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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환 May 13. 2018

4. 아프가니스탄, 알파 포인트 (2)

G팀의 대원들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장갑차로 도로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회합하는 놈들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긴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인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어 베르히텐은 주변 상황에 대한 적외선 정찰을 개시했다. 방심하면 어느 한순간에 정신도 못 차린 상태로 끔찍한 화력에 반격을 당할 수도 있었다. 공격 무기는 빈약하지만 벌 떼같이 몰려들면 벌집처럼 공격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버펄로 01 이동. 관제 요망, 이상."

"폭스 리더다. 목표는 남동쪽 2km 지역의 지붕이 뚫린 둥그런 건물에 모여있다. 다른 건물들하고 이격 되어 있어 바로 보일걸."

"이글 아이다. 레이저로 조준하겠다. 영상 확인 가능한가?"

"버펄로 01 확인 중."


유럽이랑 달라 건물 외관만 보면 별 다른 특징이 없었다. 점토와 벽돌이 결합된 전통 가옥들은 외관만 보면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레이저로 조준해야 그나마 영상 장비를 통해 목표물 확인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노력을 해도 오폭이 났고 그때마다 아군이 죽어 나갔다. 지금은 엉뚱한 곳에 공격을 가했다간 대원들을 고스란히 적군으로 의심되는 놈들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 될 수 있었다. 신중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버펄로 01 확인, 좌표 입력 완료."

"G팀, 양 떼를 갈라놓기만 해도 된다. 무리하지 말도록. 이상."

"확인, 진입하겠습니다."


IFV 3대가 기관포로 화망을 구성하며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장갑차가 목표 건물보다 지대가 낮고 긴 축대가 경계선처럼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서 근접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마을로 이르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장갑차 주변에서 혹시나 이상한 놈들이나 IED가 터질까 봐 염려가 되긴 했다. 마을까지의 접근로는 유선형의 지그재그를 그리며 뻗어 있었고 경험상 U자형으로 굽어지는 구간에 폭탄이 제일 많이 은닉되어 있었다.


"마을은 어떤가?"


자연스럽게 마을 감시를 맡은 베르히텐 담당관은 의식적으로 화면에 잡히고 있는 놈들의 숫자를 마음속으로 세어 놓았다. 9명...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면 이들과는 반나절 동안 싸워야 할 것 같았다. 베르히텐은 곧장 중대장의 물음에 답했다.


"여전히 안 움직입니다. 대화가 기네요"

"제길, 단순한 놈들은 확실히 아니군. 저놈들은 목적과 주제를 구체적으로 가지고 모인 놈들이 분명해. 꼭 잡아야 한다."


베르히텐은 재량권으로 드론 1기를 더 배치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정황상 교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컸다. 윌포드 감찰관은 근육으로 뭉쳐진 팔을 굳세게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실전 경험이 풍부해진 노련한 형사는 공격팀에서 보내오는 무전 중에 대응할 거리가 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 통역도 그의 임무였기에 가능한 한 그는 양쪽이 모두 살아 있기를 바랐다.


"버펄로 01, 관제 정보 송신. 목표물까지 1km. 이상."


이 정도 거리면 망꾼에게 보일 법했다. 팔레미는 적들의 움직임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뭔가 흥정을 하는 것처럼 한쪽이 열심히 설명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설마 정말로 저곳에서 물건을 거래 중이라면 정신이 나간 녀석들이거나...


"외부인들이군."


팔레미의 중얼거림을 윌포드 감찰관은 곧장 알아 들었다. 전쟁을 매개체로 살아가는 더러운 거래의 현장일지도 몰랐다. 무기를 거래하든, 마약을 거래하든, 물자를 거래하든 뭐든 거래를 하는 놈들이었다. 순교자들이 100달러에 거래되곤 했다. 그렇게 팔려나간 젊은 친구들은 국경 이곳저곳을 넘으며 각지의 범죄조직의 허드렛일들을 했다. 납치, 무장 강도, 막무가내 사격, 그리고 마지막엔 폭탄 스위치 누르기... 군대 조직이 올바른 무력 사용법을 익힌다면 저들은 정반대로 불경한 폭력의 힘을 배웠다. 그런 놈들에게 국경과 국적은 의미가 없었다.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만들어 내며, 삐뚤어진 관념을 표출할 수 있으면 그저 그만이었다.


"감찰관, 어때 보이나?"

"추측하자면 순교자들이나 무기를 구하러 왔을 테죠. 이라크는 영향력을 잃었고 요르단에서는 이제 막혔을 테니.. 어디서 물주를 구하겠습니까?"

