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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환 May 31. 2018

5. 아프가니스탄, 알파 포인트 (3)

팔레미는 참담한 기분에 휩싸였다. 긴급 항공 지원을 했지만 늦을 수밖에 없다. 나토 소속이 아닌 이상 공격기 지원은 무리다. 항공육전단 소속 아파치 1개 편대가 발진하였고 그보다 느리게 대대 소속 긴급대응팀도 서둘러 현장으로 출동했다. 지시를 내리지 않았지만 대기 중이던 나머지 중대 병력들도 교차 투입과 지원을 위해 막사 내를 뛰어다니고 있는 상태였다.


"중대장님, RC 1 입니다."


윌포드 감찰관이 굳은 얼굴로 대대 교신망의 최우선 부호를 알려줬다. 중대 단위 작전에서 대대 단위 작전으로, 예상이 맞다면 나토 쪽에서도 움직여야 할 상황이 될 것 같았다. 팔레미는 이를 악물며 송수신기를 받아 들었다.


"폭스 리더입니다."

"이쪽에서도 상황은 보고 있었네. 제기랄, 한 방 먹었군. 뭐가 필요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상자를 습득해야 합니다. 서쪽 국경을 넘어가면 절대로 찾을 수 없습니다."

"ABP에게 일단 언질을 하겠네. 이쪽에서도 빅 아이를 띄웠어. 그쪽으로 영상을 보내주지."

"감사합니다. 지원은 어디까지 가능하겠습니까?"

"자네들은 저 둘을 쫓고 없애는데 주력하게나. 관할권이니 그딴 문제를 꺼내는 놈은 내가 주먹으로 입을 으깨 버릴 테니."

"알겠습니다. 저 둘을 추격하겠습니다."

"나머지는 또 알려주겠네, RC 1 이상."


G2 가 맡아야 한다. 스트라이커 팀으로 구성된 이들이 지금이야말로 부리나케 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팔레미는 G2팀에게 서둘러 명령을 전달하고 추격 관련 관제를 대대 쪽으로 넘겼다. 공격을 받고 있는 G팀을 안전하게 꺼내와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었고 혼란에 빠졌을 대원들을 중대장으로써 안심시켜야 했다. 팔레미가 전투 상황을 파악하려는 그때까지 G팀은 적들과 불과 300m 의 근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분당 2000발을 퍼부어 되며 화력으로 거점을 제압하고 있었지만 적들도 그에 비슷하게 응사를 해서 G팀은 옴짝달싹 못하고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G팀, 폭스 리더다."

"G팀입니다! 송신하십시오!"

"G2는 도망가는 놈들을 추격하라고 지시했다. G1이 망치, 모루 임무를 모두 수행해야 한다. 이상."

"G팀, 확인! 지원은 언제 옵니까?"

"골키퍼가 지상 수단으로 이동 중이며..."


팔레미가 베르히텐에게 흘긋 눈길을 주었고 베르히텐은 곧장 4라는 숫자를 손으로 그렸다.


"4분 남았다."

"확인, 4분 동안 교전 유지하겠습니다!"

"두드릴 수 있겠나? 낚아채야 하는 놈도 있어야 한다."

"접근해 보겠습니다! 확신은 못합니다!"

"무리하지 말고 시도만 해봐. 아무도 다치면 안 돼. 발만 묶어놔도 된다. 이상."

"G팀, 확인!"


놈들 중 하나가 미끼가 되기로 사전에 지정된 것 같았다. 대개 전투가 벌어지면 적당히 쏴대다가 사라지는 녀석들이 이번엔 거점을 결사 방어하듯 격렬하게 퍼부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상황을 차치하고라도 이 하나만 보더라도 아주 특이한 경우였다. G2가 상자를 반드시 낚아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G팀은 붙박여 있었지만 잘 대응하고 있었다. 고르게 화점을 적이 엄폐한 지점에 형성하고 있었고 파이어팀 하나가 적을 우회해서 공격하려고 열심히 남쪽 길을 뛰어가고 있는 게 영상으로 비쳤다. 다친 대원은 없었지만 이런 상태라면 탄약이 금방 동이 날 것이 우려되어 팔레미는 탄약 수송용 지원팀을 꾸릴 것을 막사 내 대기 병력에게 명령했다. 아마도 그들은 곧장 탄약을 들고 그대로 전투에 합류할 거라 짐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모든 장비를 꾸린 채 분대장들이 상황실에서 전투 상황을 유심히 관찰하며 출전 명령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팔레미는 시선을 고정한 채 심각한 표정을 한 윌포드에게 말을 걸었다.


"한 명이라도 건질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항복할 것 같지 않네요. 단순한 거래 현장도 아니었나 봅니다."

"거래가 아니라 전달이었겠지. 저게 대체 어디에서 넘어온 건가?"

"파키스탄일 겁니다. ISI 놈들이 요즘 뭔가를 계속 흘리고 있었잖습니까? 그 구멍으로 왔겠죠."


