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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환 Apr 06. 2018

1. 벨기에, 브뤼셀

언젠가... 그런 현실을 꿈꾼 적이 있었다. 내 조국이 불타던 그 날까지 내가 버리지 않았던 그 꿈. 내가 바랬던 꿈은 역사 속에서 불타 없어지던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도 아니었고, 고기가 남아돌아 하루는 어느 고기를 먹어야 할지 고민을 해야 했던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일상에 대한 허튼 동경도 아니었다. 힘든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신에 대한 경배를 마친 뒤에 주어진 안식을 취하며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의 삶을 위해 잠을 청하고 나의 노동이 마침내 결실이 되어 나에게 돌아오는 것. 그리고 그런 날들이 내 삶이 지속되는 동안 조용히 반복되어 마침내 내가 신의 뜻에 의해 주어진 삶을 살고 다시 돌아가는 것... 내가 바랬던 것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이 태어나 준비된 역할을 위해 삶을 살아가고 거두어지는 이 거대한 신의 안배 속에서 내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땅을 일구고 기름지게 하여 그 보상으로 얻어지는 약간의 보상으로 삶을 영위하고 그릇된 욕심과 더러운 삶을 살지 않으며 감사할 줄 알고 공경하며 경배하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으면 했던 그런 꿈... 신이여, 정녕 이 길이 당신께서 나에게 준비하신 길입니까...?

[ 파레스, 음성 기록. 2026년 10월 26일 ]



[ 2023.03, 벨기에 브뤼셀 ]



"2023년 3월 14일, 이 곳 브뤼셀에선 창설 90년을 지나온 유럽 연합의 가치에 도전하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이사국 대표 및 사절단들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2년 8개월의 치열한 논의와 300여 차례의 회의, 32번의 협정문으로 모양을 다듬어 온 동유럽권의 EU 영향권 확대에 최종 결정을 남겨두고 마지막으로 협의를 위해 긴급회의가 소집되었기 때문입니다. 애거시 위원회의 4년 간의 조사를 바탕으로 처음 제창되었던 이 안건의 주요 골자는 벨라루스 3개국을 위시한 동유럽 국가의 EU 가입국에 대한 입출국 완화와 Euro화 전환 등의 방안을 통해 비 유럽 연합 국가들과의 교류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정안의 내용이 2011년 3월에 최초로 알려지면서 유럽의 각 국은 거대한 혼란 속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현재 회의가 예정된 이곳 브뤼셀엔 협정 조약을 반대하는 비 유럽 연합 국가 반대론자로 이루어진 단체들과 그 세력원들이 집회를 예정하고 속속 모여들고 있으며 브뤼셀 광장과 2킬로미터를 잇는 트라팔가 개선 도로에 집결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집회에 참여하는 예상 인원이 4만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의회 본부를 중심으로 반경 1킬로미터 주변에 경찰력이 집중 배치되고 있습니다. 경찰 대변인은 오늘 집회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가급적 의회 주변으로의 접근을 피해 달라는 공식 발표가 조금 전 있었습니다. 최종 결정을 위한 회의의 시작은 오늘 저녁 5시에 예정되어 있으나 협정문의 발표 시간은 아직 공표되지 않고 있어 회의는 난항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브뤼셀에서 BBC 특파원 해리 윈스턴이었습니다."


"망할 뉴스..."


