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 작전은 민간인 오폭 작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런 수치스러운 별명이 붙은 이유는 2차 대전의 드레스덴 공습처럼 군사적으로 가치가 낮은 지역을 애꿎게 공격을 해 적군이 아닌 적군의 시민들과 도시를 재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특수 작전에 참여하는 각각의 주체들이 저마다의 정보를 기반으로 옥신각신을 하다가 결국 아무 결론도 못 내고 폭격 승인을 내리고 나면 피해 판정을 위해 확인을 하는 특수 부대원들은 장례식 중이던 사람들이 몽땅 날아가 버렸다거나 유엔 원조로 제공된 식량 포대가 겹겹이 쌓고 있던 창고에 불이 난 장면을 확인하곤 했다. 첨단 기술이 오히려 장님이자 바보로 만드는 격이었다. 그래서 유럽 원정군은 지휘를 이양받으면서 원격 관제 작전의 비중을 제일 먼저 줄이고 현지 원정군에게 더 많은 지휘 통제 권한을 부여했다.
"OPCOM-A 쪽 통신은 누가 맡을래?"
"대위님께서 해주셨으면 합니다. 전 양키라면 두드러기가 날 것 같아서요."
"그러면서 잘도 저 회사원들이랑 친하구먼. 응?"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저 회사원들에게 저의 인내심을 몽땅 써서 더 이상 여력이 없다고 하고 싶군요."
"알았다, 알았어. 네가 지상이랑 교신해라. 그 사람들은 무전기랑 위성 전화밖에 안 쓰잖냐... 내가 본부 쪽 맡지."
신참 바렛 소위가 조종하는 블랙호크는 서북단의 하늘을 향해 순조롭게 날아갔다. 평온한 하늘과 달리 노딩턴 대위가 보고 있는 터미널은 요란했다. 부산한 ATCS에서 전달해주는 관제 정보로 볼 때 오늘 가장 중요도가 높은 유닛은 노딩턴 대위가 타고 있는 블랙 호크, 아이린이었다. 이라크 내를 날고 있는 자신들과 정반대 편에 있는 터키 쪽에서는 공중 급유팀이 대기 중이었고 공군 소속의 타격팀 2개 편대도 흑해에서 정찰 중이었다. 그들 모두가 같은 통제 기호인 OPCOM-A로 분류되어 있었다. 바다, 하늘, 지상에서만 이 작전을 위해 100명에 해당하는 인원이 동시에 투입되었다고 생각하니 노딩턴 대위는 벌써부터 두통이 느껴졌다.
"그린 라인에 도달했습니다."
"자, 시작해 보자."
노딩턴 대위는 루 중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ATCS에 접속되어 있는 자신의 계정을 활성화시켰다. 이 간단한 절차를 통해 블랙호크의 뒷자리의 공간은 하늘에서도 분리되었고 동시에 별도의 개별 공간으로 변모했다. 바렛 소위는 기내 긴급 통신 버튼을 누르고 무전을 전송하지 않는 한 이들에게 말을 걸 수도 없었다. 거대한 사무실에 큐빅으로 벽을 쳐 가상의 공간을 만든 것처럼 이제 노딩턴 대위와 루 중위는 외부와 차단되고 오로지 터미널에 비친 문자와 영상 정보에만 집중했다. 바로 뒤에 지휘 통제관이 타고 있었지만 기장인 바렛 소위는 OPCOM-A 소속의 육군 항공단 소속 관제팀에서 비행에 필요한 관제를 받게 된다.
"바렛, 빨간 버튼 누를 일은 만들지 마! 안테나 아저씨들 지시 잘 듣고!"
"으이그, 알았어요!"
루 중위는 자신의 계정을 활성시키기 전에 마지막으로 바렛 소위에게 육성으로 소리쳤다. 잔소리 같지만 부조종사도 없이 비행에 나선 바렛 소위가 장시간의 비행에 불안해하지 않으려면 이렇게라도 안심시켜줘야 했다. 루 중위 자신은 부하를 돌보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노딩턴 대위의 평가의 사적인 평가는 좀 달랐다.
