을 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수진의 암담한 소식이 자신에게만큼은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수진은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동공에 힘이 풀렸다. 금방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수간호사가 수진의 옷소매를 붙잡고 있어 최소한의 정신은 붙잡을 수 있었다.
첫 문장 출처: 대범한 밥상 / 박완서
"당신이 오늘 읽은 첫 문장은 무엇인가요? 살포시 두고 가시면, 이어가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