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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환 Oct 06. 2018

9. 이라크, 그린존 (4)

[ 아이린 1-1, 이동. ]


나설 차례다. 노딩턴 대위는 ATCS 터미널에 드론의 실시간 감시 영상을 호출했다. 적의 이동 경로가 파악된 이상 사냥꾼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바렛 소위의 헬기는 현장에 가지 않지만 자신은 전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게 원격 관제의 핵심이었다. 이라크 전쟁 이래 변해버린 세상에서는 더 이상 총성을 귀로 들을 필요가 없었다. 루 중위가 안내해 주는 그린팀도 얼추 작전 구역에 접어들고 있었고 그 뒤를 쫓아 달려오고 있는 후속 팀들에게 공로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매끄럽게 그린팀을 물건 앞으로 인도해야 했다.


노딩턴 대위는 OPCOM 용 데이터 링크에 자신의 드론 실시간 감시 영상을 연결시켰다. 그리고 루 중위를 위한 경계 지역 내 이동 경로를 생성해 갔다. 그린팀과 적군의 교차 지점을 직각이 되도록 설정해 자연스럽게 그린팀이 적의 측면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정면에서 조우하면 적은 진행 경로가 차단되었다고 판단하고 교전을 시도할 수도 있다. 물론 추적 / 격멸이 이 작전의 핵심이지만 1000km을 달려온 적의 정체 파악 또한 중요했다. 이거 하나만이 아니라 나머지 4개 상자의 행방도 추적해야 했다.


[ SATCOM에서 전달, K-64 로부터의 통신. 전용 채널로 전환하라. ]

'드디어 납시었군.'


K-64, 닥터 왓슨이 주의하라던 바로 그놈들이었다. 이 작전이 시작된 지 한참 동안 지켜보던 놈들이 이제 슬슬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모양이라고 노딩턴 대위는 생각했다. 헬기에 타기 전 들었던 말 때문인지 몰라도 아군임에도 불구하고 아군처럼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아니, 일단 이들은 아군이 아니라고 판단하자. 정보 조직체에 속한 놈들은 전쟁을 모니터로 봐온 놈들이라 대신 사람이 죽은 거에 대해선 무감각한 놈들이니. 노딩턴 대위는 전용 채널에 접속을 시도하고 음성 대화를 위해 입가의 마이크 위치를 조정했다.


"TAC-C 아이린입니다."

"아이린, OPCOM-A에서 이번 작전에 참여하는 캐서린입니다. 작전에 들어가기 전에 전해드려야 사항이 있습니다. 현재 추적 중인 목표물엔 유럽 원정군에서 발견한 WMD 추정체 이외에 식별, 확인해야 하는 목표가 또 있습니다."


마이크 너머의 목소리와 함께 ATCS 데이터 링크로 식별해야 한다는 목표물에 대한 정보가 출력되었다.


"윌리엄 터너?"

"윌리엄 터너, 51세. CALTECH에서 고분자 화학 분야 전문가로서 알려져 있고 알렉산드리아의 학회 참여 뒤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저흰 현재 저 목표물에 윌리엄 터너 자신 혹은 구금된 위치를 아는 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쪽에서 전달된 정보엔 윌리엄 터너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네, 이 정보는 이란에서 블랙아웃된 시점에 저희 쪽에서 조사해 알아낸 겁니다. 저희는 목표물의 운송단에 터너 박사도 포함되었다고 파악하였습니다. 아이린 팀은 OPCOM에서의 지시에 맞춰 이 둘의 확보에 주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알겠습니다. 아이린 아웃."


물어봐야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노딩턴 대위는 신경질을 담아 OPCOM 지휘부에 정보 요청 사항을 담은 메시지를 날렸다. 이상한 시점에 끼어든 CIA 놈들도 신경질이 났지만 꽤나 큰일을 벌여놓고 뒷짐만 지고 있는 사령부에 대해서는 더 화가 났다. 이 정도로 허술한 상태라면 작전은 힘들다.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손에 쥐고 있지 않은데 결과가 좋을 리가 없을 수밖에. 갑자기 튀어나온 이 '살아있는 물건'은 작전의 복잡도를 배로 꼬아놨다. 적의 위치도 불명인데 목표물을 2개로 분리해 감별하는 건 해변에서 바늘 찾기라고 생각했다. 통신을 하고 있던 그 사이에 또 작전 상황은 갱신되어 있었고 전략 정찰팀은 이놈들이 국경을 넘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A-10 편대가 아이린의 경계 구역 근처에서 계속 얼쩡거리고 있길래 노딩턴 대위는 이들을 위한 정찰 경로를 표시하여 전송해 주었다. 이제부터는 그린팀을 중심으로 조우에 가정하여 준비된 병력이 한순간에 한 점으로 달려들 수 있도록 위치 조정을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노딩턴 대위는 자신이 운용하던 드론에 자동 감별 모드를 설정하고 각 유닛들을 정해진 위치로 옮겨갔다. 그 선두는 그린팀이었다.