너희에겐 종이 속 글씨로밖에 보이지 않겠지... 입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그 말은 결국 머릿속과 입 안에서만 머물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의 눈가에 떠돌던 무의미한 화면의 잔상과는 달리 머릿속은 복잡했다. 6시간 뒤에 개회될 회의... 정치꾼들은 모여 과거 콘스탄티노플 회의처럼, 기독교의 공교화를 놓고 무수한 말들을 쏟아낼 것이다. 수십 번을 반복했고 수백 번을 고쳐 쓰고 수천번의 언론 플레이가 있었던 문제. 하지만 그 자신은 선택권도, 거부권도 없는 안건. 비유럽권 EU 확대... 하나의 유럽은 역사 속에서 많이 등장하곤 했다. 그리고 유럽인 스스로도 하나의 유럽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적었다. 하지만 문화와 정서만이 맞다고 옛날처럼 섣불리 하나의 유럽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기준보다도 지금 문제가 되는 건 바로 경제였다. 협정문과 회의가 그토록 많았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Euro 화로 전환되면서 기존의 국가가 가지고 있던 부채 또한 전환되어야 했다. 하지만 애초에 동유럽권 국가들이 EU 가입을 피했던 이유도 이 경제권의 통합에서 야기될 자국 경제권의 축소 때문이었다. 놀라운 사실이겠지만 동유럽권 국가의 사람들은 자국이 적정 수준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그동안 권력을 독점했던 지배층이 남긴 추악한 일면이었다.


자본은 곧 권력이었고 이들은 그런 생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데 매우 탁월했다. 그들의 손에 권력이 있을 때엔 그들만의 것이었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그들은 이제 그들 자신이 숨겨놓은 진실을 펼쳐 놔야만 했다. 얼마나 많은 예산이 가난한 자를 돕는데 쓰이지 못했으며 얼마나 많은 땅들이 농부의 눈물을 머금은 체 삼켜졌는지,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기회를 박탈당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함에 고통을 당해야 했는지 그 모든 추악한 과거의 유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쏟아져 나온 진실을 감당하지 못했다. 성난 분노는 단죄할 대상을 찾았고 곧 수많은 나라에서 지도자라 추앙되던 이들이 꽁꽁 숨겨두었던 자신의 죄에 의해 범죄자로 전락했다. 그 혼란의 형국이 전 유럽을 휩쓸고 있는 형국인 셈이었다.


"의원들은 어떤가?"

"표면상으로는 여전히 반반입니다. 표결 예측 또한 분분하고요."


그네들이 몰고 온 사태였다. 자신들의 땅 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암투에 대해 닳고 닳도록 이야기했지만 그들에겐 폭탄이 몇 번 터지고 범죄가 좀 더 늘어난 수준이라고 여길뿐이었다. 마약 거래가 더 늘어나고 남미에서나 벌어질 법한 기업형 유괴 집단의 창궐, 빈 라덴이 유산처럼 남긴 테러 조직의 붉은 부메랑이 돌고 돌아 코앞으로 날아오고 있었으나 여전히 말 뿐이었다. 현재 우리는 분명히 위기에 처해있고 지금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길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젊은이들은 자유를 노래했다. 이상을 기반으로 한 그들, 젊은이들의 미래상은 아름다웠다. 문제는 시간을 들여 대화하고 갈등은 줄 수 있는 것과 받고 싶은 것들을 꺼내놓고 거래하며 해결한다. 분명 옳은 방법이었다. 마땅히 그래야 했다. 지금도 그럴 수 있으며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광장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소리 높여 울려 퍼지는 자유의 찬가는 그래서 높은 호응과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페체니크, 이제 와서 참 우습겠지만 난 저 거리에 있고 싶다네."


페체니크, 나토 중부 유럽군 소속으로 유럽 연합 주재 연락 장교인 그는 대사를 앞두고 감상에 빠진 노인의 이력을 생각했다. 나토에서 미국 색이 빠지기 시작한 20세기 후반부터 꾸준히 M1 장교로써 활약하다 9.11 테러를 기점으로 대테러 대응부서에서 활약하며 약 4년여의 기간을 아프간에서 직접 포병 부대를 이끌기도 했던 이 노인은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유럽 중부군 사령관으로 역할을 바꿨다. 탁월한 예측력과 잘 조화된 분석 방식으로 대테러 전쟁 활동 기간 동안 착실한 성과를 받아 이 자리에 왔고 사령관이 된 지금도 그 좋은 장점은 바래지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분은 군인 그 자체였다. 군인으로서의 판단력, 그리고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결국 정치가는 아닌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저 밖의 거리에서 소리 높여 노래하는 젊은이들을 동경하고 이해할 수 있겠지...


