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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by OUO


일몰


작은 새들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나는 너희 누나 방에 몰래 들어가 사립문을 닫고는 거울에 낙서를 하고 화장품이 들어있던 상자에 호박엿을 숨겨놓고 앞 창문으로 나오는 놀이를 즐기곤 했다

그러면 너는 닭처럼 소리 지르며 슬리퍼 바람으로 쫓아오고 나는 꼭 왼다리를 헛디뎌 이내 실수인 척 논에 빠지는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를 보여주고 너는 이내 화가 다 풀려 함박웃음을 짓고 나는 그걸 보면서 웃고

너의 웃음 뒤에는 해가 저물고 있었다 너의 집에 아침해가 살고 있고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의 눈웃음 뒤에 좋은 풍경이네라고 말하며 내가 닫아놓았던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네가 이사 가던 날 아무런 이유 없이 내가 좋아하던 노란색으로 튤립을 접어서 선물하던 날 아침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해서 이제는 너를 앞에 둔 내가 태양을 짊어지고 있던 날 너는 내가 태양을 뺏어간 걸 질투라도 하는 것처럼 이내 눈물 대여섯 방울을 떨어뜨리고는 잘 지내 라는 말을 마치 우물에 빠진 개처럼 푹 젖어있는 목소리로 말했던 것이다

나는 태양을 돌려주러 너의 집에 갔지만 그곳은 비어있었지 사실 태양은 너의 집이 아니라 네가 트럭을 타고 떠난 그 산 뒤로 너를 따라가는 거였어 타이어 자국이 아직도 너의 발자국 위에 남아 있었고 나는 주지 못했던 호박엿을 와구와구 씹다가 이내 퉤 하고 뱉어버리고

사실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네가 호박엿을 먹을 땐 꼭 해가 지더라고 그걸 선물해주고 싶었던 거야 그냥 그렇다고라고 말하며 나뭇가지 하나 주워서 타이어 자국 아래에 너 이름을 쓰고 그 아래 내 이름을 썼다 지웠다 하다가 추운 달이 떠올라 아쉬운 눈물을 흘리며 이젠 태양이 없는 나의 집에 돌아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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