파키스탄, ISI... 테러와의 전쟁은 양 측면에서 나쁜 점을 동시에 안겨 주었는데 하나는 싸우면 싸울수록 적을 만든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적들이 뭉치게끔 만든 점이었다. 전쟁 상황은 2차 세계 대전처럼 참여 국가를 두 축으로 나누었고 전쟁을 아우르는 바깥 세계의 상황은 마치 냉전처럼 여러 측면으로 나뉜 세력들을 만들어 냈다.


이 중에서 파키스탄은 이 테러의 시대에서 제 3 세계와 같은 회색 국가 역할을 맡았다. 핵무장을 한 이래로 파키스탄은 민족주의와 독자주의가 뒤섞인 모호함을 뒤집어쓰고 주변국들을 위협했다. 처음엔 인도와의 통합을 거부하다가 그 정신의 발로가 힘이 아니면 안 된다로 굳혀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프간이 힘이 없어 비국가 세력에게 이용당했다면 파키스탄은 그림자의 군주처럼 그들을 이용하고 도와주기도 했었다.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이런 식으로 펼치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저들 중 하나라도 잡아야 이 고리의 시작을 알 수 있을 것이다.


"G팀의 분견대가 자리를 잡은 모양입니다."


베르히텐 담당관이 주의를 상기시켰다. G팀에서 분리되어 우회를 한 라스키 분견대가 포복으로 무너진 건물 동쪽에서 접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건물과 건물을 사이에 두고 근거리에서 순식간에 화력을 쏟아부을 계획으로 보였다. 4명으로 이뤄진 기습이 성공하면 적은 교차 포화에 걸려 격멸될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화력이 집중되지 못하면 4명이 몽땅 공격을 뒤집어쓸 것이다. 그에 대한 대비책은 G팀 잔류 병력이 전진해서 두드리는 것. 위험천만하지만 지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선 이럴 수 밖엔 없었다. 상황실의 공기가 이런 위험을 직감한 듯 급격히 냉각되었다. 대대에서 달려오는 골키퍼를 기다리게 할까 순간적으로 생각했지만 화력이 비등비등해서 금방이라도 사상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팔레미는 교전을 통해 화력을 좀 줄여 보려는 G팀의 전술 판단을 믿기로 했다.


"G2의 상황은?"

"1km 거리에서 접근 중입니다. 국경 봉쇄는 이제 진행 중입니다."

"놓치면 절대 안 돼. 국경을 넘으면 쫓을 수 없어."


예전, 테러와의 전쟁을 하고 있을 때와는 달랐다. 특수 부대를 통해 형사들처럼 적들을 쫓던 그 시절엔 국경이 무의미했다. 한번 포착한 표적은 놓치거나 분쇄할 때까지 추적하곤 했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었다. 정규군이 작전권을 이양받고 국경 수비와 도시 순찰을 맡게 된 이래로 그런 스펙터클한 작전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공격과 습격은 잦아졌다. 비단 아프가니스탄만의 일이 아니고 중동권과 동유럽권 지역에서 이런 경향이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유효한 작전권이 지금 이 상황에서 갑자기 월경을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놓치면 저 의심스러운 상자를 영영 쫓을 수 없게 된다. 팔레미는 애가 탔다.


"빅 아이에게 공격 수단이 있을까?"


상황실 내의 모든 눈이 중대장에게로 향했다. 빅 아이, 글로벌 호크는 고고도 무인 감시 체계라 지상 공격 수단은 없었다. 레드 아이라 불리는 프레데터가 동명의 프레데터 미사일을 장착하는 경우는 있어도 글로벌 호크는 운동 성능이 프레데터처럼 격렬한 기동에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실언이 아니라면 중대장 또한 다급함에 오판을 하는 상황에 처한 거라 판단한 윌포드 감찰관은 눈으로 중대장에게 경고를 보냈다.


유럽 원정군의 체계에서 중대장을 뒷받침할 작전 참모는 많지 않았다. 아니, 인력 자체를 파병하지 않아 늘 부족한 상태로 작전에 임해야 했다. 팔레미 중대장은 이곳 아프간에 온 지 약 2년이 지났다. 짧지 않은 주둔 기간이었지만 문제는 그 2년이 아프간의 격동기라는 점이 문제였다. 1년여간의 안정기 동안 팔레미는 임무를 잘 수행했다. 민간 지원 임무, 주둔지 정찰, ABP 와의 군사 협력, 재건 등의 평화 유지 기간 동안 그는 유럽 원정군을 대표하는 엘리트 중의 한 명이었다. 허나, 습격이 잦아지고 점점 고차원적으로 변해가는 아프간 상황에 따라가지 못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해 대원들의 우려를 사고 있었다.


"라스키 분견대가 쏘기 시작했군요..."