"정보 부서에 있는 제 친구들은 저 속에도 폭탄이 있을 거라는 농담을 할 겁니다."

"허허, 내 다른 친구들은 저 속에도 정치꾼이 있을 거라고 하던데?"


정치와 군사는 별개일 수 없다. 사령관은 그 진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잘 따르지는 않았다. 그것이 이 분의 장점이기도 했지만 그 정치꾼들이 지금 기가 막힌 결정을 하려는 이 시점에서 이제 그들과는 타협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외면하려는 점은 문제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건물 내에 있으려고 하지 않고 작전 중인 유닛들과 통신을 하러 블루 룸에 가려했으나 일찌감치 회의에 참여하라는 의원회의 권고를 받고 남아 있는 것이었다. 사령관은 정치꾼을 싫어했다. 이제 남은 것은 부관이기도 한 그가 사령관의 이런 상향을 대놓고 정치꾼에게 표출하지 않도록 잘 보좌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굳이 여기 있을 필요는 없지만 아프간 친구들은 간절한 표정으로 물을 더 달라는 요청이라도 할 것 같은데, 어떤가?"

"유감이지만 맑음입니다. 8개 파견팀은 조용하며 KRF, ISAF 도 평상시와 같습니다."

"VIP 리스트도?"

"없습니다. 지난 24시간 간의 부상 보고는 없었습니다."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ISAF 가 일부 핵심 지역에서 아프간 군대를 지원하는 형태로 현지 안정화 작전을 사실상 이양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길 이미 2년 가까이 지났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었다. 오히려 악화되어 예맨이 붕괴 국가 상태에 빠지고 언론에서 떠드는 것처럼 동유럽발 'Hate crime' 유형의 범죄율, 마약 거래량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전쟁의 한 복판이었던 아프간에선 3일에 한번 꼴로 폭탄 테러가 터졌는데 예전엔 자살 폭탄 테러가 많았던 반면 지금은 IED와 소형 화기에 의해 공격이 행해졌다. 당연히 치안과 안정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ISAF의 통제 및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중부 사령부로썬 당연히 아프간의 상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대응해야 했다. 사령관이 물음 속에 담은 아프간 친구들, 8개의 파견팀은 그런 아프간의 만성적인 치안 상태와 국경 순찰을 위한 신속 대응 군이었다.


"조용했던 하루였군. 조용했어."


대응 군으로 편성된 TF-North는 중부 사령부로 3시간 단위의 평상 보고를 했다. 현지 주둔 중인 ISAF 부대들이 주고받는 정보와 CIA 가 72시간 주기로 보내주는 장황한 정보 보고서를 토대로 작전 활동 및 군사 작전들이 계획되는데 지난 24시간 동안은 주요 거점에 배치된 현지 주둔군으로부터 조용하다는 보고만이 있었다. 드문 상황이었지만 아프간 전쟁이 시작된 이래 반복된 전쟁 패턴이어서 그리 긴장하지도, 완화된 상태도 아닌 경계, 그 상태를 유지하라는 지시만 내린 상태였다. 적들이 숨으면 찾을 수가 없다, 이게 이번 전쟁의 고약한 점이었다. 미군도, ISAF 도 이 모호한 회색 상태에서 임전 태세 및 평화 유지 활동을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전투와 주둔 활동에서 손을 뗀 미국 쪽이 방대한 정보 공동체들의 자원을 할애하며 ISAF 쪽으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긴 하지만 어느 시골의 우유 짜던 청년이 다음 날 총을 들겠다는 마음의 결정까지 알려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그 우유 짜던 청년들이 누굴 만나고 집에서 언제 잠을 자는지까지 파악해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시끄럽다 조용하면 목이 마르지. 남쪽에선 뭐 없나?"

