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입니다."
"네?"
"파킨슨병입니다. 증상이 꽤나 있으셨을텐데 모르셨어요?"
"네.. 선생님 저 아직 30대 밖에 안되었는데 젊을때도 이럴 수 있나요?"
"요즘은 나이로 질병을 구분짓지는 않아요. 안타깝습니다만 현재 증상 알고계셔야 하고, 처방약 복용 꼭 챙기셔야 합니다."
바닥에 질질 끌리다 못해 뚫고 나갈만치로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옮겼다. 손을 뻗어 진료실 쇠 문고리를 잡았다. 차가웠다. 어쩌면 나도 이렇게 차갑게 딱딱하게 굳어버리는걸까. 생각은 많았지만 밖에서 팔짱끼고 흘깃거리는 한 아주머니의 눈초리가 두려워 서둘러 나왔다.
세상이 어질어질했다. 내가 파긴슨병이라고? 말도 안돼. 나 아직 팔팔한 삼십대고, 결혼도 못했고, 제대로 된 남자친구 한 명 못만나봤는데. 에이 설마, 다른 병원에 진료 예약을 걸어볼까? 아니 근데 진짠가? 아닐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
절망적인 소식을 안게된 나는 믿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병원 앞 벤치에 털썩 앉았다. 찬기 서린 벤치였지만 시린 마음에는 비할바가 못 되었다. 파킨슨병. 들어나 본적은 있지, 걸릴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아니 그 누가 상상하고 살아가겠어. 계속해서 '말도안돼'를 되뇌이며 최근 일상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따가운 여름을 건너 바람 살랑이는 가을이 찾아온 어느 날, 출근하려 새벽 일찌감치 화장실로 향했다. 떡진 머리에 산발을 하고 눈 하나 제대로 뜨지 못한채 화장실 불을 켰다.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샤워를 하러 윗옷 단추를 풀려는 그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서 누군가 눌러당기는것 마냥 요지부동이었다.
첫 문장 출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김혜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