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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환 May 03. 2018

3. 아프가니스탄, 알파 포인트 (1)


[ 헤라트 지구 남쪽 17km 지점, 헤라트 국제공항 ]



아프간 국경은 동서남북의 지리적 상황과 맞물려 매우 유동적인 경향을 보였다. 전쟁의 주 무대였던 남부, 동부 지역은 험준한 산맥과 좁은 육로 덕에 지구 상에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심각하게 제한된 이동성 때문에 아프간 국경 수비대로는 부족해 JERF가 주로 이곳에서 활동을 했다. 나라의 60%가 산으로 채워져 있다 보니 군사 거점과 테러 조직 거점이 겹쳐질 때가 많았는데 불과 200미터 떨어진 산등성이에서 포격 공격이 가해져 주둔지가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도 JERF는 핵심 거점 지점을 설정하고 집중적으로 감시 활동을 펼쳐 겨우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헤라트 지구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도시 자체는 물론 서부 국경에 이르는 200km 지역은 핵심 감시 구역으로 국경 수비대와 JERF 가 눈을 번뜩이는 곳 중 하나였다. 산맥 사이에 형성된 서주 지역의 헤라트 지구와 평원을 방어하는 임무는 JERF 육군 소속 11 기계화 사단이 담당하고 있었다. 나토와 미군이 손을 떼면서 주둔 병력의 대부분을 JERF 에 떠넘겼는데 그 부대들 중 하나였다. 단순히 '현지 사정에 밝은' 이유 하나로 지휘권이 이양되었고 그 과정에서 파병기간이 갱신된 병사들이 속출해 한동안 어수선했었다. 아프간에 남은 나토 소속 다목적군중에서 규모가 3번째로 컸던 사단이 그런 일련의 행정적 착오들 속에서 사기가 떨어져 가는 가운데 아프간의 정세는 조금씩 어두워져 갔다. 산이 평지만큼이나 펼쳐진 곳이니만큼 위험은 산속에 산재했다.


"폭스 리더, 여기는 G팀."

"G팀, 전송하라."

"092 지역에서 다수의 열원 포착. 아군 활동 지점 확인 바란다, 이상."


넓은 경계 지역을 세밀하게 감시하기 위해선 드론들의 활동이 필수였다. 200km 에 이르는 지역은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총 250여 대의 드론에 의해 24시간 동안 감시에 놓여 있었다. 이들의 활동이 1시간이라도 멈춘다면 며칠 뒤 헤라트나 인근 국경에서는 폭탄이 터질 것이다. 동서부를 가로지르는 헤라트의 지리적 특성상 이 서부 국경은 테러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의 역할을 번갈아 맡고 있는 실정이었다. 때문에 무인 드론을 더 자동화하여 이착륙과 발견 감시에 이르는 과정까지 모두 개량되었다. 지구에서 최초로 로봇이 전쟁의 임무 중 하나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었다.


"적이 자주 포를 쏴대는 곳이군."

"다시 한번 확인 중입니다."


ISAF 소속으로 이곳에 파견된 베르히텐 영상 담당관은 휘하의 부하에게 확인을 구했다.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BFT는 불행하게도 나토 측 병력에게만 제공되지 유럽 본토에서 파견된 JERF 소속 병력들은 자국의 장비를 그대로 가져와 역시 자국의 운용 방식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연락 장교를 통해 전달되는 배치 정보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작전을 시행해야 비로소 아군끼리 총화를 뒤집어 쓰는 경우를 피할 수 있었다.


"없습니다. 저쪽에선 아군의 작전 활동은 없다고 연락 왔습니다."

"좋아, 아군이 아니면 그냥은 못 보내지. G팀에게 전달, 교전이 가능하겠는가?"


베르히텐 곁에서 대화를 물끄러미 듣고 있던 팔레미 중대장은 교전을 결심했다. 통상 박격포를 운용하는 적군의 수는 4-5명으로 조를 이루곤 했다. 영상 정보를 통해 파악된 적의 수도 그와 일치했다. G팀은 14명으로 이루어진 장갑 분견대였다. 이들에겐 화력이 넘치고도 남았으며 지원 부대를 맡을 G2팀도 발견 지점인 파괴된 마을 외곽에서 대기 중이었다. 헬기나 헬파이어로 제거가 가능하다면 그것을 선택했겠지만 이 시점에선 항공 지원은 없었다.