"흑해 주둔 사령부에서 올라온 소식은 전 전선 이상 무입니다. 남쪽 파견팀들도 아직 보고는 없습니다."


TF-South, 나토의 특수 부대 팀이 아닌 JSOC 휘하에 있는 부대로 이쪽에 대해선 뭐라고 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ISAF 소속 영국 1 공수단 2개 중대가 구성되어 있지만 주둔 방어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서 직접적인 정찰 활동에 대한 정보는 적은 편이었다. 페체니크 같은 연락 장교를 파견하여 정보를 캐어 보려고 했었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했었다. 작전권이 없다는 핑계만 미 국방부 통로로 몇 번 신경질적으로 들어오곤 했다. 현재까지는 TF-North의 8개 팀의 활동이 중부 사령부의 눈과 귀가 되어 주고 있는 셈이다.


"좋아. 표면상 평화 상태로군. 알았어. 알았다고."

"뭘 걱정하고 계신지는 알겠지만..."

"됐네. 늙은이가 불안해서 이것저것 참견해 본거라네. 주변에서 그렇다니 기다려야지."

"우려되십니까?"


이미 4년간을 알고 지내고 모셔오던 분이었다. 페체니크도 현 상황에 대한 사령관의 심정과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었다. 사령관은 눈을 가늘게 뜨고 턱을 짚은채 한동안 있다가 조용히 한마디를 읊조렸다.


"이 안건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결정을 하게 만드니까 그게 문제인 거지."

"게다가 하필 지금 진행되려고 하고 있고요."


사령관이 스크린을 톡톡 두드려 보고서 자료를 뒤적거리는 게 보였다. 몇 개의 보고서 표지가 화면에 나타나고 휘휘 목록을 돌리며 자료를 찾더니 이내 하나를 선택해 출력했다. TF-North 중의 한 팀인 '바이킹'이 3개월 전에 전송한 현지 작전 보고서였다.


"바라던, 바라지 않던 그 녀석이 원하던 대로 되어 가지 않는가..."


파레스... 페치니 크는 사령관이 누굴 떠올리고 있을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중부 사령관이 되어 불안정한 동유럽 상황과 중동 문제에 간섭하는 내내 사령관은 이 친구의 이름을 봐야 했다. 전 세계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그 친구는 특이했다. 파레스는 70년대의 암살자를 다시 보는 기분이었다. 세포 조직으로 분화되어 조직의 우두머리나 구성원이 누군지 모르게 하는 현재의 테러 조직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스스로를 드러냈고 곳곳에서 사태에 개입하거나 만들어 냈다. 그는 무기 공급책이며, 밀수업자이고, 마약 제조책이기도 했고 동유럽 대형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다. 범죄 왕이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갖가지 꼬리표를 달고 다니긴 했는데 그 자신은 세련되었다. Caltech에서 융합화학을 공부하여 전공으로 마친 엘리트 출신이 어쩌다 이런 범죄 왕이 되었을까... 이슬람 원리주의자에 아프간에서는 직접 그가 지휘하는 조직과 카불에서 TF-North 바이킹 팀이 거리 총격전을 벌인 적도 있었지만 결코 숨지 않았다. 언제나 그 자신이 계획한 범죄를 밝히고 혹은 배후라 지목되는 범죄에 사실 관계를 직접 밝히는 행동을 일관되게 취했다. 너무 공개되었기에 그의 영향력 또한 숨김없이 대중들에게 보였다. 그 공개성이 그를 살리고 있는 셈이었다.


"파레스는 움직이지 않는가?"


사령관의 음색에서 걱정이 묻어 나왔다. 위험한 친구가 이런 큰 잔치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을 직감처럼 느꼈기에 고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현황 보고서는 그 위험을 짚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이 못 미더워 바이킹 팀을 그 녀석의 천혜 요새인 아프간에 밀어 넣어 두었지만 바이킹 팀이 악전고투하며 활약을 했어도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상황이다. 아프간 전쟁 중이라면 암살 명령이라도 내릴 테지만 현재는 안정화 작전 중이었다.