"잘도 이런 곳에서 할 생각을 했구먼."


버펄로 01에서 사인이 왔다. 전투 병력이 하차, 포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상황실의 분위기가 급변하여 급속히 냉각되었다. 군인 특유의 활달함 대신 곧 전투에 임하는 긴장감이 조성되어 갔다. 팔레미 중대장은 G2를 전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인원이 문제였다. 너무 많은 놈들이 너무 좁은 곳에 몰려 있었다. 저들이 반항하기로 마음먹고 뛰쳐나오면 순식간에 소대 병력 이상의 전투가 될 수가 있었다.


"G2, 들리나?"

"G2입니다. 송신하십시오."

"G1이 마을로 스내치를 하려고 진입 중인데 숫자가 많아. 지원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준비해 주게."

"G2, 확인. 승차 대기하겠습니다."


전투 상황이 아니지만 긴장감은 고조되었다. 적으로 판명되면 꼼짝없이 싸워야 될 판이고 숫자도 많았다. 적은 얼마든지 죽어도 상관없으나 대원들이 피를 뿌리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염려에 휩싸인 중대장의 눈에 이채로운 물건이 보인 건 그때였다.


"저 작은 컨테이너는 뭐지?"


담소를 나누던 친구들이 집 앞에 세워둔 트럭으로 자리를 옮겨 뭔가를 보며 아까보다 더 격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제야 뚜렷이 그들의 숫자를 알 수 있게 된 베르히텐 담당관은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21명... 이 정도 인원이 이동 중인데도 ABP 쪽에선 아무런 경고도 없었음을 깨달은 지금 그저 마음속으로 욕을 하는 수 밖엔 없었다. 중대장이 지적한 컨테이너는 아이들이 소중한 장난감을 넣어두는 앙증맞은 보물함처럼 생겼다. 하지만 저 익숙한 상자는 집에 있는 아이들의 방에 있을 때 어울리지 이곳 사막에서, 그것도 감시 영상을 통해 보이는 수상한 집단 속에서 보일 법한 물건은 아니었다.


"확대해 주게."

"배율을 좀 더 올립니다. 생긴 건 꼭..."

"큰 장난감 상자 같군."


베르히텐의 중얼거림을 윌포드가 받았다. 무기? 아니다. 아무리 국경 감시가 소홀하더라도 완성된 소총이나 권총들을 눈 뜨고 보내거나 숨겨 반입할 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 아프간엔 사람 수만큼이나 소총들이 널려 있었고 쓰레기 더미에서 녹슨 총 부품을 찾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폭탄? 폭탄 자체보다는 기폭 장치를 들여오는 편이 훨씬 더 쉽다. 소총만큼이나 폭탄도 아프간에선 구하기 쉬우니까. 점토인지 C4인지 구분하려면 개와 간이 화약 검출 키트를 이용해야 할 만큼 잘 숨길 수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확인해야 돼. G팀도 이걸 알아야 되고."

"이글 아이에서 전송, 양 떼 무리가 밥을 놓고 춤을 추는 중."


순간적인 기지에서 비롯되었을지 몰라도 베르히텐의 전송문은 긴장감을 주체 못 하는 지휘소 내의 어린 장병들에게 미소를 돌리는 효과가 있었다. 사전 정찰 정보가 없고 누군지도 모르는 집단에게 접근하는 G팀에게 지휘소에서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전술 정보는 생사를 판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드론이 영상을 뽑아내고 있지만 그걸 판독하는 역할은 사람이다. 따라서 과도하게 긴장하여 상황을 놓치거나 공포감에 마비되는 일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G팀입니다, 밥이 얼마나 좋길래 싸우기까지 한답니까?

"지금 상황에선 에덴동산의 무화과 열매 같은 가치가 있지. 알아내는 데로 알려 주겠다, 폭스 리더. 이상."

"이상한 장소에서 이상한 거래를 하는군요."

"정신 나간 녀석들이 하는 일인데 알 길이 있나..."


G팀은 신중하게 접근 중이었다. 원격으로 떨어져 있는 G2와 연계를 통해 느슨하지만 전형적인 포위 진형이 갖춰지고 있었다. 이럴 때엔 강력한 항공 지원이 아쉬웠다. 교착되는 전투를 한방에 해결할 뭔가가 없으니 아군 피해가 염려되는 건 사실이다. 25밀리 기관포와 신중한 사격 제어에 기댈 수밖에 없다. 없는 것, 손에 닿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으니 주어진 것들로 상황을 해결해야만 한다.