"G팀, 대기 중. 이상."

"적이 포격을 가할 남동쪽의 반대편에서 적을 친다. 확인."

"확인, 북서에서 남동으로 공격. G2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 마을 외곽에서 이동 대기 중이야. 시작하면 외곽을 봉쇄하라고 전달하겠네."

"수신 완료, 3분 뒤에 공격 개시하겠습니다."

"확인."


이젠 공격을 담당할 G팀을 바라봐야 했다. 명령이 전달된 상태에선 작전 관할이 G팀 소대장에게 귀속되고 팔레미 중대장 자신은 적군과 G2를 신경 써야 했다. 불시에 조우한 적이기 때문에 G팀의 대응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팔레미 중대장은 G팀 소속의 장갑차가 포신을 회전시키는 것을 보며 베르히텐 담당관에게 말을 건넸다.


병력들이 산개해 흩어지기 시작했다. 한 점 집중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점으로 뭉친 적을 공격하기 위해 선으로 늘어서고 면을 이루어 화력으로 포위한다. 강한 화력 속에서 적은 녹아 사라지고 그렇게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여 격멸한다. 적에 대한 위치 포착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지금 그러한 방식은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었다. 팔레미 중대장은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공격을 기다렸다.


"뭔가 이상한데요."


베르히텐 담당관이 실눈을 뜨면 더 잘 보이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모니터를 바라보다 말을 건넸다. 해당 좌표에 있는 적군들은 요란하게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박격포를 고정시키고 공격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해야 했다. 실제로 그곳은 마을 한복판에 있는 건물이고 반복된 공격에 여기저기 파괴되어 웬만한 포격으로는 격멸하기 힘들 만큼 파편들이 잘 가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영상 속 인물들은 포를 세울 준비는 커녕 원형으로 둥그렇게 서서 서로를 부둥켜안는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회합인가...?"


팔레미 중대장의 머릿속에서 전술 상황에 대한 기계적인 판단이 순간적으로 오고 갔다. 위치는 공격 대상 지점, 적성 세력 다수 포착, 아군 작전 가능, 지원 유효, 전술적 이점 높음, 화력 우세... 하지만 적이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 교전을 선언할 만한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적성 세력원 불명, 공격 중지.


"중단시켜."


중대장의 명령이 내려지자 베르히텐 곁에서 눈치 빠른 기술 하사관이 재빨리 긴급용 통신 전달 버튼을 눌렀다. 그 즉시 소대용 단거리 통신망은 기능이 정지, 중대 전용 단방향 전송 상태로 변환된다. 대신 소대원들에겐 단음으로 구성된 4회의 경고음이 자동으로 송신, 반복된다. 모니터 저편에서 일종의 '장님 상태'에 빠진 소대원들이 제자리에 우뚝 서는 모습을 보며 팔레미는 싱긋 웃었다. 전투 상황에서는 효과를 보기 힘들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딱 알맞았다. 베르히텐 담당관도 싱긋 웃는 표정 그대로 통신용 헤드셋을 건넸다.


"G팀, 폭스 리더다. 상황이 바뀌었다. 저들이 공격할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상."

"확인, 공격 중지. 상황을 자세히 전달해 달라. 이상."

"적들이 포를 꺼내지 않고 둥그렇게 서서 인사를 나누고 담소를 하는 게 보이는데..."

"꺼진 배입니까?"


꺼진 배는 민간인 표적을 지칭하는 구어로 쓰였다. 확실하지 않은 이상 일단 적은 아니었다. 팔레미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전달했다.


"확실하지는 않아. 카메라로는 영상만 보이지 누군지는 파악할 수 없다."

"G팀, 이글 아이다. 드론이 공격받을 가능성이 있어 클로즈 콜은 못하겠다. 이상."


베르히텐이 곁에서 거들었다. 모니터 너머에서 바닥에 엎드린 채 서로를 바라보는 소대원들이 보이고 있었다. 답답하겠지... 맥이 딱 끊기는 기분이 들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실시간으로 표적 확인이 가능한 현실에선 선 공격 후 판정이란 방식은 어림도 없었다. 공격 판정과 전술 지휘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현세대의 전장에선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중대장 자신도 저 답답함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할 일은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것이고 그것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폭스 리더가 G팀에게. 대기하라. 공격 여부는 곧 알려주지."