[ 아이린 1-2, 가동. ]
[ 아이린, 최신 정보를 전송한다. Ahmad Awah - Balkha를 중심축으로 반경 25km 지점에 대해 감시선을 구축한다. 목표는 이란을 거쳐 이라크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적의 예상 목표물은 불명이나 그린존을 위시한 아군 지역에 대한 공격이 예상되므로 현재는 이라크 동부, 북부를 OPCOM-A 작전 지역으로 설정한다. ]
[ 아이린, 확인. ]
시작점인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여기까지 놓고 보면 장난감 상자를 들고 있는 적군은 거의 일직선으로 북해를 향해 '돌진' 중이었다. 이처럼 단순하게 동선을 짜는 적군도 특이했지만 벌써 1000km를 넘게 아무런 제지도 안 받고 달려올 수 있는 것도 특이했다. 아무리 암흑 지역인 이란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들은 너무 빨리, 너무 쉽게 유럽 원정군의 제지를 뚫고 있었다. 새삼 그 점이 터미널의 붉은 원들이 시간대로 겹쳐진 것을 보고 있는 노딩턴 대위의 머릿속에서 경고처럼 점멸되었다. 그렇게 들소 같은 적군이 이라크 동부 국경에 자리 잡을 자신들에게 달려오고 있는 중이다. 붉은 원의 중심에 그놈들이 있다면 이 중심원은 어떻게 파악되었을까?
노딩턴 대위는 그 물음의 답이 궁금해져 정찰 정보를 열람했다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 붉은 원은 추정 자료가 아니었다. 이란으로 넘어가 버려 겁을 집어먹은 미군이 이들의 위치로 계속해서 무인 정보기를 날려 되었다가 추락한 좌표를 일직선으로 연결해 파악한 경계원이었다. 비싸고 가공이 오래 걸리는 위성을 사용하다가 놓칠 걸 걱정한 현장 지휘관들이 카미카제 식으로 무인기를 운용한 결과 이들의 근처로 날아갔다가 땅으로 떨어진 무인기만 30여 대에 달했다.
'피만 안 봤지, 완전 총력전이로군.'
말 안 듣는 나라에 들어간 놈들은 이래서 찾기가 힘들었다. 노딩턴 대위는 정찰 정보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타이핑하여 ATCS 의 루 중위 터미널로 전송했다. 이걸 이제 루 중위는 지상팀에 브리핑용으로 쓸 것이다. 자신은 OPCOM 이 설정한 25km 구역의 유닛들 중 양키 아저씨들의 그린 팀과 초계 중인 SC편대들, 그리고 전술 정찰용 드론을 부여받았다. 요걸 이용해 표적 정보와 전장 정보를 찍어내 루 중위와 OPCOM 에 전송해야 했다.
[ 아이린 1-1에서 요청, 그린팀과 SC편대의 통신을 실시간으로 전송받게 해달라. ]
[ 확인, D-Link 채널로 접속 중. 구성원은 이제 아이린, 그린, SC1. 로컬 단위로만 운용. ]
OPCOM에서 통신 채널을 그룹으로 지정해 열자마자 루 중위와 그린팀 간의 대화가 쏟아져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상 관제를 맡겨 두긴 했지만 현재 작전에서 현장에 투입된 유일한 병력이니 만큼 이들 간의 대화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루 중위와 그린 팀은 다카르 랠리에 참여한 레이싱 팀처럼 내비게이션 정보를 정신없이 주고받고 있었다. 평소 코스가 아니다 보니 양키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조금만 덜컹거려도 욕지거리가 바로 입에서 튀어나오곤 했다. 엄숙한 ATCS 통신 채널에 '낯선'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채널 분리를 한 통신 관제팀의 배려 아닌 배려를 절로 알 것 같았다.