"중대장님,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윌포드와 베르히텐이 심각한 말투로 팔레미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들이 지적한 것은 적들이 한참 군침을 흘리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장난감 상자였다. 베르히텐 만큼이나 영상 정보를 봐왔던 팔레미는 단번에 그 둘이 느낀 위협요소를 깨달았다. 저 박스는 적외선 온도 감식에 의하면 빙점 이하의 표면 온도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냉동 음식을 놓고 거래를 하는 게 아닌 건 분명하고 저들은 시장에서 볼법한 장사꾼도 아니었다.


"마약을 얼려서 배송하는 경우도 있었던가?"

"그러다가 습기라도 차면 품질이 왕창 떨어지니 절대로 쓰지 않는 방법이죠."

"냉동 보관해서 옮겨야 되는 총 이란 건 들어본 적이 없고... 전자 부품도 저런 온도로는 옮기지 않겠지."

"낮은 온도로 보관이 필요한 건..."


윌포드 감찰관의 고민이 깊어졌다. 발견과 동시에 MilNet 데이터 베이스에 던져두고 영상 분석을 실시하였지만 그 자신이 항상 업데이트를 하던 자료라 의미 없이 영상 대조 분석만 반복되고 있었다. 범죄 집단에서 낮은 온도를 필요로 하는 보관품이 뭘까? 그는 기분 나쁜 기억을 되새겨 봤다. 이라크에서 현상금을 위해 손가락이나 머리 등을 잘라 보관하던 악귀 같은 현상금 사냥꾼들도 있었다. 뱃속에 폭탄을 넣어두고 병원 같은 곳을 공격하려고 훼손한 어린아이 시체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상황이 다시 펼쳐지는 건 아니었다. 다르다. 지금은 새로운 상황이다.


"... 얼려야 하는 것이군요."

"얼려야 하는 것?"

"얼려야지 보관이 가능한 것, 혹은 옮길 수 있는 것..."


수수께끼 같은 말이 윌포드에게서 흘러나왔다. 얼려야 하는 것, 그래야 옮길 수 있는 것... 조각나 있던 파편들이 갑자기 하나로 뭉쳐졌다. 윌포드는 충격에 휩싸여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그래야 눈에 보이는 것."

"...!"


팔레미의 눈이 커졌다. 그 자신도 충격의 파편들이 제자리로 돌아와 박히는 기분이었다. 기체는 얼리면 눈에 보인다. 그리고 옮길 수 있는 고체 상태가 된다. 무수한 다른 가능성이 있었지만 테러 집단이 거래를 할 정도의 물건은 무기밖에 없었다.


"NBC 1 경보!"


팔레미가 다급하게 외쳤다. 폭탄이나 그런 수준이 아니다. 10여 년의 저강도 전쟁을 시작했던 이유가 갑자기 생각났다.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던 WMD... 무수한 정황들로 인해 그 거짓된 전쟁이 끝이 나고 사그라들었지만 지금 그 저주받은 책의 한 장이 누군가에 의해 넘겨진 기분이 들었다. 무수한 물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첫 물음은 왜, 여기에서 라는 물음이었다. 정말 미친 듯이 궁금했다.


"G팀에게 송신! NBC 1 경보!"

"교전, 교전, 교전. 적들이 발포한다."


중대장의 경보와 G팀의 교전 보고가 동시에 교차되었다. 늦었다 보다는 당했다 라는 생각이 팔레미의 머릿속을 차지했다. 지금 교전을 벌인 지역은 공중 지원도 지상 병력도 없는 곳이다. 아프간 정부와의 마찰을 피하려고 아프간 국경 수비대에게 더 많은 관할권을 양보한 핵심 지역이라 유럽 원정군이 대처를 잘할 수 없는 약점이 존재했었다. 여러 상황이 겹치자 팔레미는 모든 정황이 다 의심스러워졌다. 왜 지금일까, 왜 저기일까, 왜 저렇게 많을까 같은 물음들이 현재 상황에 대해 집중을 못 할 정도로 떠올랐다.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 생각에 집중해야 했다.


"놈들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두 무리로 분리 중!"


베르히텐 담당관은 재빨리 헌터-킬러 역할로 감시팀 인원을 배분했다. G팀에 대한 영상 정보 관제를 위한 킬러팀, 냉동 장난감 상자를 들고 도망가는 무리를 추적하기 위한 헌터팀. 교전을 위한 정보 관제는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문제는 교전 상황 자체였다. 상황은 위험한 가정 상태로 빠져들어 G팀은 집중 사격을 받고 있었다. 적들은 하나같이 이런 조우를 예상한 듯 소총과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기선 제압도 실패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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