"G팀, 확인. 공격 대기. 현 지점에서 방어 태세 고수. 이상."

"자, 이제 저놈들이 뭘 하는지 알아보자고. 기술관, 저 만찬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


드론은 700미터 상공에서 마을을 원형으로 비행 중이었다. 미군처럼 최신예 장비까지는 아니어도 영상을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음성이었다. 미군들은 UAV 에 잠수함의 소나와 고출력 레이저가 결합된 장비를 장착하여 고고도에서도 감시 지역의 소리를 데이터로 추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JERF 가 가진 드론에선 그런 기능을 바라기는 힘들었다. 한 세대 뒤쳐진 장비로는 현재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베르히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내치 해야 되나?"

"공격 대상 지점에서 떡 하니 있으니 가능하지요."


나토에서 파견된 윌포드 감찰관이 중대장의 혼잣말에 답변했다. 감찰관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기점으로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군종 가운데 하나였다. 반군들의 거점을 전통적인 군 작전 방식으로 탐색해서는 정보는 커녕 혼란만 가중되었기에 미군은 다른 정부 기관의 노하우를 빌어왔다. 멕시코와 콜롬비아에서 활동 중이던 DEA 요원들이 협력하였고 이들은 곧장 아프가니스탄 파병군에 합류하여 '형사 나으리'로 활동을 개시했다. 병사들을 이들을 호칭할 때 '형사(Detective)'라고 꼬박꼬박 존칭 하였다.


"젠장, 좀 많은 것 같은데..."

"G2 랑 합류시키면 그럭저럭 제압할 인원은 될 겁니다."

"아냐, G2는 외곽을 지켜줘야 돼. 저긴 저놈들만 있는 곳도 아니고 이 정도 인원이 모였는데 저 친구들을 실어 나른 다른 녀석들도 걱정해야지."


윌포드 감찰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아프간 패거리에게서 멕시코 갱단의 지저분함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겁쟁이들 주제에 뭉치면 눈에 보이는 것도 없이 마구잡이로 행동하던 놈들. 어딜 가나 그런 놈들의 습성은 같았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왔는데도 그런 상황은 변치 않았다. 지저분한 놈들은 지저분한 방법을 택한다. 그리고 거기에 소중한 대원들이 말려들어 희생된다. 그런 상황은 피해야 했다.


"갈라지기를 기다려야겠는걸. 낚아채려면 그 수 밖엔 없겠어."


스내치 미션은 어려운 방법이다. 모르는 집단을 모르는 곳에서 배타적인지 우호적인지 모른 상태로 다짜고짜 데리고 와야 한다. 이라크에서 스내치 미션을 할 때마다 주민들이 격앙되어 미군이 철수할 때까지도 치안 유지가 어려웠었다. 아프간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아프간 사람들 입장에선 철수한 미군이나 JERF 나 똑같은 침략군이었다. 오폭이 한번 있을 때마다, 마을 주변에서 총성이 있을 때마다, 길가에서 폭탄이 한번 터질 때마다 평화는 멀어져 갔다.


"G팀, 폭스 리더다."

"수신 상태 양호, 송신하라."

"양 떼가 갈라지기를 기다린다. 어느 쪽을 잡을지는 아직 결정 나지 않았다. 이상."

"확인, 좀 더 접근해 볼까요?"


두 가지 중의 하나였다. 접근하면 눈치를 챈다. 회합이 끝나면 갈라진다. 다만 여기서 다른 상황은 저들이 눈치챘을 때 공격을 해오느냐 마느냐는 문제뿐이었다. 윌포드와 베르히덴은 말없이 중대장을 바라보았다. 흔하지 않은 은발머리의 중대장은 턱을 감싸 쥔 채 잠시 고민을 하는 듯했다. 다는 필요 없다. 저들 중 일부가 필요하지 많으면 처치만 곤란하다. 영상을 좀 더 살펴보았으나 엄청난 무장을 한 집단 같지는 않았다.


"장갑차부터 가보지. 다시 탑승하라."

"확인,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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