"파레스는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에 없을 걸세. 없으니 우리가 못 찾는 거지."


파레스는 대단한 전력을 가진 친구였지만 의외로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활약을 펼친 곳이 중동과 터키 지방뿐이었고 언론이 추적할만한 살인, 인신매매 등과 같은 범죄엔 아직까지 손을 뻗지 않았기 때문이다. 갖은 문제를 야기했지만 특이하게도 그런 문제에 대해선 완고하리만치 깨끗했다. 그 점이 이 파레스라는 친구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어찌 되었든 향후 6시간 동안 사령관은 가시방석에 앉은 사람이 되어 끊임없이 이 친구를 추적하리란 걸 페체니크는 직감 했다.


"... 파레스."


노인 특유의 회한에 잠긴 사령관을 보며 페체니크는 향후 전개될 회의의 준비 상황에 대한 보고를 다시 살펴보기로 하였다. 오늘의 전장은 바로 여기였다. 현재 의회 건물을 중심으로 3단계에 걸쳐 치안 안정 공간이 설정되어 있었다. 각각의 지역을 외곽 지역부터 그린, 옐로, 레드 지역으로 설정되었으며 이 의회엔 나토군 소속의 TF-Central 'Mako' 팀이 드론과 중 저격총을 이용해 Hunter-Killer 방어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이 의회 건물에서 2킬로미터 남쪽의 광장엔 이번 협정에 반대하는 군중이 시시각각 집결 중이었다. 그린 지역으로 선포된 그곳은 지금 각 기관이 감시를 위해 띄워둔 드론들이 교통체증을 유발할 듯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물론 시위 집압 및 사태 대응을 위한 경찰 병력도 투입되어 있어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게 이때엔 단점이었다. 페체니크는 드론에서 보내는 안면 감식 자료를 훑어보았다. 드론에서 촬영한 감시 영상은 실시간으로 정보군에서 관리하는 MilNet 군사 정보로 변환되어 저장되며 데이터 감식 및 분류를 위한 자동화 프로그램에 의해 데이터 태그를 부여받게 된다. 태그에 의해 우선순위가 분류된 이 영상 정보는 병렬로 연결된 처리 컴퓨터 집단에 의해 조사된다. 얼굴에서 나타나는 각각의 특성을 디지털화하여 그와 유사한 인원에 대한 집단 비교에 들어가고 나토군이 구축한 블랙리스트를 우선적으로 비교하고 그 외에 공유된 각국 정보기관과 경찰의 디지털 자료와도 비교를 취해 영상 정보 내의 사람이 위험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별해 준다.


'있지는 않겠지.'


위험 분류로 간간히 판별되는 사람들의 인원 정보를 휙휙 넘기며 페체니크는 괜한 의심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 그가 여기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의 조직에 관련된 인원수만 하더라도 약 500여 명에 달했다. 그들 중엔 전투원만이 아니라 운송 전문가, 폭발물 전문가 등이 다수였고 파레스 그 자신도 폭탄 제조자였다. 그는 인력에 의해 작동하는 자살 폭탄 따위는 계획하지 않았다. 신중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방법을 통해 폭탄으로 '공격'해 왔다. 그는 나타나지 않겠지만 4만 명이 넘게 집결할 광장은 좋은 공격 목표였다. 그래서 이 난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3단계로 나뉜 방어 지역, 무인 감시기에 의한 끊임없는 정찰, TF-Central 'Mako'... 국경 봉쇄안이 저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4만여 명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그 반대자의 안위까지 지켜줄 수 있는 가치가 있기를. 이것이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방침이다...


'너의 차례다, 파레스...'


페체니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단말기의 화면을 조용히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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