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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환 Jul 08. 2018

7. 이라크, 그린존 (2)

"어이쿠, 대위님. 그 복장은 대체 뭐랍니까?"


무기고에 간다던 대위는 탄약만 챙겨 온 게 아니라 아예 전투 장비를 모두 꾸리고 돌아왔다. 다용도 주머니와 바지 주머니에까지 수북이 탄약을 밀어 넣고 온 대위의 모습에 모두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외관만 놓고 본다면 노딩턴 대위는 작전 통제관이 아니라 68 텍사스팀의 일원으로 전투에 가담할 'Grunt' 나 다름없었다.


"오늘 우리 트럭에 탈 손님은 바로 대위셨구먼."

"자, 갑시다. 어느 총안구에 넣어야 할지 알려 드리지요. 내 엉덩이 사이에 넣으면 안 되니..."

"가운데에 놔두라고, 가운데. 항상 탄약이 부족하니 쉽게 꺼내려면 가운데에 계셔야지."

"대위님, 우리 차엔 EMS 키트 여유분이 없습니다. 총 맞으면 손가락으로 틀어막으십시오."

"이거 우리 차 타고 가다 부상 입으면 어느 보험으로 처리해야 하나? G.I? Aegis?"


누구 하나 기가 찬 농담을 지지 않고 늘어놓았지만 그렇다고 누가 막아서지도 않았다. 68 텍사스 팀의 리더, '닥터 왓슨'이나 루 중위, 심지어 바렛 소위마저 이 광경을 보고 웃고만 있었다. 그렇기에 노딩턴 대위는 한껏 약이 오른 목소리로 톡 쏘아 주었다.


"좋아, 난 오늘 자네들을 절대로 일찍 귀환시키지 않기로 마음먹었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건 바렛 소위 뿐이었다. 두 눈이 동그래진 그녀를 보고 68 텍사스팀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원정군 내에서의 평가야 어쨌든 그녀는 희귀한 여군이었고 더욱이 예뻤다. 평균 연령대 30대 중반에 육박하는 68 텍사스 팀이 보기엔 그저 바렛 소위는 예쁜 여동생이나 딸과 같은 존재였다. 팀 전원이 모두 기혼자이고 자녀도 한 명씩 있는터라 바렛 소위는 원정군 밖에서는 귀한 존재로 변모했다. 어쨌든 팀은 꾸려졌다. 용병 팀은 씨끌벅적한 농담을 이어가며 닥터 왓슨만 남기고 모두 트럭에 올라탔고 루 중위와 바렛 소위는 전술 태블릿을 들고 있는 노딩턴 대위 곁으로 다가왔다.


"그래, 오늘은 어딜 갑니까?"

"북쪽에 일이 있습니다. 트럭 하나가 국경을 넘어왔는데 현장 수색 겸 추적 겸 이죠."

"어이쿠, 비싼 일감이로군요. 한 계약에 작전 2개라."

"HIGHCOM 에서부터 떨어지는 작전 입안입니다. 지상 지원은 없지만 OPCOM 은 실시간으로 NATO로 전달되고요."

"나토도 끼어든다고요?"

"정확하게는 은행에서 관여한다고 봐야겠죠? 이쯤이면 대략 작전 크기는 느껴지실 겁니다."


양키 출신인 닥터 왓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아버지뻘의 40대 중반 아저씨는 나이를 먹어서 그렇지 전직 그린베레 출신이었다. Tier 1 Class 의 특수부대 출신답게 노딩턴 대위가 전달해 주는 작전 개요만 듣고도 합동 작전 성격으로 펼쳐질 이 작전에 대한 예비 사항들을 순식간에 떠올렸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린존은 다시 생겨났고 그 자리를 다시 닥터 왓슨의 팀과 같은 민간 군사 업체들이 채우는 건 우연이 아니었다. 비록 유럽 원정군이 지휘 통제권을 이양받은 지금보다는 못하지만 전쟁이 끝난 직후 정규군으로 할 수 없었던 꼭 필요한 작전들을 수행한 게 바로 이 PMC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습'을 유럽 원정군이라고 이용 안 할 필요는 없었다. 유럽 원정군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기 때문에...


"작전서 복사본 좀 주시오. 가면서 읽어 봐야겠구먼."

"네, 있다가 루 중위를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에... 이야기를 계속하지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번 작전은 OPCOM-A 형식으로 지휘 통제는 유럽 원정군 소속인 제가 맡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저씨 팀은 육로를 통해 그리드 38 SNE82544060 방면, 트와나 - 스웨라 도로 방면으로 이동할 예정이고 어제 2200시 기준 정보로는... 그쪽 방면의 도로 청소는 정리되었다고 하네요. 다들 아시겠지만 최근 북동부 지역에선 무장 공격 발생 사례가 좀 많으니 그 점을 팀원분들께 유념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지휘부께서도 새 타고 오시나?"

"네, 그러니 제가 이렇게 입고 왔죠. 저도 동시에 정찰 역할과 MCOM 역할을 수행할 겁니다. 호출 부호는... 아이린입니다. 누가 지은 거야? 이거... 에, 그리고 교전 규칙은 별 소용없고 저희한테만 적용되는 거긴 한데 공격받을 시 임전이고요. 아저씨 팀을 뭐라고 부를까요?"