냉정하려 했지만 윌포드나 베르히텐은 입에서 침이 마르고 손이 차가워지는 긴장을 억제할 수 없었다. 위험천만한 이 상황에 대해 전후 평가를 하라면 수백 개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한마디뿐이었으나 더 갖다 붙일 말도 없는 상태였다. 그저, 그저 잘 되기만을 바랄 뿐...


"G1에서 보고, 적 소탕. 아군 병력 부상 4명, 적 22명 사살. 이상입니다."

"부상자를 데리고 와야겠군. 막사 내 G3팀을 출동시키고 G1에겐 그곳을 좀 뒤져서 뭐라도 찾게 하게."

"알겠습니다."


결국 아무도 못 잡았다. 갑자기 시작된 이 돌발 상황에 알 수 있는 방법은 저 장난감 상자뿐이었다. 윌포드는 G1의 영상 정보를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과 파괴된 것들도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 윌포드의 역할이었고 지금 같은 상황에선 더더욱 필요했다.


"G팀, 수고했다. 감찰관이다. 영상 피드 준비되었나?"

"네, 형사님. 티보이가 도와줄 겁니다."


G팀이 격전을 치른 전장이 곧바로 모니터에 보였다. 헬멧에 장착된 외부 카메라를 통해 비친 전장은 완전히 피범벅이 된 상태였다. 좁은 건물에 벽만을 엄폐물로 삼은 적들에게 G팀은 2만여발을 쏟아부었다. 가까운 곳에서 본 것은 아니지만 척 보기에도 과다출혈에 의해 의식을 잃은 후 사망에 이른 것처럼 보이는 적들의 시체가 다수였다. 상태도 엉망이어서 머리나 신체 부위 일부가 사라진 경우도 있어 어느 나라에서 왔을지 밝혀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적들이 거점으로 삼고 활동하던 곳이 아니라 별다른 증거물도 보이진 않았다. 말로 일을 벌이며 왔다 갔다 하는 놈들 답게 총만 들고 그곳에 온 모양이었다.


"ABP가 아슬아슬하게 놓쳤다네. 뭐라도 건졌나?"

"없습니다. 시체 검시를 해봐야 좀 알 수 있겠네요. 그것보다 아슬아슬하게 놓쳤다고 하셨습니까?"

"적들이 정확하게 ABP의 빈틈으로 달려가더군. 사전에 모의한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도와주었다는 뜻이겠지."


윌포드는 맥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실마리가 너무 쉽게, 너무나도 쉽게 포위망을 뚫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기껏 몇 시간만에 몇 달간의 일들이 벌어진 것 같았다. 도깨비처럼 나타나 유유히 사라졌고 남은 건 시체뿐이다. 적을 잡았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가 누구와 교전을 벌였는지 정말 궁금하군요."

"그래, 나 역시 매우 궁금하네. 그 상자도 궁금하고."


묵묵히 패배감을 삭히던 그때 RC 1 의 호출 라인이 신호음을 보냈다. 대대에서도 이 상황을 관제하고 있었던 터라 허탈하리라 생각되었다. 팔레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송수화기를 들었다. 착잡함과 패배감이 뒤섞이면 이런 느낌이겠지. 그런 기분 인터라 윌포드의 표정은 쉽사리 펼쳐지지 못했다. 아직 할 일은 남아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격렬한 교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사자는 나오지 않았다. G팀에서 발생한 부상자들을 얼른 후송하고 경계선을 구축하고 자신이 직접 가 이제 사건 현장이 된 전투 지역을 탐문해야 한다. 베르히텐 담당관은 벌써 상부와 나토 쪽에서 날아오는 긴급 정보 요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투가 달궈놓은 피를 식힐 시간도 없이 행정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윌포드의 기분은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이런, 빌어먹을..."


중대장의 나지막한 욕설을 듣고 윌포드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분풀이 대상이 되었으리란 생각이 들어 윌포드는 중대장을 위로하기 위해 얼굴의 긴장을 풀으며 돌아섰다. 허나 그가 마주하게 된 건 거의 넋이 나간 중대장의 표정이었다.


"중대장님, 뭡니까?"

"보안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우리가 추적한 장난감 냉동 상자 있잖은가?"

"네, 허탈하게 놓쳐 버렸죠. 꽤 위험해 보이는 단서였는데..."

"그게 하나 더 있다고 하는군. 아니, 하나가 아니라 총 5개째라네. 우리가 5번째 라는군."

"예?"

"그 빌어먹을 상자가 일주일 사이에 5개나 발견되었다가 다 놓쳤다는 거야. 양키 쪽 은행에서 확인해 주었네. 중부사령관 얼굴을 보게 될 것 같다고 대대장님이 언질해 주시더군."

"... 맙소사."


팔레미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 시간 이후로 엄청난 뒤치다꺼리를 안게 되었음을 깨달았고 영영 밝혀낼 수 없음을 동시에 알았기 때문이다. 윌포드도 중대장의 표정에서 같은 심정을 느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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