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니 살 것 같다

단감처럼 때를 놓치지 않아 다행이다

by 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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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단감을 자주 먹는다. 단단해서 씹는 맛도 있고 무엇보다 적당히 달아서 좋다.


가을이나 겨울에는 흔하고 익숙한 사과와 귤을 좋아했다. 사과는 아삭한 식감, 한 입 베어 물면 쫙 입안 가득 퍼지는 수분의 시원함에 좋았고, 귤은 칼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그 자리에서 몇 개씩 까먹곤 했다.

살면서 단감을 많이 먹지 않았다. 예전에 단감을 먹다 떫은맛이 강했던 기억이 있어 안 먹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방으로 이사하고 이태 전부터 단감을 사 먹는데 의외로 맛있다. 늦은 가을부터 겨울에 먹을 수 있는 단감. 집안 싱크대 위에 며칠 두면 금세 무른다. 물렁하면 당도는 짙어지지만 단감 특유의 단단한 식감이 사라진다. 때를 놓칠까 부지런히 먹고 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때가 있다는 글을 쓰려고 했다. 특히 교육에 대하여. 단감을 먹다 떠오른 생각을 쓰려고 하고 그러다 왜 안 먹었는지 과거를 더듬다 어느 기억이 느닷없이 파고든다. 그럴 때가 있다. 이 생각하다 딴생각으로 무차별적으로 넘어가고 감정도 동시에 혼란스럽게 섞이고.

인간의 이성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포함하며 아무 때나 감성이라는 카드를 들이민다. 이성과 감성. 너희는 같은 아이구나.


주방 전기밥솥에 밥이 다 되었다는 알람이 울린다. "얘, 밥 저어놔라." 밥주걱을 들고 밥솥의 뚜껑을 연다. 훅 하고 뜨거운 열기에 놀란다. 갓 지어진 밥은 아주 뜨겁고 하얀 구름을 마구 만든다. 안경에 김이 서리니 연기를 피하며 살살 휘저었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아주 매섭게 지켜보나 보다. 이리 내. 그렇게 하면 어떡하니. 바닥까지 한 번 크게 싹싹 뒤집어야지. "얘는 그것도 못하니! 감이나 깎아라."

결국 단감을 깎다 손을 베고 말았다. 과도는 우리 집과 달리 너무 날카로웠다. 서툴다는 핀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주방도구. 내 집이 아닌 장소에서 일어나는 그런 일상의 일들이 나를 아주 조심하고 소심하게, 주눅들게 만들었다.


결혼을 하고 나는 알았다. 이곳에서 나의 의견과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공감과 이해는 물론 변화와 개선이 기대되지 않았다. 많은 순간 말을 삼켰고, 삼킨 말은 내 몸 안에 켜켜이 쌓여 결국 숨을 막히게 했다. 가슴에 무언가 얹혀 답답했고 아득한 허무를 가져왔다.



글을 쓰면서 치유(治癒)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막혀있던 말들이 글자가 되어 바깥세상으로 하나씩 나온다.

아직 내 안의 많은 감정이 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은 눈물이 되고 슬픔이 되고, 분노가 되었다가 원망이 되고, 나를 해명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그래도 글을 쓰니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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