"어제, 오늘, 내일 쓰던 단어 있잖소? 그린(Green). 다를 거 없지."

"... 알겠습니다. 아이린, 그린."

"나토 쪽 통제관이 누구요? OPCOM 쪽으로 누가 여기에 관여하는 겁니까?


이 부분을 질문할 때만큼은 닥터 왓슨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어쩔 수 없겠지만 유럽 원정군 보다 친정이기도 한 미국, 그것도 은행이라고 언급된 CIA 연락관의 정체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정보 전달자의 과거나 작전 이력 등은 Tier 1 에 소속된 부대원들이 꼭 파악하던 습관이었고 퇴역한 지 한참이나 지난 지금도 유지가 될 정도로 중요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무모한 작전을 계획하고 거기에 빠져 개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지구 반대편에서 꼭대기에 앉아 종이에 마구 그림을 그려되는 전쟁광은 피해야 했다. 그런 놈들은 적군만큼이나 위험한 족속들이었다. 그러한 습관은 전장을 헤치며 살아남아야 하는 특수 부대원들에게 모두 배어 있었으며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다. 노딩턴 대위는 그렇기에 이 용병들을 군인으로서 신뢰했다.


"음, 잠깐만요... OP-Station D, 조나단 헌트. 아시는 분입니까?"


닥터 왓슨은 잠시 눈을 감고 기억을 되뇌는 듯싶다가 누군지 떠올린 것 같았다. 그 표정은 노딩턴이나 루 중위가 처음 보는 실망감에 찬 표정이어서 둘은 잠시 눈을 마주치며 당혹감을 교환했다.


"... 체 게바라 사냥팀이로군. 알겠소."

"체 게베라 사냥팀이라니, 무슨 뜻입니까?"

"음, 예전엔 카드 사냥꾼이라고 했었죠."

"아..."


닥터 왓슨이 던진 그 한 단어를 듣자마자 루 중위는 뒷덜미에 스멀스멀 기어가는 벌레 같은 소름이 느껴졌다. 카드 사냥꾼은 이라크 전쟁 시절 때에 위험도가 높은 적 장성 및 반군 단체의 우두머리들을 포커카드에 새겨 놓고 말 그대로 '사냥'을 나가던 미 특수 부대원들을 조롱할 때 쓰던 단어였다. 하지만 루 중위는 병사들보다는 그것을 계획, 입안하는 두뇌들이야말로 그 단어로 지칭해야 할 진정한 대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존재들과 맞닥드리게 된 것이다.


"비싼 일이다 못해 아주 죽이는 일감이구만. 이렇게 된 이상 부탁 하나 하리다."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제압당하지 마쇼. 저쪽에서 통제하기 시작하면 우리 둘 다 살아 돌아올 확률이 낮아질 테니."


그 기이한 말은 노딩턴 대위에게 으스스함을 안겨 주었으나 정작 그렇게 말한 본인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싶었다. 그 기분은 떨치기 위해서라도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조나단 헌트가 누굽니까?"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오. 그의 팀이 문제이지."

"OP-Station D?"

"그렇소, 그의 팀. 그리 비밀도 아닐 거요. 나토를 통해 작전 통제를 하려면 어느 정도 유럽 쪽도 알아야 할 테니까. 상층부에 정보 조회해보시오. 2008년 근무 기록만 뽑아달라고 하면 좀 알 거요. 물론 몇 줄이나 공개가 되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우린 나가야 되니 간단하게 알려 주시죠."

"... CIA 보다는 NSA 가 더 어울리는 친구요. 정보로 덫을 놓아두고 음모를 쌓아 처리하는 방식으로 일을 만들지. 함정을 미리 만들어 둔다고 할까? 워낙 스펙트럼이 넓은 친구라 아직도 현장 지휘까지 관할할 수 있나 보군. 휘둘리지 않으려면 그들보다 더 좋은 자료 책이 있어야 하는데 유럽 친구들에게 그걸 바라기는 힘들겠구먼. 그러니 오늘은 우리 귀와 눈을 되도록 믿기로 합시다. 원격에서 제어하는 로봇 마냥 굴면 둘 다 재가 될지도 모르니."

"... 알겠습니다."


닥터 왓슨은 그 말만 남긴 채 떨떠름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보곤 자기 트럭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짐작대로라면 마이크 너머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을 인물은 아군이 재가 되어 버려도 상관하지 않을 위인 같았다. 더러 그런 학자 같은 부류의 관료들이 있었고 군사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그런 부류는 사고를 잘 치기도 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기 좋은 날인 셈이다. 제어권을 빼앗기지 말 것... 어려운 주문이었지만 목숨이 오갈지도 모르니 해야만 했다. 시작부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노딩턴 대위는 한숨이 절로 났다.


"긴 하루 겠군요..."

"그래, 긴 하루겠어."


둘은 멀어져 가는 닥터 왓슨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아까부터 소외받고 괜한 기체 점검만 하고 있는 바렛 소위의 헬기로 향했다. 바라건, 바라지 않던 오늘 그들은 전장으로 가야 하는 건 변함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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