'우승이라도 하겠구먼.'
노딩턴 대위는 위태위태하게 달려오고 있는 그린팀과 작전 구역 과의 거리를 설정해놓고 곧바로 작전 구역에 대한 정찰을 개시했다. 기본적인 지리 정보와 고저차, 육군 정찰대의 정찰 정보들을 차례로 레이어로 포개 놓아 지휘 관제에 필요한 준비를 맞췄다. 노딩턴 대위의 팀이 출발하기 전에 HIGHCOM 의 전략 분석팀이 세워 놓은 작전 시나리오가 파일로써 ATCS 계정에 입력되어 있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닥터 왓슨은 오로지 눈과 귀에만 의존하자고 했었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건 25km 에서 싸우고, 살아남고, 임무를 완수할 정보였지 앞과 뒤가 잘 짜여 연극처럼 배역을 소화하게 만드는 저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 아이린 1-1에서 요청, 작전 지역에 대한 실시간 아군 작전 상황을 보여달라. ]
[ 확인, 나토 쪽까지 총괄하는 데이터를 전송함. ]
아군과의 작전 지역이 합쳐질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아군 간 사격만은 피하려면 최소한 누가 있는지 알아볼 필요는 있었다. 작전 지역으로 달려오는 중인 그린팀과 이라크 국군들, 다른 지휘 그룹 소속인 육군 항공단 A-10 공격기... 나토 쪽에서 공유하지 않는 한 ATCS 에 보이는 아군은 저게 다 였다. 이 작전은 적들이 일단 국경을 넘어와야만 실행할 수 있었다. 25km 의 경계 구역을 노딩턴 대위가 직접 운용하는 드론 1기로 다 살펴볼 수는 없었다. 어디서 올진 OPCOM이나 HIGHCOM에서 운용하는 전략 정찰팀에서 알려줄 것이다. 그럼 자신과 같은 전술 정찰팀이 드론을 재빨리 붙여서 근처의 지상팀에게 중계하고 지상팀이 달려가 사로잡거나 부숴 버린다. 이게 이 작전의 골자였다. 느슨하고 임기응변을 요하는 요소가 많았기에 작전에 투입된 병력과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 SATCOM에서 전달, 나토 측으로부터 [ ] - [ ] 부근의 드론이 격추되었다는 정보를 받았다. ]
전략 정찰팀이 아이린 그룹에게 최신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그와 동시에 ATCS 의 지휘 정보도 갱신되었다. 붉은 원이 새로이 갱신되고 진출 예상 방향에 대해 경로가 추가되어 경계 구역까지의 거리가 자동 계산되었다. 진출 경로 방향이 25km 의 경계 구역에 느슨히 걸쳐 있었다. 나토, 미군 쪽에서는 아직까지도 이 방법으로만 적을 추적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이 작전에서만 대대급에 해당하는 드론들이 격추되었으니 아주 값비싼 작전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격추된 것까지 포함하면 36대였다. 이쯤 되면 이란이 저 장난감 상자 운송자들을 감싸고 있다는 생각이 들 법도 했다.
[ SATCOM에서 전달, 적의 이동 추정 경로를 각 TAC-C 그룹에게 전달하겠다. ]
최종 격추 위치와 과거 이동 경로, 지형도를 고려한 이동 경로가 전략 정찰팀으로부터 갱신되었고 노딩턴 대위와 같은 전술 단위 지휘 그룹들 간의 우선순위가 정해지기 시작했다. 위험 순위이기도 한 우선순위에 자신의 부호가 적히는 걸 보며 노딩턴 대위는 긴장감이 들었다. 적들이 온다. 그것도 바로 자신들 앞으로... 아이린 팀이 맡은 25km 구역은 중요도가 높은 적색 구역으로 설정되었고 후방에 있던 다른 지상 병력들이 슬슬 이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유럽 원정군 전체에게 발령하는 경보 순위도 승격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추격전이 시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