[ 아이린 1-1에서 아이린 1-2로, 경계 포인트를 전송한다. ]


그린팀을 거의 날아오다시피 이끈 루 중위에게 쉴 틈도 없이 작전에 필요한 사항과 그린팀의 정찰 코스를 전달하고 적의 정확한 위치 식별을 위해 적외선, 지진계, 무선 감찰 등의 센서를 총동원했다. 적이 말을 타고 오지 않는 한 센서에 잡히게끔 되어 있다. 덫을 놓고 물리길 기다린다. 지휘부에서는 뒤늦게 윌리엄 터너의 행적과 최근 발견 위치 등에 대한 조사 자료를 보내왔으나 거뜰떠 보지도 않았다. CIA 쪽에서 정보를 물고 있다가 필요한 시점에만 주니 어쩔 수가 없겠지. 사람 찾는 숨바꼭질 놀이는 상층부가 하도록 놔두고 자신은 그린팀과 다른 이들이 무사하게 작전을 마칠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저놈들만 잡으면 되는 일인 거다. 애초에...


[ 잭팟, 잭팟, SATCOM이다. 아이린팀은 레드 포인트로 이동하라. 놈들이다. ]

[ 아이린, 이동. ]


결국 전략 정찰팀에게 위치가 파악된 모양이었다. ATCS 에 표시된 적의 위치는 꽤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감시가 진행 중이었다. 미군의 드론 떼거리들이 즐비하게 최후의 전술 부호를 새겨놓고 있었고 마지막엔 KN-94, 고고도 정찰 위성까지 동원되었다. 이란 핵 시설을 상시 감시할 위성이 고개를 돌릴 정도로 고 가치 표적 등급이 매겨진 이 목표가 이제 노딩턴 대위의 책임으로 떨어졌다. 옆에서 루 중위가 흥분해 뭔가를 외치는 게 곁눈질로 보였다. 싸움을 맡아야 하는 친구니 신경이 곤두설 법도 했다. 전투가 처음은 아니지만 전투 자체에 생명이 왔다 갔다 하니 신경이 안 곤두설 수가 없었다.


'진정해라, 진정...'


작전 중이니 바로 옆에 있어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스스로 진정하고 냉정해 지길 바랄 수밖에... 전투 개시 상황이니 도와줄 수도 없다. 한편으로는 곧잘 붙어 다니던 사이였으니 이해가 가기도 했다. 루 중위와 68 텍사스 사람들은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다. 새로운 전장과 일거리를 찾아 떠나는 다른 사설 경호원들과는 달리 68 텍사스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이라크에 오래 잔류했다. 이미 복무를 했던 기간까지 합치면 거의 10년을 여기에서 보낸 닥터 왓슨 같은 사람도 있었고 해병대를 제대하자마자 합류한 핸콕 같은 친구도 있었다. 왜 저들이 더 믿음이 가는 걸까...


[ 아이린, 들리나? 센트럴이다. ]

[ 확인, 센트럴. 전달하라. ]

[ 아이린팀은 현시점부터 그린팀을 지원하여 목표물에 대한 파괴에 주력한다. 송신. ]

[ 그린팀을 지원, 목표물 파괴에 주력. 수신. ]


OPCOM 사령부에선 목표물의 파괴에 주력하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CIA 까지 개입한 마당이니 안방으로 오기 전에 털어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났을 거다. 이대로 목표물이 북해로 가버리면 추적할 수 없게 된다. 그 많은 유동양의 흐름에 숨어 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파괴할 경우 적이 누군지, 누가 배후인지, 어디서 물건을 입수했는지 등은 알 수 없게 된다. 노딩턴 대위는 그 사실을 확인해 보고자 했다.


[ 아이린에서 전달, 적군의 물건에 대한 처리 방식은 무엇인가? ]

[ 확보하지 않는다. 파괴한다. 이상. ]


여기는 포기하는 건가... 4개가 더 남아 있으니 그걸 추적할 계획인가. 상관없다. 전략적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든 지금 현재는 전술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 루 중위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겠군. 그것보다 윌리엄 터너라는 박사는 어떻게 하려는 건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CIA에서도 개입한 작전인데 상층부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으니 불안해진다. 이런 불협화음은 좋지 않은 징조였으나 무시해야 한다. 현시점에 신경이 분산되면 하달된 임무도 수행할 수 없게 되니까.


[ SATCOM에서 목표 확인, 좌표를 전송한다. 근접 촬영하라. ]

[ 확인, 이동한다. ]


이제 눈으로 볼 시간이다. 전략 정찰팀으로부터 고고도에 위치한 글로벌 호크의 실시간 영상 피드가 스크린에 출력되었다. 이라크 국경으로 달려오는 먼지 구름에 전술 마크가 표시되어 있었으나 자세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다만 먼지 구름의 양을 봐서 차량을 이용한 소규모 그룹이라는 것을 노딩턴 대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이란-이라크 국경의 고원 지대는 척박한 지형이라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지역이었다.


때문에 차로 다닐 수 있는 도로 또한 험준한 지형에 위태롭고 허술하게 개척되어 있었고 그 도로들은 이라크 동부 국경의 Ahmad awah라는 작은 마을을 필연적으로 지나갔다. 노딩턴 대위가 세운 경계작전의 요지는 이 사막의 섬 같은 마을을 중심으로 사방에 4km마다 경계 포인트를 설정하고 이라크 쪽으로 적을 몰고 돌아오게 TAC-C에게 부여된 아군 병력의 이동 경로를 설정했다. 적어도 북쪽으로는 못 가게 만들고 안쪽으로, 안쪽으로 끌고 들어와 아군의 화망에 걸리게끔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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