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 존중하기

바르고 착하게 살라고 배운 것 같은데요?

by 삼선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키가 커서 교실 뒤쪽에 앉았다. 같은 반에 덩치도 크고 얼굴에 상처가 많은 좀 수상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아서 어떤 아이인 줄 몰랐다. 4월 어느 날 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짝을 바꿔도 되겠니? 네가 착하니까."


나는 그 의미를 잘 몰랐다. 짝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있던 일이고, 학년이나 학기가 달라지면 매번 짝이 바뀌니까.

"네." 하고 대답하니 선생님은 그 수상한 남자아이를 내 옆에 앉혔다.

책상 하나에 그 아이와 나란히 앉았다. 다음 날 수업 중에 갑자기 책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이상하다. 뭐지? 순간 옆을 보니 남자아이가 몸을 마구 떨기 시작했다.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선생님이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K의 팔을 꽉 잡아." 너무 무서웠다. 막 흔들리며 눈 초점이 없어져 가는 아이를 나보고 잡으라니.


남자아이의 팔을 잡았지만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고, 의자가 엎어지며 쓰러졌다. 다행히 머리를 세게 쿵하지는 않았다. 그 아이의 입에서 보글보글 하얀 거품이 올라왔다. 선생님은 교실 뒤쪽으로 뛰어오며 말했다.

"꽉 잡아야지. K가 쓰러졌잖아. 크게 다쳤으면 어쩔 뻔했니."



이건 하나의 예시이다. 이런 예는 살면서 형태만 변형되었을 뿐 언제나 현실에 있었고 언제나 같은 모양으로 결론이 났다.


하나를 양보해 달라고 해서 선뜻 양보해 주면 다음에 두 개를 양보해 달라고 하고, 한 번만 부탁한다고 해서 성의껏 허락해 주면 다음에 더 큰 부탁을 한다. 양보를 당연시하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비난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교과서에서 법과 질서, 도덕, 예의를 가르치며 바르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세상에 나와 선의의 마음으로 호의를 베풀고 타인을 배려한다. 그런데 현실은 순진하고 세상 물정 모른다며 비난하거나 오해를 받고, 선한 마음을 공격받는다.


타인에 대한 존중은 참 어려운가 보다. 나는 아직도 무엇이 도덕이고 정의인지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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